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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l 07. 2022

안일함의 대가

   그것을 이 며칠 동안 절감하고 있었다. 과거의 내가 고집을 부려서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한 것이 있어서 이것과 열대야 때문에 잠 못 이루며 자학을 하던 끝에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돌이켜 보는 반성회를 개최하는 일에 이르렀다.


   그것의 작성은 노션에다가 해두었다. 이 인생을 돌아보는 문제점 보고서를 작성해볼 때, 나는 정말 전신이 팩트로 복합 골절돼버리는 것 같은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안일하게 살았다는 점에서 엄청난 수치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간략하게는 내 치명적인 실수들을 공개해보자면 진로 및 적성의 탐색이 30대인 지금까지도 되어있지 않으며(이 말은 곧 당연히 10대 20대일 때도 안 되어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인 대학 진학에서 "전공"보다는 "학교"를 우선시했던 것이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유명한 학교의 유명 학과를 갈 수 있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내 애매한 득점은 유명한 학교의 비인기 학과를 갈 것인지 아니면 전자의 학교보다는 선호도가 떨어지지만 인기 학과를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는데 나는 전자를 골랐던 것이다.


   그렇게 유명한 학교의 비인기 학과를 간 나는, 공부 자체는 재밌었는데 이것의 연장선에 있는 진로에 대해서는 거부했다. 즉, 나는 내 주 전공을 버렸다. 사실 지금도 후회는 안 한다. 이 전공을 거쳐 무난하게 이어지는 길에 대해서는 지금도 흥미는 없고, 극단적으로 특성상 지금에라도 하려면 할 수도 있는 구석이 있지만 좋은 생각도, 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주 전공을 버린다"는 선택지는 꽤 큰 파멸을 내게 선사한 것 같긴 하다. 애초에 주 전공을 사릴 생각도 별로 없었던 나는 굳이 왜 그러면 여기에 시간을 쏟은 것일까 하는 물음표 수십만 개의 반성회를 하다 보니 최근 몇 년 간의 실책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아졌다. 도리어 이 정도로 안일하게 했으면서도 물론 최고의 결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악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주전공을 버렸으며, 진로 및 적성에 대한 고려가 되어 있지 않으니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바라던 것도 사치스러운 이야기였다는 성찰이 나왔다. 나는 결국에 적당히 작고 이름 없는 회사에 흘러들어 가서 그냥저냥의 미래 없는 생활을 하는 중인데, 저렇게 살았는데도 일단 자기 먹고사는 것은 어떻게든 하고 있으니까 덤덤해져 버렸다.


   가까운 시점에 몇 가지 꽤 큰 실수를 했다만(그리고 그것 때문에 열받아서 날뛰다가 인생 돌아보기를 하게 되었지만), 인생 전체로 봤을 때 내가 한 결정적인 실수들은 가까운 시점의 실수들은 아주 귀여운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화폐로 따지면 최근에 100만 원 정도 사기당했는데 인생 전체를 돌이켜보니 한 10년 전에는 100억 정도 사기당했다거나 뭐 그런 느낌이다. 문제는 그나마 사기를 당한 것이면 사기꾼이 죄를 짓는 것이지만 이건 오로지 내 탓이라는 것이 매우 큰 차이가 되겠다.


   타임머신은 없고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지금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늦은 때라는 것은 없고, 인생과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그 결말이 어떨지 아무도 모를 테니 말이다. 나는 한동안 내가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안일하게 살고도 최악이 아닐 수 있다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더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내 생각보다 욕심이 많은 인간이었으니까,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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