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순간을 견디는 힘, 그리고 말센스
"재미없어"
아이는 입을 쭉 내밀며 부모에게 삐죽거립니다.
재미없다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부모는 전전긍긍하기 시작합니다.
"이거 재미없어? 그러면 뭐 하고 싶어? 엄마가 재미있는거 찾아줄게!"
"저거 봐봐. 저거는 재밌지?"
"우리 수연이가 재미가 없었구나. 엄마가 수연이가 재미있어 할 줄 알았지 재미없는 곳 데려와서 미안해."
"수연이는 뭐하고 싶어? 어떻게 해줄까?"
어떻게든 아이의 마음을 달래려 애쓰는 다급한 부모의 모습.
이러한 장면들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자녀의 마음읽기와 공감이
우리 아이에게 '단 한치의 수고와 상처도 주지 않으려는 교육'으로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은 원래 "재미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뱉기도 하지요.
-규칙이 복잡해 보이거나 설명이 이해되지 않아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귀찮아서
-자신이 질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라서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서
-너무 쉬워보여서
-내가 하고 싶은 다른 활동이 있어서
-혹은 내 기분을 풀어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내고 싶어서
다양한 이유로 조금만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건 재미없다며 삐죽거립니다.
안타까운 것은
재미없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하는 부모님입니다.
어른들은 아이의 ‘재미없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그 즉시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거나 아이의 감정을 해소해주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 순간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관심이 없는 활동도 견디고 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어려운 규칙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상황도 있으며
처음에는 재미없어보여도 인내심을 가지고 하다보면 재미있는 활동들도 있다는 것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귀한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지요.
왜 요즘 부모님들께서는 아이가 인내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짠하게 느끼는 걸까요?
힘든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할까요?
인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을 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혹시 부모 스스로가 인내하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이 투영해 놓은 감정 프레임 안에서 아이를 늘 안쓰럽게 생각하는 부모들은
어떻게든 매 순간 아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는 자극을 제공하고 아이의 욕구 충족을 위해 부단히 애를 씁니다.
과연 이 아이는 생활은 행복할까요?
자기 위주의 욕구 충족에 익숙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열 가지가 넘는 과목과 수십가지의 활동들.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활동을 계속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참고 견디고 익히면서 배우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은 매순간이 고역스럽습니다.
반면 긍정적인 자세로 무엇이든 열심히 임하는 아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어요!"
"하다보니 재미있는 활동이네요!"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해보려고요!"
위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은 훨씬 더 풍부하고 만족스러운 행복감을 느낍니다.
저는 교실에서 "재미없어" 라는 말을 금지합니다.
특히 활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런 말을 던지는 것은 함께하는 친구들과 수업을 준비한 교사에게 모두 무례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이 말을 듣고나면 즐겁게 참여하려던 친구들이 눈치를 보며 망설이기 시작합니다. 재미있어 보였던 활동도 내 친구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순간 하기 싫어지는 마음이 생기니까요. 특히 목소리가 크고 친구들 사이에 영향력을 많이 주는 친구가 이 말을 내뱉으면 다른 친구들도 흥미를 잃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활동을 진행해나가도 아이들이 몰입해서 참여하기 어려워지지요. 활동을 열심히 준비한 선생님도 마음이 상하고 다시는 이런 활동들을 준비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활동이 끝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컷 참여해놓고 우리팀이 졌다고 해서 "아 재미없어!" 라면 신경질을 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런 친구들의 말 한마디가 이긴 팀의 친구들의 마음도 상하게 만들고 진 팀의 친구들은 너도 나도 재미없었다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거나 싸움을 조장하기도 하지요.
자신의 한 말의 무게를 모르거나 알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이지요.
"재미없어"라는 말은 꽤 무겁고 무례한 말의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손해가 되는 말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례를 범하는 일이지요.
내가 속한 공동체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고 순식간에 냉랭한 분위기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지요.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솔직하고 당당해서 좋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 말은 예의가 아니니까 쓰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이의 인내심과 도전 정신, 배려심을 배우게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알려주면 어떨까요?
무작정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규칙이 어려워서 잘 알려주세요."
"이거 다하고 난 다음에는 제가 하고 싶었던 활동도 해보면 안될까요?"
"게임에서 졌더니 너무 아쉬워요"
부정적인 감정도
무례한 단어가 아닌 말로 골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말센스를 키워주세요.
아이의 솔직함을 지지하면서도
그 솔직함이 타인에겐 무례가 되지 않도록 조율해주는 것.
이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문장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진짜 '공감 교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