기초 없이 피어난 상상력의 한계

어머님, 죄송하지만 그것은 창의력이 아닙니다.

by 토끼포케

"저희 아이는 창의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가만히 있질 못해요. 가끔 엉뚱한 상상으로 저를 깜짝 놀래켜요. 수업 시간에도 상상력이 풍부하다니까요. 가만 보면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머리는 참 좋은 것 같아요."


학부모 상담 시간에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공부를 하지 않는 자녀를 보며 학부모님들께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즘 학부모님들께서는 자녀가 외동인 경우가 많고 또래 아이들과의 비교 기회가 적다 보니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초등 교육은 예전과는 달리 성장 중심 평가 체제로 변화했고, 재시험이나 기회 부여가 많아졌습니다. 아이의 가능성과 성장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저는 매우 찬성하지만 자녀의 학업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로서 오랫동안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머님, 죄송하지만 이 아이는 창의적인 게 아니라 산만한 겁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창의력의 가능성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창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상력보다 상식이 풍부한 아이가 창의력도 풍부한 경우가 많지요. 왜그럴까요? 가능성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반드시 상식과 실행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의력의 기본을 상식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만 그 안에서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진짜 창의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요리사에 비유하자면 다양한 재료의 종류와 조리법, 재료들끼리의 궁합과 영양소, 불 조절을 잘 아는 사람만이 새로운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소금은 언제 넣어야 맛이 살아나는지, 불은 어느 정도의 세기로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지를 아는 감각이 쌓여야 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기본 재료 손질도 모른 채 이것저것 섞기만 하면 그건 창의적인 요리가 아니라 먹기 힘든 조합이 되기 쉽습니다. 심지어 복어처럼 독성이 있는 재료는 정확한 지식과 기술 없이 다루면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상력도 그것을 지탱하는 기본이 없다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창의력의 바탕은 결국 상식입니다.


교실에서 보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와 창의적인 아이는 확연히 다릅니다.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성실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꾸준히 학습해 온 아이들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냅니다.


스티브 잡스도 대학을 중퇴하긴 했지만, 적어도 대학에 입학은 했습니다. 캘리그라피 수업을 듣기 위해 떠났다고 하지만 그는 캘리그라피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창조했습니다. 캘리그라피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식이 없었다면 창의력을 발현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막연한 상상만으로 창의적인 결과를 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초등 시기에는 가능한 많은 상식을 쌓게 해 주세요. 풍부한 상식위에 아이의 말랑말랑한 상상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창의력이 꽃필 수 있습니다.


틀에 박힌 교육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상식과 생활 습관, 배려와 매너는 반드시 필요한 삶의 기반입니다. 아이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구분해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덕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교실과 가정에서 아이들이 진짜 창의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상식과 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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