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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시공간의 아이디어

시간과 공간의 기하학

by Neutron

식탁 위에 놓인 이 사과는 정지해 있는 것인가? 운동하고 있는 것인가?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인가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뉴튼의 고전역학 세계관 하에서 이 사과는 정지해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세계관에서 이 사과는 한순간도 정지해 있은 적이 없다. 이 사과는 줄곧 시간 축을 따라 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하는가 하면, 시간 축을 따르는 운동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여야 상대성이론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제안한 시공간의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의 취리히 공대 재학 시절 그 대학의 수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직후 시공간의 수학적 표현을 위해 민코프스키 시공간을 도입하였으나 처음에 아인슈타인은 이 개념에 대해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전개할 무렵에는 그 아름다운 기하학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의 기본 아이디어는 빛의 속도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만들어 내는 좌표축의 도입이다. 우리가 활동하는 3차원 공간에 ct라는 시간축 하나를 더해서 4차원 시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시간과 공간이 한데 묶인 시공간의 개념이 상대성이론을 얼마나 잘 설명해 주는지 보여주었다. 이제 여러분은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시공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차원의 한 점은 (x), 2차원의 한 점은 (x, y), 3차원의 한 점은 (x, y, z), 4차원의 한 점은 (x, y, z, a) 등 각 좌표축의 개수가 그 점의 차원을 나타낸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공간은 3차원이므로 시간 t가 포함된 시공간 상의 한 점을 정의하려면 다음과 같이 4차원으로 표현하면 된다.


(x, y, z, t)


그런데, x, y, z는 길이 단위이고 t는 시간 단위이다. 4차원 공간 상의 한 점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모든 단위를 길이로 통일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간 t 대신에 시간에 빛의 속도를 곱한 ct를 사용하면 이것은 길이의 단위가 된다. c(빛의 속도)와 t(시간)의 곱인 ct(빛이 이동한 거리)의 물리량을 만들어낸 것이다.


(x, y, z, ct)


4차원은 우리 머릿속으로 상상을 할 수 없다. 차원을 낮춰서 y와 z가 모두 고정되어 있고 x만 변화가 가능한 1차원 공간 상의 한 점을 생각해 보자. 1차원 공간의 한 점은 시간축을 더해 2차원 시공간으로 표현될 수 있다.


(x, ct)


레일 위를 움직이는 기차는 1차원 공간 상에 있다. 기차는 레일 위만 따라갈 수 있을 뿐 레일을 벗어나서는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일을 x라는 좌표축으로 보면 그 위를 움직이는 기차는 분명 1차원 공간 상에 있다. 레일 위를 움직이는 기차는 단지 x라는 좌표 한 개만으로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하여 이 레일은 곧게 뻗은 직선이라고 가정한다. 여기에 시간축을 더하면 기차는 2차원 시공간 상에 존재하게 된다.

그림. 2차원 시공간


이 2차원 시공간에서 (ct, x)라는 점은 항상 ct 축 방향으로 운동하고 있다. 시간 t가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식탁에 놓인 사과가 운동하고 있다는 말은 이 ct 축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공간 상의 움직임이 더해지면 점 (ct, x)는 사선으로 비스듬히 움직일 것이다. ct는 빛이 시간 t 동안 진행한 거리를 말한다. 따라서 기차가 역에 정차해 있을 때 기차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ct라는 시간축 상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는 각 좌표값의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 좌표값의 개수만이 중요하다.


이 평면 좌표계를 우리에게 익숙한 표시법으로 바꾸면 ct 축은 수직 한 y축이 되고 점의 좌표는 (x, ct)가 된다. 이제 역에 정차해 있는 기차에서 빛을 쏜다고 상상해 보자. 정지해 있는 기차에서 앞으로 손전등을 비춘다. 손전등의 x 좌표를 0이라고 하면 빛은 x ~ ct 시공간에서 원점 (0, 0)를 지나 c의 속도로 공간을 지나간다. 시간 t가 흘렀을 때 이 빛 입자의 시공간상의 좌표는 (ct, ct)가 된다. 이 빛의 궤적은 시공간 좌표 평면에서 기울기가 1인 직선이 될 것이다. 이 직선을 '빛의 세계선(Worldline)'이라고 부른다. 시간 좌표를 과거에서 미래로, 공간 좌표를 좌우로 확장하면 X자 모양의 세계선이 만들어진다.


그림. 빛의 세계선과 입자의 세계선. 출처 : Google


이제 이 기차가 v의 등속도로 공간상 운동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기차의 공간상 좌표 x는 시간 t에 따라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x = vt


(vt, ct)


이를 2차원 시공간 좌표상에 표시하면 위 그래프에서 '입자의 세계선(Worldline)'에 해당된다. 그 어떤 물체나 입자도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0, 0)과 (vt, ct)를 지나는 직선의 기울기는 c/v 가 되고 이 것은 항상 1보다 크므로 '입자의 세계선'은 '빛의 세계선' 안쪽에 위치하게 된다.


차원을 하나만 더 늘여서 공간을 2차원으로 확장해 보자. 기차가 아니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의 공간은 높이가 없는 2차원일 것이다. 앞, 뒤, 좌, 우로는 움직일 수 있지만 위,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다. 여기에 시간축이 더해진 3차원 시공간은 입체가 되며 다음 그림과 같이 원뿔 형태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빛의 세계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을 우리는 '빛원뿔(Light Cone)'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모든 입자나 물체의 운동은 빛원뿔 안에 존재하게 된다. 빛원뿔 바깥쪽은 광속보다 빠른 입자의 영역이다. 현재까지 이러한 입자는 발견되지 않았고 상대성이론에 따라서도 이런 입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림. 빛원뿔. 출처 : Google


이렇게 만들어진 시공간 좌표계는 나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대상에 대한 시간적, 공간적 양이 달라짐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기하학으로 표현하여 이들 물리량이 상대속도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현상을 직관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이 효과는 나중에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시간을 내서 긴 호흡을 한번 하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내 주변에는 책상과 같이 정지해 있는 물건들도 있고 내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며 자동차와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들도 있다. 모두 3차원 공간 안에서 정지해 있거나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시간축을 하나 더 도입을 한다면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4차원 시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현재의 스틸컷이 변하여 1초 뒤의 스틸컷이 된다. 각 스틸컷은 끊임없이 변하며 미래로 나아간다. 현재 정지해 있는 사과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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