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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Sep 23. 2021

업무 협조 요청은 "매우 미리"하자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모인 회사에서는 다양한 일이 존재한다. 어떤 일은 혼자 야근을 하든 휴일에 재택으로 하든 혼자 할 수도 있는 일이 있고, 어떤 일은 같은 부서의 다른 사람이나 아예 다른 부서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일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타인이나 타 부서에 업무 협조 요청에 대한 개인적인 조언을 적어 본다.


   내가 두목의 나라에서 배운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소박하게 체득한 것은 어느 정도 내 영향력이 미치는 사람들에게는 전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내 조언은 언제나 업무 협조 요청은 최대한 여유롭고, 미리 해야 한다고 단정 짓곤 한다.


   예시를 들어보면, 근무일 기준으로 넉넉하게 3 근무일 정도 안에 협조가 진행 완료될 사이즈의 일을 요청한다고 하면(즉 그 사람이 자기 할 것을 하면서, 내가 요청한 일도 진행을 완료할 수 있는 적정 시간이 3 근무일인 경우), 나는 무조건 "매우 미리" 요청한다.


빨간 테두리(10/1)가 내가 자료를 받아야 하는 날인 경우, 주황 테두리보다는 더 미리 요청해야 한다. (캡처:네이버)

   내가 10월 1일에 자료를 받고 싶고, 암묵적으로 9월 28일에 요청하면 3 근무일 뒤에 받을 수 있다 해도 개인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타이트한 일정이다. 물론 28일(주황)도 어느 정도 양해될 수 있는 안전 경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지만, "반감"이 쌓일 위험이 크다.


   왜냐하면 타인의 일정이라는 것이 이미 짜여있을 확률이 큰데 어찌 되었건 타이트한 협조가 끼어들면 그 일정을 다 뒤흔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요청한 업무가 0.5 근무일 정도 규모라고 하자. 만일 3 근무일에서 0.5 근무일을 우리의 요청이 차지해버린다면, 그 사람의 일정의 6분의 1을 빼앗아오는 것이 된다. 만약 3 근무일을 알차게 미리 일정을 짜 놓았는데 아무리 3 근무일 전이라도 요청을 받으면 화가 차오르기 마련이다. 


   위의 예시에서 0.5 근무일이라고 했는데, 내가 폐급이라고 멸시했던 인간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협조 요청을 빙자한 명령을 내렸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조금 비틀어서 어떤 식이냐면 10월 1일 오전까지 자료를 보내달라며 9월 30일 오후 5시에 메일을 보내는 식이다. 이쯤 되면 그냥 싸우자는 건데, 이런 폐급식 업무 진행도 두목의 나라에서는 상당히 흔했고 나는 그런 요청자(명령자)들하고 대부분 싸웠다. 달리 폐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네들 일이 최우선이라 생각하는 것도 타 부서 입장으로는 우이독경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내가 권장하는 방법은 업무 요청은 무조건 기간을 매우 넉넉하게 잡는 것이다. 아무리 0.5 근무일 짜리 일이더라도 10 근무일, 20 근무일의 여유를 두고 요청한다. 투입될 근무일이 큰 경우는 더욱 여유가 있도록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증빙이 될 만한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지 찾아가서 구두로 말을 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하면 좋지 않다. 원래 사람이란 타인의 일을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특히나 그것이 바로 보상되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요청하면 금세 휘발된다. 구두는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통화 이력이 남는 휴대전화라 한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마디에 효력을 크게 잃는다. 그래서 이런 경우 "무조건" 메일 등을 활용한다. 카톡이나 문자도 유사 증빙에 해당하나 수단 자체가 문제가 있는 편이라서 역시 메일이 좋다.


   만약 20 근무일 정도의 여유를 두고 첫 번째 요청(0.5 근무일 업무 규모)을 진행하기로 한 경우 일단 정중하게 필요한 정보들을 기재해서 메일을 보낸다. 솔직히 용도는 그게 다다. 읽든 말든 상관도 없다. 그저 보내 놨고, 요청했다는 사실만 남아 있으면 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환기하는 메일이다. 리마인더는 중요하다. 20 근무일 정도 미리 요청을 보내 놨었고 이제 10 근무일 정도 지난, 즉 10 근무일 정도 우리가 자료를 필요로 하는 시기까지 남은 상황에서 보내는 환기 메일이다.


   기본적으로 메일은 꽤 효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20 근무일 전에 보낸 것에 대해 미리 해뒀든 무시하든, 공식적으로 회사 메일을 무시할 수 있는 임직원은 매우 적다(원래는 없어야 하겠지만, 내가 다니는 데는 백두와 최고 존엄이 존재해서). 20 근무일 전에 첫 요청 메일을 보내고, 10 근무일 정도 지난 후 환기 메일을 보낸다. 이것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꽤 큰데, 바로 "명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저작권 때문에 쓰려는 것을 참고 싶지만,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명대사인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명분이"를 떠올리면 된다. 여기서 명분이 뭘까? 내가 엄청 미리(20 근무일 전에) 처음 요청했고, 환기 메일을 중간 시점(10 근무일 경과)에 보냈다면 나는 업무 협조에 대해 최대한 미리, 공손하게 그리고 환기 메일까지 보내 놓은 상태가 된다. 만약 첫 메일과 환기 메일에서 반발적인 회신이 왔다면 모르겠지만, 아예 대꾸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메일에 대해 "긍정"한다는 뜻으로 여겨지므로 딴 소리를 할 수 없어진다. 매우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0.5 근무일이면 할 일을 20 근무일 전에 요청했는데도 진행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일을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은근한 압박을 넣을 수 있다. 최대한 미루는 것은 요청받은 자의 사정이 되고, "일을 하지 않는다/하지 못한다"는 평판은 누구나 무서우니 당신은 원하는 자료를 필요로 하는 시기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뒤틀린 발악이 나온다면, 여론전에 써먹을 수도 있는 좋은 "사실"이 생겨날 수도 있으니까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최대한 미리, 그리고 증빙으로 활용 가능한 수단을 적절히 활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자료를 늦지 않고, 최대한 덜 반발을 사면서 얻어내는 방법이 된다. 회사에서는 사실 누구나 바쁘다. 누구나 바쁜 척하고 있거나 실제로 바쁘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 회사이니까. 그러니 타인에게 원하는 것을 적기에 받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교류가 이어질 상대의 반감을 사지 않으려면 이런 부분을 미리 설계하는 것이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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