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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an 12. 2022

시간과 희소성(time & scarcity)

   2022년도 벌써 12일이나 지나갔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구백 년 전쯤 유명한 선생님이 말하길, "사람은 늙기는 쉽고 학문을 이루기에는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을 하였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학문을 이루는 것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상황인데, 사람은 정말 늙기는 쉽기 때문이다.


   인류가 불로불사를 얻게 된다면, 시간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더 이상 희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희소하다는 것은 유한한 것, 충분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학부 때 전공했던 경제학은 결국 "희소성"에 대한 학문이었다. 유한하고도 충분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 핵심이었다.


   어쨌든 불로불사는 내 생각에, 내가 일생 중에 도달할 수 있을 경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절대적인 것은 거의 없는 세상이지만, 생명체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회피가 불가능하고, 가드도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


   나는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도리어 정 반대다. 유한하고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은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한대 속에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하나는 한 없이 작아지고 말 것이다.


   무한대와 비교했을 때, 36,500이라는 숫자는 턱없이 작을 것이다. 이 숫자를 언급한 이유는 만 100년을 단순히 생각해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2월 29일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1년을 365일이라고 단순하게 보고 100년을 생각해본다면 36,500일이 나온다. 갓 태어난 아이(만으로 0살)가 만으로 100살이 되기 위해서는 36,500일이면 된다.


   그동안 해는 36,500번 뜨고 질 것이고, 하루에 3끼를 먹고 산다면 109,500번의 식사 기회가 있겠고, 기타 여러 가지의 우리의 행동과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경험하는 것은 유한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각자 다르지만, 그 끝이 있기에 아껴 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게임을 할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별로 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 것은 아니며 욕구는 옛날과 다름없이 그대로이지만, 게임을 함으로써 없어져버리는(사용해버리는) 시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유한하고 소중한 시간을 몇 년 동안 두목의 회사에서 헐값에 임금(wage)으로 맞교환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끼지만, 그 시간 동안 와신상담하며 열심히 모으고 투자해나가고 있는 것에는 소소한 즐거움과 성취가 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너무 늦지 않은 때에 경제적 독립과 자유를 이뤄서 내 희소한 시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기 위해서 나는 노력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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