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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연 Mar 09.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는 작가

그림 작가가 된 지 어느덧 4년이 되어간다.

20대 후반의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나는 홀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고 있다. 여느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수입에 불안해하기도 하고, 잘 안 그려지는 그림에 좌절하기도 하면서 우두커니 작업실에 홀로 앉아 빈 도화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 '1년만 내가 하고 싶은 그림을 그려보자'라는 생각을 갖고 회사를 다니면서, 밤이 새도록 그림을 그린적이 있다. 그렇게 시작한 1년이 퇴사를 하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는 4년 차 작가가 되어있었다.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했고, 얼마만큼의 돈을 벌었으며 어떤 성과를 이뤄냈다.'라는 사실에는 큰 관심이 없다. 정량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나의 위상을 내세울 수 있는 단어들 보다는(생각해보니깐 사실 그닥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도 않다.) 어떤 재료들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그 그림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림이 잘 그려지는 시기도, 내 그림이 미워 보이는 시기도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은 오늘도 다시 도화지 위에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들을 그려보며 다시 고민하고, 생각하고, 보살피며 어루만져주는 일이다.


지난 2020년, 1년을 길게 방황을 했다. 그림 스타일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취소되기도, 일이 뚝 끊기기도 했다. 그런 1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끝난 2월 말쯤부터 요 근래 그린 나의 그림들의 느낌이 좋다.


Glory in the Flower / Oil Pastel on Paper


봄이 오는 설렘을 담아, 아직 피지도 않은 개나리를 그렸다. 기분 좋은 따뜻함과 살랑거리는 바람에 나간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기쁨을 느끼고 싶었다. 눈부신 햇살에 고개를 들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빛에 살랑거리는 개나리를 보고 싶어서 고개를 들고 싶은 마음을 그렸다.


나의 단단한 지반을 위해 오랜 시간 묵묵히 방황을 해왔다가, 봄이 찾아오고 싹을 피우기 위해 뿌리가 깊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다시 겨울이 찾아올 두려움을 먼저 느끼기보다는, 현재 힘차게 내리고 있는 뿌리를 위해 다시 또 기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라서 얼마나 행복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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