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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May 15. 2023

기대하지 않는 삶이 답일지도

그것이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벌써 몇 달 전의 일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은 많은 상황에 적절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도 없는 시점에 인센티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금액 자체가 크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원래 박봉이라는 면이 회사 평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회사가 현재진행형으로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인센티브에 대한 기대를 0으로 설정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회사가 외부적인 일을 벌이는 것에 있어서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냉소적인 자신은 수령들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는 자세로 뒤틀려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받으면 좋겠지만, 일단 받을 거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취한 자세였다.


   이야기가 나왔을 때 대략 시점도 공개되어 있었다. 그 계획이 지연될수록 기대를 했던 주위 사람들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애달픈 이유는 기대를 했기 때문인데, 나는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애달프지 않았다.


   마침내 계좌에 입금이 되었을 때,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은 늦게 준다면서 크고 작은 수준으로 불평을 했다. 아마 이것도 기대를 많이 했으면 큰 불평을, 상대적으로 적게 했다면 적은 불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마다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 나는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온전하게 즐거울 수 있었다. 잠자다가 입 안에 잘 익은 과실이 떨어진 것과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잠시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로 전환해 보겠다. 며칠 전에 투병 끝에 별세한, 실제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의 글 몇 편을 읽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비슷하겠지만 꽤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었고, 몇 달 전의 내 사건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프다 보면, 아프지 않았을 때의 생각이 누구나 간절한 법이다. 그것이 감기 몸살이든, 불치병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사실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감사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아 졌을 때에나 겨우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 인생의 아이러니함이 들어가 있다.


   숨을 편히 쉴 수 있는 상황에 기쁘고, 가만히 있어도 아프지 않다는 것에 기쁘다, 조금이라도 숙면을 할 수 있었으면 기쁘다는 내용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스친 것이다. 불치병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도 아파본 적이 있으니 저런 것이 결코 빈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또한 결코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당연하다는 것과 기대하는 것은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진히 대접을 받더라도 옥에 티와 같은 것이 부족하면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대접받을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사소한 온정이라도 받는다면 크게 감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대에 따라 극진한 대접도 그저 당연한 것일 수 있고, 별 것 아닌 것도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부제목에도 적었지만, 기대하지 않는 것은 절망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노파심에 강조하고 싶다. 그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마음이 자신을 결국 괴롭히며, 감사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함정 아닌 함정은 이런 것을 타인이 들이대는 것으로는 역효과가 크겠지만, 그런 것은 나조차도 무시할 것이다. 예를 들어 수령이 박봉이라도 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마음속으로는 하겠지만 실제로는 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런 마음에 굴복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건 조금 세뇌 같은 것이니 저항해야겠다. 다만 자신 스스로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리는 측면에서는 박봉이라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부분에 삶에 감사를(수령에게 대한 감사가 아닌-어차피 일했으니 받는 돈이니까 생색내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부분은 상큼하게 무시하자(소위 "나 때는 말이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들).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에게 중요한 것이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타인에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각자는 엄연히 각자이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는 삶을 살면, 세상의 정말 많은 것들이 감사한 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이 알듯 말듯한 상황에 대한 기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놓고 다시 기대에 범벅이 되어 불평과 불만에 찌든 상황으로 아주 높은 확률로 회귀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니 적어두는 것일 뿐이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좋아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사실 남에게 듣는 것은 정말 싫어했다. 지금도 그렇다. 아마 글을 적어두고 매우 모순되겠지만 결국 자신이 스스로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깨닫고 생각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경우 남이 저럴 때 하는 말은 의도 자체가 불순해서(예를 들어 열정페이를 강요하면서 저런 말을 한다든지) 싫어하게 된 부분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타인이 말하더라도 문제는 없는 것일 것이다.


   지금부터의 인생을 덤이라고 생각해볼까 싶기도 하다. 극단적인 선택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고 안정되어 있지만 기대하지 않는 삶을 극대화하자면 그런 느낌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할까. 매일매일이 사실 덤으로 주어진 추가 시간이라면 모든 희로애락조차 인생의 선물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당연한 것도 없으니 크고 작은 것에 온전하게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은 본성에 역행하는 수준의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천하기 어렵지만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당연한 것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당연한 것을 가지고 있었을 때 불행하다가 잃고 나서 간절해진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일 것이다. 그러니 빨리 깨달을 수 있다면 현명하고 현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깨닫는 것뿐만이 아니라 삶에 적용과 실천을 해야 진정 현명한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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