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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Sep 18. 2021

뽑기 운이 중요한 시스템?

그것이 정말 최선일까

#1

   최근에 D.P. 를 인상 깊게 봤다는 이야기는 했었다. 분위기를 보면 수통 교체를 하는 것 자체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불필요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그저 "옛날의 일이다", "과장이 심하다"는 식의 맨입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일관성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겠지. 뭐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니까 수준이 넘어가는 무언가를 하라는 것도 너무한 이야기라고 생각은 한다.


#2

   D.P. 에 대해 다루는 걸 보면 메인 빌런 역할을 하는 "황 모 병장"이 있다. 미디어에서 작품 소개를 할 때 이 황 병장에 대해서 "사이코패스"라고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람 사이코패스 아니다. 물론 인성 쓰레기이고 인간쓰레기인 건 맞는데,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악(惡)의 형태라고 나는 본다. 여기서의 시스템이란 물론 군대다. 즉, 황 병장의 인성은 썩 좋은 편이 못되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속에 가지고 있는 인성을 가진 사람과 주위 환경과 시스템이 부적절한 토양인 경우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이 비로소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과 같다.


#3

   유명 영화 중에 "공공의 적"이라고 있는데, 여기서 이성재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아마 사이코패스가 맞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은 대상을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거나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시비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 겸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부모도 해치고 아주 난리다. 만약 전역한 황 병장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은 수모에 대해서 수모를 준 대상에게 바로 보복을 했다면 사이코패스라는 의견에 동의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데다가, 시즌 1 후반부를 보면 알 수 있는 전개에서 그의 태도를 보면 사이코패스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 부분은 직접 보면 좋겠다.


#4

   전역한 황 병장의 달라진 듯한 모습은 사람이 정말 달라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그저 속한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D.P. 에서 나온 병영 부조리나 폭행, 폭언 등이 "용인"되니까 그렇게 한 것뿐이고,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면 X 되니까 하지 않은 것뿐이다. 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저런 일들에 대해 은폐하거나 피해자 탓으로 돌리거나 하는 식으로 하는데 결국엔 게으름이고 원인 개혁에 관심이 없고 귀찮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조만간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써볼 생각이다.


#5

   황 병장 사이코패스론보다도 내가 씁쓸하게 여기는 점은, 주인공 콤비 중 선임 포지션인 한호열 상병에 대한 (과도한) 선망이다. 확실히 그는 이상적인 선임이고 캐릭터이고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결국 군 생활의 최선이 황 병장 같은 미친 선임을 만나면 두들겨 맞다 죽는 선택지가 되지 않고, 한 상병 같은 좋은 선임을 만나면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되는 것에 나는 매우 큰 회의감이 든다. 엄연히 시스템이라면서 왜 운이 이렇게 크게 반영되는 것인가? 과거의 군대든 지금의 군대든 솔직히 큰 차이는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친 간부, 미친 선임, 미친 동기, 미친 후임 만나면 무사히 전역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었고, 쉽지 않은 것이다. 반면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잘 보낼 수 있겠지만, 그게 결국 운 아닌가?


#6

   군대의 어두움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캐릭터 유형이 "가해자가 된 피해자" 유형이다. D.P. 에서도 조 일병이 그렇게 되어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역시 직접 넷플릭스로 확인하기 바란다) 보면 과연 군대라는 시스템이 개개인을 보호하는데 1mg의 관심이라도 있는지 의심이 든다. 아 표현을 정정하고 싶다. 개개인을 보호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 6화 제목이 "방관자들"이거든. 문제가 생겨도 방관하고, 그 문제는 시스템적으로 생겨나는 것임에도 그저 모든 것을 운에 걸고 만날 사람들이 황 병장이 아니라 한 상병이길 바란다는 것은 내가 봤을 때는 큰 문제가 있다.


#7

   미국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지역 유력 신문사의 특종팀(스포트라이트팀)은 지역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가톨릭 교회의 조직화된 성범죄 은폐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전 세계를 발칵 뒤집게 되는 특종 기사를 써내게 된다. 여기서는 굉장히 은근하고도 무겁게 지역 유지들과 결탁된 자들이 특종팀을 견제하고 방해하는데(절대 대놓고 의도를 드러내지도 않고, 깽판을 치는 것도 아니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위협적"이다), 팀의 대장이 고등학교를 미션 스쿨로 다녔는데 그 미션 스쿨에 특종 기사 관련으로 찾아가게 된다. 알고 보니 자신도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신부(다른 동아리 고문 선생님이었다)가 자기의 동문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동문회장 등에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그저 우리는 그 신부가 담당하던 동아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받지 않았을 뿐이고, 피해를 입은 동문의 입장에 우리가 해당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운일뿐이었다"라고 말이다. 은근하게 계속 압력을 넣던 그들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되는 바가 있는지 말을 잇지 않는다.


#8

   스포트라이트에서 꽤 뇌리에 오래 남는 대사가 있다. "아이들을 길러내는데 하나의 마을과 도시가 필요하다면,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데에도 하나의 마을과 도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군대의 문제는 절대 특정 사이코패스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선하게도 악하게도 될 수 있는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악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불만 요소들, 너무나도 고립된 작은 사회, 내부 고발에 대한 터부 등이 선악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대부분 악인으로 타락시키는 것이고, 그런 악인들을 만나면 죽지 않고 정신적으로 미치지 않고 육체적으로 불구가 되지 않고 전역할 수 있기를 그저 기도해야 하는, 모든 것을 운에 맡겨야 하는 안일한 시스템이 슬프게도 현 상황의 최선인 듯하다.


#9

   언젠가는 운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웃기지도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이 개선되기를 바라고,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계속 그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지 않나 강한 생각이 든다. 계속 그렇게 안일한 자들에게 수많은 청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주고 "방관"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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