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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Apr 04. 2022

마음은 언제나 철저히 숨기자

   사기가 없다는 전제 하에, 어떤 형태의 노름을 한다고 해보자. 트럼프나 화투 같은 것을 가지고 서로 높은 패를 겨룬다든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의 패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패를 가지고 있어도 상대방에게 그것을 들킨다면 상대는 그 판을 포기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다. 반대의 경우 블러핑을 통해서 내가 가진 패가 엄청나게 낮더라도 상대가 포기하게 할 수도 있다.


   영화 "타짜"에서 계속 묻고 더블로 가는 상황, 마지막에 곽철용(김응수 옹)에게 주어진 것은 두 끗이었다. 너무나 낮은 패인지라. 죽고 끝낼 때 고니(조승우)의 패를 묻는 응수 옹. 고니의 패는 두 끗보다 낮은 한 끗이었다. 사기가 없다는 전제 하에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으면 패가 좋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깊게 들어가면 그때도 일부러 타짜인 고니가 자기한테 한 끗, 곽철용에게 두 끗이 들어가게 하는 도발을 구라를 치고 그런 것으로 기억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를 위해 왜곡되고 단편적으로만 인용하였다).


   카지노에 가서 패를 받아놓고 떠벌리면 모든 판을 질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가진 패를 공개하는 것은 반드시 패배를 부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카지노에서만, 심리 게임에서만 통하는 격언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면 인생 전체가 카지노와 같다. 인생이라는 경이로운 오픈 월드 게임에서 마음을 들키는 일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지낼 것이 아닌 이상 인간은 타인과 엮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서로의 마음이란 은밀하고도 매력적이며 파괴적이기도 한 것이다.


   몇 년 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 군상들을 만나왔다. 상대하기에 무서운 사람들은 내 적들이 아니었다. 적들은 나를 명백하게 적대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알기 쉬웠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중립적이면서, 자신들에게 입수된 것들에 대해 쉽게 퍼 나르지도 않았고,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내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판명된 자들보다도, 그들이 나는 더 꺼림칙하고 두려웠다. 그들을 잘못 봐서(포섭이 가능할 것이라 얕봤던지) 내 마음을 털어놨던 사실만큼 후회 막급인 것은 단연컨대 없다.


   어느 집단이든 간에 이득과 손해가 걸리면 타산적이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맞닿아 있다. 그런 것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언제나 발생한다. 학창 시절에 경쟁하던 친구가 분명 나보다 발표를 못했는데(물론 내 관점에서) 나보다 점수가 높았다고 하면 분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쿨하게 넘어가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질투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학생부와 내신이 달린 문제일 테니 이해관계가 엄연히 성립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한 모임인 직장 생활은 애초에 시작이 이해관계다. 놀랍게도 아무 문제없다가도, 직원별 연봉 테이블이라도 노출되면 구성원 대부분의 불만족도가 올라간다. 그런 점에서 연봉 정보 등은 판도라의 상자로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관리가 허접하게 되는 곳인 경우 그런 것도 기밀 관리가 되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키곤 하겠지만.


   특히 회사 같은 곳에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어디서나 중요한 일이지만, 회사에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홉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인의 만인의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마음을 모르겠다는 둥, 마음을 드러내라는 둥 시위를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마음을 잘 지켜왔다는 의미일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마음속을 모르겠으니까 (내가)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소리. 집단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극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홀랑 넘어가면 도루묵이 된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그런 상황에서 큰 의미는 없고 밝혀져도 무해하지만 적당히 마음을 드러낼 만한 것들을 평소에 준비해 놓는 것이다. 철저하게 방어를 하면 할수록 공격도 거세지기 때문에, 적당하고 아무래도 좋은 낮은 수준의 마음 정도는 종종 공개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정치 싸움이나 관계도/세력도 그림은 미리 잘 그려두는 것이 좋고 그것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추궁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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