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고민한 지 여러 해가 흘렀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만 국민은 기득권에 의해 여전히 지배당하고 있다. 아니, 민주주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같다. 다수의 국민들은 착취당하면 당하는 대로 내 소중한 삶을 방치하고 있다. 야만적인 사회가 되었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 돈과 권력 앞에 순순히 무릎을 꿇는다.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그냥 지배하는 대로 지배당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이들이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배와 피지배 구조를 고착화하는 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조를 하고 있다면 그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경제지표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지표들을 보면, 행복지수는 147개국 중 76위, 청소년 자살률 OECD 3위, 노인 빈곤율 OECD 1위, 언론 신뢰도 조사 대상국 47개국 중 38위 등 인간답게 살아갈 환경 측면에서는 후진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K-Pop이니 문화 강국이니 하는 하찮은 국뽕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지 못한 채 어린 자식들과 함께 목숨을 끊는 엄마가 있다.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이 있다. 누가 그들의 인간적인 존엄을 앗아갔는가? 능력이 없는 그들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당신이 이 지배와 피지배 구조를 고착화시킨 장본인이다. 사실 나도 오랫동안 당신과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김누리 교수의 주장은 그동안 내가 찾던 열쇠였다. 비상식이 지배하는 나라로 전락해 버린 건 바로 우리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당신과 나는 인간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며 힘과 권력을 추종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정의고 선이라 착각하면서 한평생을 살아갔다. 그런 파시스트의 나라에서는 제2, 제3의 독재자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대표적인 파시스트 아돌프 히틀러는 인간 세상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작동하는 무한 경쟁의 무대로 보았다. 그중에서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우슈비츠에 유대인을 가두고 비인간적 생체실험과 야만적 학살을 자행한 것이 뭐 그리 잘못 인가하는 입장이었다. 히틀러의 사상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민주주의는 인간은 평등하며 서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바탕 위에 세워진다. 분명 히틀러는 인간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고, 이로 인해 우리에게도 비난을 받지만, 그때의 히틀러가 가진 생각과 지금 우리가 가진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지금 우리 교실에서는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아이들은 1등부터 마지막 등수까지 일렬로 줄을 선다. 경쟁 우위에 있는 아이들은 경쟁 열위에 있는 아이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진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경쟁 우위에 서도록 독려한다. 그것이 공정이고 정의라고 주입시킨다. 이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가질까, 잠재적 파시스트가 될까? 잠재적 파시스트들의 세상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발휘될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대화와 타협 대신 정적 죽이기가 난무한다. 대중들은 비판 없이 선동되고 힘과 권력을 따라간다. 권력을 미화하고 추앙하며 자신도 그 편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히틀러 통치 하의 독일에서는 게르만 순혈 주의가 모든 사상을 지배하였다. 게르만 민족이 세계의 어느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지금의 한국에는 엘리트 숭배가 모든 사상을 지배한다. 서울대를 나오고 검사, 판사가 되면 법 위에 군림한다. 지금 이 땅에는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엘리트 파시스트들이 버젓이 권력을 쥐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같은 잠재적 파시스트들이 그들을 숭배하고 지지하며 그 밑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김누리 교수는 경쟁교육은 야만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회 부조리의 씨앗이 우리 교실에서 발아한다.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바꾸려 하면 이미 이 교육시스템으로 기득권을 쥐고 있는 무리들의 엄청난 저항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독일이 2차 대전 이후 나치즘과 파시즘을 단절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이 교육 개혁이었다. 경쟁을 없애고 우열을 나누지 못하게 했다. 지금 독일에서는 대학을 가고자 하는 학생이 대학과, 학과와 입학일을 정하여 무료로 입학하고 공부할 수 있다. 단지 아비투어라는 대입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된다. 90% 이상이 그 자격시험을 통과한다고 한다. 대학 간 서열도 없다. 독일의 민주주의는 매우 잘 작동하고 있다. 그 원인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은 경쟁 없는 교육에서 만들어졌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변곡점일지 모른다. 히틀러를 지우기 위해 교육개혁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었던 독일처럼, 우리나라도 엘리트 독재를 타파하기 위하여 교육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매우 좋은 상황이다. 모두가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 엄청난 기득권의 저항도 뚫어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이 땅에 민주주의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