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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Feb 07. 2023

버려버린 시간에도 가치가 있다

   논어에 나왔던 말이 있다. 매우 부정확한 인용이 되어버리지만, 내가 이해한 뜻은 이렇다. "좋은 깨달음을 얻겠다고 밤새 머리로 고민해 봐야 나오는 것은 없다. 그러는 것보다 책을 공부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실로 그러하다.


   작년 12월쯤 졸업한 학교에 지정된 금액을 내고 도서관 이용권을 획득했다. 학부 졸업 후 지식과 교양을 쌓는 일과 완벽한 결별을 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몇 권의 책을 읽고 있는 시점이다.


   특히 나는 언젠가는 기업을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이 혜성의 주기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편이다. 경제학 책도 보고, 스티브 잡스의 평전이나 호암 회장의 자서전도 읽고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잡스는 내 이미지보다도 훨씬 특이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책을 여러 권 빌려서 동시 진행을 하느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책 내용에서 잡스는 매킨토시 정도까지는 출하를 했다.


   잡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사실 최근에 크게 매료된 것은 호암 회장 쪽이다. 학교 도서관에 있던 바로 대여 가능했던 책이 80년대에 나왔던, 국한문 혼용체에 세로 쓰기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형태라서 처음엔 난감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한자를 읽을 수 있고 최근에 일본 소설 원서 하나를 볼 때 세로 쓰기로 된 책을 읽었어야 했기 때문에 도움이 되어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고 있다.


   잡스는 매킨토시 출하 시점 정도까지 읽었고, 호암 회장의 경우 4.19 혁명이 일어난 시점 정도가 되었는데, 오늘의 제목은 사실 호암 회장이 한 격려(?) 또는 위로(?)를 표현을 조금 바꿔본 부분이다. 그는 1910년생이다. 20대 초반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건강을 상해서 중퇴를 하고 고향에 돌아온다. 그는 막내아들이었고, 아버지와 형이 일을 이끌어나갔으므로 입장이 애매했다. 그래서 3년 정도 도박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각성을 하게 되어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것이 1936년인 것으로 책에 나와있다.


   호암 회장의 첫 번째 각성을 일으킨 것이 그가 허비한 몇 년 간의 시간의 영향이라는 것에 역설을 느꼈다. 그는 후에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제목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일 없이 취미로 10년을 낚시로 소일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 속에서 분명 깨닫거나 얻은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시간에서 깨달은 것과 얻은 것은 누구에게나 사소하거나 크거나 분명하게 있다. 이 시간이 정말 버려지는 때는 언제인가 하면, 그 깨달음을 하나도 살리지 못할 때에 비로소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버려졌다고 생각되더라도(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사실 박봉에 미래도 없고 괴이한 곳에서 도망갈 노력도 없이 시간만 버리고 사실상 불평과 냉소에 찌든 글만 쓰고 있는 점이 자괴감이 언제나 큰 것이었다. 이미 많은 시간을 버려버린 셈이고, 시간을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헛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차근차근 어떻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것은 왜 때가 늦은 다음에나 떠오르는 것인가에 대해 허탈함을 느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격려를 받아서,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논어에서의 내용이 생각난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둔한 머리를 가지고 곱씹어 본들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앞서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운 것들이 책을 다 읽지도 않았지만 여러 가지가 된다.


   분명 버려진 시간일 수도 있는 이 몇 년간이지만, 적은 돈이어도 받아서 지출 관리법을 터득하고 처세나 용인에 대해 실제 현장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 불만이 가득한 나머지 여러 가지의 것들을 시도했던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불만족스러운 사회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살 길을 찾았던 것과 연관이 있다.


   호암 회장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여겨지는 인물이 등장하는, 최근에 화제였던 드라마는 흥미가 없어서 시청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취향이 확고하여 내키느냐 내키지 않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추천과 관련 없이 움직이는 외골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물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해 준 면은 있으니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 덕에 자서전을 읽게 되어 그에게 배울 점도 많고 큰 격려도 받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내가 두목의 밑에서 지낸 시간 동안 얻은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탄탄대로를 걷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며, 한 점의 후회도 없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아직 기회는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더라도, 분명 그곳에서 우리가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깨달음을 얻어 앞으로의 시간을 보낼 때 보탬이 될 수 있게 한다면 그 아쉬운 시간은 우리에게 중요하고도 없어서는 안 되는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남는 장사가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 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더 새기고, 여러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서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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