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May 17. 2023

잘 해준 일은 기억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못 해준 일만 잔뜩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인연이 닿아서 과거에 만났고 지금까지도 비정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는 몇 사람의 무리가 있다. 사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모여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각자 생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적이 흐른다. 이 정적을 깨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 환기가 되기는 하는데 보통 자신이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도와달라거나 홍보하거나 하는 내용이다.


   적당한 추억 이야기도 생각해 보면 영양가가 별로 없어서 요즘은 꺼리게 된 화제이지만, 이 경우 저 도와달라는 자와의 과거 일화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리에는 단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지만, 추억 속의 사람이 기억의 무덤에서 되살아나서 현재에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추억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 추억 속에서 탐탁지 않은 일들이 많았으며, 지금도 대개 자신이 심심하거나 아쉬울 때나 연락을 하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정적이 흐르는 무리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행동 자체까지는 인정한다. 한담 정도 나누는 것은 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에는 철저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어느 정도 과거에 유대감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가 되었기에 이제 와서 객관화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물론 그가 잘한 것도 있었으니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안부를 묻는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가 잘못한 부분도 있었기에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기대하는 것은 자신이 잘한 부분에 의해 근거가 아예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못한 부분 또한 누구나 존재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간과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념을 계량화한다면 크게 잘해준 것은 +3, 무난하게 잘해준 것은 +2, 소소하게 잘해준 것은 +1 정도로 매겨지는 반면, 크게 잘못한 것은 -30, 무난하게 잘못한 것은 -20, 소소한 잘못은 -10 정도로 매겨지는 느낌이다.


   그가 크게 잘한 것이 3개 있고 무난한 잘못이 1개 있다면 계산하면 -11이라는 음수가 나와버리는 것이다. 물론 지금 든 사례의 경우 위의 예시보다 음수값이 클 것이다. 따라서 그가 무엇을 요청하든 나는 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한가할 때의 잡담 외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도 않다.


   그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해당하고, 제삼자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남에게 대해 엄격하고 자신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평판을 과대평가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억제하고 자제하려고 한다.


   대인 관계에서는 잘해주는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싫어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수지가 맞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잘 해준 일만 기억하고 싫어할 일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뒤통수를 자주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아주 자주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뒤통수를 때리는 사람이 나쁜 것이긴 하고 100대 0이 없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아니니까. 초인은 세상에 없으니 관계가 깊어지면 크고 작은 원한이 크고 작은 은혜보다 커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잘 해준 일 같은 것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두려워할 것은 못 해준 일이다. 원한을 살만한 일을 쉽사리 잊으면, 언젠가는 대가를 크게 치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대하지 않는 삶이 답일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