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신 두목님 덕에 저는 성공할 수 있겠죠
취업준비를 할 때 단골 질문이 있다. 지원자(즉, 자신)의 장단점을 써라, 뭐 그런 질문이다. 그런 곳에는 꼭 나는 사람 관찰을 잘하고 취미라고 했는데 아마 자소서에 적합한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긴 하고 그것을 가지고 대개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쓰기 때문에 캐릭터로 치면 숨겨진 특성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내 신상을 수호하기 위해 숫자를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건 N 년(한 회사치고 꽤 긴데? 싶은 기간일 수도 있다) 동안 관찰하고 있는 두목님에 대한 개인적인 비망록을 이제 생성하고자 한다.
두목님은 월급을 정말 인색하게 준다. 그것뿐이 아니라 종합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다 보니 너무나 큰 깨달음을 주고 인생의 여러 난제에 대해서 자폭을 기반으로 한 교훈과 통찰을 제공해주니 그런 무형적인 소득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래서 내가 이 회사에서 그의 아둔한 만행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묘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막장드라마나 시트콤이 매일 일어나는 그만의 왕국에서 나는 언젠가는 독립해나갈 예정이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 그의 온몸 바친 행적을 통해 나 자신의 양식으로 삼아서 나 자신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이 매거진은 그런 두목님의 언행을 기반으로 한 비망록이자 성찰의 기록이 될 것이다.
1. 두목님은 나에게 솔선수범의 중요성을 알려주셨다. 그 자신이 전혀 솔선수범하지 않음으로써.
솔선수범이 중요하다는 말은 뭐... 회사에서 원가절감이 중요하다,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한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인류는 언젠가 화성에 유인탐사선을 보낼 것이다 같이 자명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명하다고 해도 실제로 절절하게 체감하는 것과 글월로 아는 것은 다르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두목님께서는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전혀 솔선수범하지 않는 것을 통해서 나를 가르치신다.
첫 번째로 두목님이 솔선수범하시질 않으니 두목님의 모든 말에 설득력이 전혀 없다. 문자적이고 기계적으로는 "좋은 것"을 인지는 하고 있는 것 같은데(사실 그러니까 그런 말 자체는 자주 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실제로 전혀 하지 않으니 괴리가 커서 아무 말하지 않는 것보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매일 직원들을 들들 볶으면서(나는 이런 의식(세리머니)을 "쥐잡이"라고 부르고 있다) 상호 존중을 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 두목이 나서서 책임을 질만한 일일 때도 철저하게 책임회피를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임직원의 책임감을 강조한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기 때문에 그냥 이 자의 말은 듣는 것 자체가 소음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전에 한 번 불운하게도 임원들 바로 뒤에 앉아서 강제로 두목의 허접한 설법을 들어야 했을 때, 대체 왜 이렇게 두목의 말에는 설득력도 없고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만 나빠지는지에 대해 고민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로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니 자연스럽게 이런 태도가 회사 전체로 번진다. 솔선수범이 없어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이런 잘못된 행실을 가진 자가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으니 회사 전체가 철저하게 두목을 본받아가는 모습을 목격하는 중이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다는 말은 팩트였음을 다시금 생각한다. 사실 그 나물에 그 밥이듯이 나도 닮아가고 있으니 이 글의 장르는 피카레스크가 된다. 절대 나는 좋은 직원이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좋은 명분을 대면서 사실상의 악담을 남기고 있겠지.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는데 모두가 두목을 닮아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두목이 책임감이 없고 남(자신을 제외한 임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하니, 밀정들에게 정보를 얻으면 두목이 임직원 간의 싸움을 붙인 이야기는 다반사로 들려온다. 두목에게 쥐잡이 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트라이크 존을 잔뜩 좁혀서 자신들의 R&R(역할과 책임)만 커버하면 된다는 주의로 나오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업이라는 것이 의기투합해서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환상적으로 분열되어 있는데 사업이 번창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내가 두목님의 언행을 해부하며 얻은 것:
두목님이 전혀 하지 않는 솔선수범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 취급을 받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솔선수범을 하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사람이고자 하므로 솔선수범을 해야겠다. 나중에 사업을 할 때 남들에게 지키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부터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남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게 하려면 나 자신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놀랍게도 말단 직원인 나조차도 두목님의 민낯을 알고 경멸하니, 나도 언젠가 두목이 된다면 데리고 있는 말단 직원에게 경멸 대신 인정을 받으려면 똑바로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