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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Feb 03. 2022

용서란 대단한 것일 것이다

#1

   친구 A와 B의 사이가 틀어졌다. A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서툴고 급발진하는 면모가 있어서 나와도 갈등이 있었다. 갈등이라기보단, 내가 몇 년 정도 A와 거리를 두었다. 어차피 아주 맞닿아서 지내는 시기를 지난 인간관계는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다. 몇 년 정도 그렇게 지내다가 B와 C(새로운 등장인물)의 중재 아닌 중재로(사실 A는 내가 자신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는 모른다) 4인 체제가 부활했다. 이것이 해피 엔딩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적당할 때 결말을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야기는 계속되니까.



#2

   내가 A를 한동안 만나고 싶지 않아 졌던 것과 비슷한 동기로, B가 A에 대해 비슷한 경험과 비슷한 감정 상태를 보이고 있다. 다소간의 차이라면 "B는 A에게 사과를 받기 전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이라면, 나는 그냥 "A를 내 애착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입장을 골랐다는 점이다. 나와 B의 경우, 둘 다 A는 직접적으로 귀책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3

   나는 A에게서 사과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A를 그냥 그런 성격이니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A를 아마도 용서한 것 같다. 비록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 B는 A에게서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러려면 B와 A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생업이 바쁘기도 하고 처음 언급했듯이 아주 맞닿아서 지내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조건문이지만 조건문이 아니게 느껴진다. 아마도 B는 A를 용서하지 않지 않을까(지금 짐작해보기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4

   A든 B든 어느 정도 내 애착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니, 그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냉혈한의 마음으로 생각의 관 뚜껑에 못을 박기엔 망설여진다. 문제의 유발자인 A는 차치하고, B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대가 없는 용서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 용서는 다른 사람이 권해서 될 일도 아니고, 하물며 강요해서는 더더욱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5

   지나간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종종 친구나 학우에 대한 다툼에서 그 다툼의 원인에 대한 경중이라든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보다는 양비론적인 결론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100 대 0에 가까운 일이어도 질책은 50 대 50인 경우가 많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 용서하라는 판결(강제)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용서만 한 것은 없으니 결론이 용서라는 점에는 참작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런 강요에 대해서는 과거 미화보다는 불쾌감이 크다. 과거 미화의 범주를 뛰어넘을 정도로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용서가 올바른 결론이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과정이 강요로 된 것이라면 부정적인 의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6

   그런 상황이고 나도 무엇이 되었건 "강요"하는 것, 또는 "강요"받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B의 방침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B가 A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도리어 이것은 A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B를 위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억지로 용서하고, 억지로 화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7

   조건 없이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부정적인 연쇄 반응 및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그만한 특효약이 없다. 타인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라는 것을 언제 체감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것이 언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조건 없는 용서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세상은 굉장히 살기 좋아지겠지만 그러기에는 쉽지 않다(나도 평소에는 분노에 사로잡혀서 살기에...). 그래도 그런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종종 보이고 들려오는 것에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용서는 대단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친구 A 말고도 더 많은 존재에 대해 용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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