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장장애의 특성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잘 버리지 못하고 잘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제1의 천성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2의 천성이라고 하는 습관이라는 것으로 어느 정도 재구성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병역 이행 시기 정도에 은연중에, 마구 버려버리고 혹시 버리면 되지 않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에서도 홀가분해져 버렸던 것 같다.
읽거나 보존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군대에 있을 때는 꽤 꾸준하게 일기를 썼었다. 쓸 당시에도 절대 다시 읽거나 가지고 오래 살아갈 생각은 없었기에 본가가 이사를 할 때 다 버려버린 것이다. 아주 약간 아쉬운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절대 읽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내용은 브런치에 지금도 글을 쓰는 것처럼 내용과 표현이 당시가 아니면 나조차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누군가에게 절대 보여줄 내용도 아니었지만, 보여준다고 해도 나를 포함해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무엇인가에 화가 나서 썼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고 구체적인 것은 적어놓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의, 당시에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적어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모호한 물건이지만 아무튼 그것을 버림으로써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쓰레기통이나 분리수거함에 집어넣는 것에 대한 자유 통과인 것이다. 일기조차 버려버리는데 못 버릴 물건은 별로 없는 것이다. 또한 주변에 저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여럿 알다 보니, 그들을 보면 반면적 학습이 되는 것이다.
내게 소중한 것이어도,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아니 내 생각에 단언이 가능한데, 전혀 소중하지 않다. 애착도 없는 남의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미래를 생각했을 때, 내 잡동사니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다. 사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 점에서 뒷 일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겠지만, 상상의 세계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대한 미리미리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내 개인적인 짐들도 이제는 늘리기보다는 없애는 쪽에 주안을 하고 있다. 이사를 할 때 물건을 엄청나게 버리고 서류도 없애는 것이다. 컴퓨터 파일도 정리하는 것이다. 사실 집 책장에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서 이번 주에 없애고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다. 약간만 방심하면 물건이 금방 금방 생겨나곤 한다.
몇 주 전에, 마치 퇴사를 하는 사람인 것처럼 몇 년 이상 꽂아만 둔 서류들이나 사무실 책상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아주 단호하게 처분했다. 갈 길을 잃은 서류 봉투에 든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는 서류들을 처리하면서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과를 하였다. 앞으로의 직장 생활에서는 서류를 출력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그때그때 필요 없어진 것들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몇 주 전보다 더 앞에 많이 처리했지만, 그다음 시기에 초 대규모의 정리를 하면서 아주 홀가분해진 것이다.
쓰지도 않았던 옛날 명함 같은 것들은 과감히 종량제 봉투에 투척하며, 이런 것을 일일이 파쇄하는 것도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르는 전화번호는 일단 받지 않고 있는 데다,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접근해 오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개인정보야 이미 다 털려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주기적으로 정리(버리는 것)를 하면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시간이 될 때 내가 미리 판단해서 정리하고 처분해야지, 알 수 없는 미래에 잔뜩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를 남겨두고 떠나가는 것은 내 성격이 용납할 수 없는 는 것이다. 내 물건은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니,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서, 내가 말하지 않는 선에서 드러나 버리는 것을 나는 정말로 싫어하지 않나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역시 여전히 물건이 많고 사는 것도 있고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의식적인 노력일 뿐 아직 갈 길은 멀고 부족한 것이다. 버리고 싶은 것들은 여전히 많으며, 정리하고 나서는 또 홀가분함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일단 오늘 귀가하면 정리를 조금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