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Jan 05. 2022

(중소)기업식 메일 발송 법

   검은 콘프로스트의 해를 맞아서 첫 개시의 게시글은 중소기업식 메일 발송 법에 대한 것이다. 나 자신도 과거에 욕을 먹었던 적이 있고, 비슷한 실수를 후학들에게도 많이 발견한 끝에 내가 최근 내린 결론이 있다. 아 정말 모르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사실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을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소기업은 아무리 허접하더라도 그곳들은 모두 전쟁터이기 때문에 평화로운 훈련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정독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1. 상황

- 나는 어쨌든 신입임

- 타 부서에 요청해서 받을 서류가 있음(타 부서가 아는 분야이지만, 새로운 일임)

- 상사/선임 등이 타 부서에 그냥 요청 메일 쓰면 된다고 함

- 그래서 하라는 요청 메일을 작성함. 정성껏 맞춤법도 확인하고 아주 정중하게 썼음

- 시간이 약간 지난 후 타 부서 수신인이 찾아와서 화냄 / 전화가 걸려 와서 화냄

- 나는 그저 억울하고 회사 다니기 싫어짐



   나는 분명 정중하게 썼는데 이렇게 욕을 먹는 이유가 뭘까? 일단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놓친 것이 있지 않을까? 각자 30초 정도만 생각해보고 넘어가자.



2. 정답

- 나는 어쨌든 신입임

- 타 부서에 요청해서 받을 서류가 있음(타 부서가 아는 분야이지만, 새로운 일임)

- 상사/선임 등이 타 부서에 그냥 요청 메일 쓰면 된다고 함

- 그래서 하라는 대로 요청 메일을 작성함. 정성껏 맞춤법도 확인하고 아주 정중하게 썼음

- 시간이 약간 지난 후 타 부서 수신인이 찾아와서 화냄 / 전화가 와서 화냄

- 나는 그저 억울하고 회사 다니기 싫어짐



3. 해설


   가끔 아예 미쳐가지고 아예 작성 자체를 엉망으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너무 난이도가 낮아서 고려하지 않는다. 이 글은 정중하게 했다고 생각되는데도 4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1) 타 부서(일반적으로 잡으면 그냥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에 새로운 일을 요청하는 상황(머리에 바로 경고등 들어와야 됨!)


   타 부서 또는 타인에게 있어서 "요청된 일"이라 하면,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 알 바도 아닌 일"이다. 그것이 없었어도 자신의 일은 돌아가는 것이니까. "새롭고, 추가적인 일"이다. 정말 멋지고 좋은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 요청 메일 받으면 기분부터 나빠진다. 하는 일 + 알파이기 때문이다.


(2) "그냥"의 함정(그냥 메일 써라 -> 죽어라! 와 같다)


   사실 "그냥"과 "메일 쓰기"는 각각은 아주 독성이 강하지는 않다. 독성이 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냥 메일 쓰기"는 맹독이다. 회사에서 쓰는 메일은 꽤나 "무거운"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메일은 흔적이 남는다. 수신/참조, 보낸 시간, 첨부 파일 등이 남는다. 메일을 보냈으면, 사실 그걸로 상대에게 책임이 넘어간다. "보냈지만 확인하지 않은 것"의 책임은 확인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정중하게 썼든 아니든 간에, 메일은 사실상 일방적 요구/명령과도 같아질 수 있다. 아래 사항 확인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쓴다면.


(3) 메일 쓰기 전에 확인했어야 하는 것들(이 부분이 핵★심이다)


1) 요청 사항에 대한 "사전" 설명(대면 O/전화 O/문자 X/카톡 X)

   사실 1,2번은 동시 진행이 되겠지만, 일단 가장 먼저 메일부터 날리기 전에 접촉을 해야 한다. 대면이 제일 좋겠고 전화도 비슷하다. 문자와 카톡은 내가 싫어하는 편이라서 그렇긴 한데, 아무튼 대면이나 전화보다는 가부가 분분할 수 있으니 지양하는 것이 좋다. 적합한 방법으로 접촉을 시도한다(물론 가까운 곳도 아니고 지역 자체가 다를 수도 있는데 이때는 전화하는 거고, 옆 방에 있으면 말하러 가는 것이고). 


2) 타인/타 부서의 가용 일정에 대한 "사전" 문의

   적당한 방법으로 접촉을 했으면 이제 잘 구슬려야 한다. 정보를 어느 정도 캘 수도 있겠고(정말 바쁜 건지 아니면 시위하는 건지 등등) 어찌 되었건 그쪽에서 해주지 않으면 내가 할 판이 되는 것은 피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전에도 쓴 적 있지만 필요할 것 같은 요청은 기한을 매우 넉넉하게 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내가 금요일 오전까지 필요하다고 목요일 퇴근 전까지 보내달라고 목요일 오전에 가서 말하면 당연히 욕먹는다. 일단은 모든 직원들은 "모두 바쁘다". 그것이 공식 입장이다. 사장/상사가 왔을 때 저는 바쁘지 않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나 바쁜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미 일정이 짜여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해야 하고, 거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요청해서 받아내려면 상대에게 가용 일정이 넉넉할수록, 그리고 미리 말해둘수록 요청하는 쪽에서 유리해지는 것이다. 매번 요청을 급작스럽게 하는 경우 해소되지 않는 분노가 쌓이기 마련이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저런 식으로 하는 사람을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괜히 욕먹을 일을 만들기 때문이다.



4. 결론

   아무리 내용을 정중하게 썼더라도 상대 일정 파악 없이 내 필요에 따른 "요구/요청 사항을", "무거운" 회사 메일로 쓰는 것은 아무리 정중하더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명령문으로 밖에 입력이 되지 않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일이 목요일 오전에 날아오더니, "기한은 바쁘시겠지만 목요일 오후까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써도, 번역은 "야 목요일 오후까지 내놔"로 된다는 뜻이다. 더 열 받는 것은 메일은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받고 무시하는 선택지는 큰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고 연락 또는 회신을 받은 쪽에서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찾아와서 화를 내거나, 전화로 화를 내거나, 메일로 화를 내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그냥 메일 쓰면 돼" 같은 말은 믿지 마라. 요청을 해야 되는 상대에게 메일 보내기 전에 미리 양해의 연락을 하고 메일로도 쓰겠지만 일단 말로도 설명해두는 것이 상대의 화를 누그러트리는 방법이다. 임원이나 상사, 팀장 등은 어차피 명령으로 써도 상관없으니 그렇게 말하겠지만(그냥 메일 보내면 돼 같이 무책임한 말이고, 저것도 누가 시전 하든 해소되지 않는 분노 자체는 쌓인다), 신입이거나 연차가 낮은 상태에서는 저렇게 하면 바로 욕먹는다.


   참 별 것 아니지만 나도 초년생일 때 저렇게 해서 욕먹었었고, 많은 초년생들이 많이 반복하는 것을 보니 이것은 전달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들은 이런 실수를 할 때 자신은 하지 않아서 센스 있는 직원이 되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나이 없이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