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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Oct 09. 2018

라오스에서 꼭 가야 할 곳

#라오스일기 12. 블루라군 말고 꽝시 폭포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


꽝시 폭포는 '사슴 폭포'라는 뜻을 가진,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다. 가장 유명하다는 수식어로도 모자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에도 속한다니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곳인가. 하지만 우리 셋 다 이런 정보들은 하나도 몰랐다. 그냥 「꽃보다 청춘」에 나왔고 티비 속 그곳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아마 J와 M은 지금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여행일기를 쓰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다 보니 알게 된 정보니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꽝시 폭포는 방비엥의 블루라군처럼 우리가 라오스에 가면, 루앙프라방에 가면 꼭 가야 할 곳이었다.

그래서 호텔 체크인을 할 때 호텔에서 꽝시 폭포까지 왕복으로 이동시켜주는 투어를 한 사람당 50,000낍에 예약했다. (투어라고 하기엔 우리를 통솔하고 설명을 해주는 가이드가 없었으나 그들이 투어라고 했으니 나도 투어라고 한다.) 프런트 직원에게 오후에 꽝시 폭포에 가고 싶은데 교통편이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예약해준 걸 보면 호텔과 연계된 곳인 것도 같다. 설사 그렇다 해도 길가에 좌르륵 서있는 툭툭 기사들과 흥정하지 않아도 되고 기분상 가격도 저렴한 느낌이라 만족스러웠다. 진짜 저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꽃보다 청춘」에 나온 계단식 폭포를 보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멀었다. 일단 꽝시 폭포에 입구까지 가는 길도 편치 않았다. 비록 이동만 시켜줄 뿐이라 해도 투어는 투어인지 우리 셋 말고도 중간중간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픽업했는데, 작은 승용차에 여럿이 타다 보니 맨 뒷좌석에는 무려 네 명이나 같이 탔다. 나는 넷 그중에서도 가장 끝자리에 앉아 더 좁고 불편했다. 꽝시 폭포에 도착해서도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등산 아닌 등산도 해야 해서 꼭대기까지 올라 모든 폭포를 봐야겠다는 의욕은 애초에 사라졌더랬다.



그러나 이 모든 힘듦은 폭포에서 다 보상받았다. 아주 짧은 등산 코스가 끝나고 내 눈 앞에 에메랄드색 폭포수와 푸른 나무 숲이 나타났다. 「반지의 제왕」에 나온 엘프들이 이 곳에 살까. 아니다. 이 곳은 엘프가 아니라 작은 요정들이 살만한 곳이었다. 안 그래도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보다 더 판타지스러운 곳이 눈 앞에 있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물에 들어가기 전 발만 담그고 폭포 주변을 돌아봤다. 물은 아주 차가웠다. 보통은 에메랄드색이었지만 빛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빛났다. 나무 틈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 더 반짝거렸던 꽝시 폭포. 노는 내내 그리고 보는 내내 감동이었다.



블루라군 말고 꽝시 폭포


그래 블루라군. 솔직히 블루라군이 그렇게 모자란 곳은 아니었다.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을 뿐이지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물은 시원했고 풍경도 그 정도면 괜찮았으며 내가 정말 외국에 와있구나를 실감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다는 게' 문제였다. 그냥 갔어야 했는데. 방비엥에 가면 블루라군은 한번 가보자! 하는 마음만 가지고 기대는 최대한으로 줄인 채 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재밌게 놀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쉬운 곳이 된 것이다. 하지만 기대를 가진 게 우리 잘못인가? 그건 또 아니다. 한창 라오스 여행이 붐이었을 때 라오스 하면 짠 것처럼 블루라군을 보여준 미디어가 잘못한 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블루라군이 모자라거나 잘못한 게 아니다.


꽝시 폭포에 가기 전 까진 블루라군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꽝시 폭포에 도착해서 다이빙하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블루라군이 생각났다. "풍경도 훨씬 아름다운데 어쩜 다이빙하는 곳 마저 더 좋을 수가 있어?" 분명 같은 나무 다이빙대인데. 심지어 꽝시 폭포의 나무는 끝이 댕강 잘려나가기까지 했는데. 아, 차라리 내가 꽝시 폭포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비교대상이 없는 블루라군은 내 안에서 그 위상이 조금 올라갔을 수도 있는데! 블루라군은 잘못하지 않았다. 그냥 꽝시 폭포가 너무 멋진 거다.


초점은 나갔고 색 또한 날아갔지만 라오스에서 찍은 것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내내 다이빙을 하던 아이. 처음 몇 번은 형과 함께 뛰더니 그 후로는 혼자서 계속 날아다녔다. 무섭지도 않은지 뛰어내리자마자 다시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뛰어내리고 했다. 그 모습은 또 어찌나 그림 같던지. 아이가 다이빙을 한 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엄지를 들어주니 씩 웃더라.

아이가 하도 쉽게 뛰어서 나도 용기가 생겨 한번 뛰어볼 요량으로 물이 깊냐고 물으니 다이빙하는 곳 바로 밑에 깊은 홀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용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차피 수영도 못해서 다이빙 후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거면서 다이빙은 무슨 다이빙이람.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다이빙대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사진 속 남자는 나처럼 다이빙이 하고 싶은 듯했다. 아이와 이야기도 하는 걸 봐선 그 역시 저 밑에 깊은 홀이 있다는 것도 아는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이고 뛰어내릴 것처럼 포즈를 잡았지만 이내 다시 뒤로 빠졌다. 그래도 그는 나와 달랐다. 여러 번 시도했고, 여러 번 실패했으나 결국 마지막에는 다이빙에 성공해서 나를 포함 모두가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꼭 다이빙을 해야 하나 했는데 뛰어내린 그의 표정을 보니 갑자기 또 나도 뛰어보고 싶어졌다. 결국 뛰지 못했지만.



꽝시 폭포의 모든 곳을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말이 필요 없다. 라오스 가는 모든 사람이 블루라군은 안 가도 되니까 꽝시 폭포는 꼭 갔으면 좋겠다. 제발!



만고 불변의 진리=물놀이를 하면 배가 고프다. 그래서 꽝시 폭포 입구에서 닭다리를 뜯었다. 정말 맛있었다. 라오스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다. 셋이서 두 개가 아니라 한 사람당 두 개씩은 먹었어야 했다.





밤이 되니 툭툭들이 시장이 열리는 메인 거리의 입구를 다 막아놨다.


만낍으로 배 채우기
야시장 만낍부페


호텔에서 씻고 두어 시간 쉬다가 야시장에 갔다. 야시장은 의외로 컸는데 의외로 붐비지 않았고, 의외로 상품들도 다양하지 않았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해진 야시장은 다 그런 것 같다. 한집 건너 한집 꼴로 같은 기념품을 팔고 같은 먹거리를 판다. 입으로는 질린다고 하면서도 야시장을 도는 여행자들은 다들 한껏 상기된 표정이다. 야시장이라는 게 참 묘한 곳이야.



다 같은 자수가 박힌 기념품과 인형을 팔고 동남아 모든 야시장에서 같은 코끼리 지갑과 냉장고 바지를 팔지만 그걸 알면서도 갈 때마다 산다. 이쯤 되면 기념품 그 자체를 산다기보다 야시장의 분위기를 산다는 게 맞다. 그리고 그게 또 싫지 않다. 지지난 방콕 여행 때 라오스에서 산 코끼리 바지를 입고 갔는데, 방콕을 걷는데 라오스도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코끼리 바지를 산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같은 바지인데 왜 저들과 나의 핏은 이리도 다를까?



야시장의 모든 먹거리를 뒤로하고 우리가 찾은 곳은 만낍식당. 꽃보다 청춘에서 유연석이 가려고 했던 (결국 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만낍 식당을 찾으려했는데 야시장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만낍이라고 적혀있는 가짜 만낍 뷔페로 갔다. 만낍을 내고 접시에 음식을 골라 담아 직원에게 건네면 그것을 한 번에 웍 하나에 볶아 다시 담아준다. 맛은 없었다. 생선 꼬치나 기타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식은 만낍에 포함되지 않아 따로 돈 주고 사 먹어야 했다. 야박해!



맛은 없지만 꾸역꾸역 다 먹고 일어났다. 그리고 슬프게도 밥을 먹고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진짜 만낍 식당을 발견했다. 메뉴도 훨씬 다양했고 우리처럼 한 번에 와르르 쏟아 넣고 볶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래서 가짜는 안된다니까.



더 이상 야시장에서 할 게 없어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M과 함께 M이 가고 싶다는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J는 속이 안 좋다길래 숙소에 남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J는 이번 여행에서 산책다운 산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골목에서 꺾고 또 꺾어서 도착한 유토피아! 우리가 조금 늦은 시간에 가서 그런 건지 빈자리가 없었다. 안쪽까지 들어가서 혹시 합석이라도 가능한 자리가 있나 찾아보았으나 빈자리가 아예 없어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왔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루앙프라방의 밤거리를 걸었다. 별을 보면서 걷고 있으니 아침에 M과 함께 5,000낍을 주고 건넜던 다리가 나왔다. 밤이 되니 더 낭만적인 곳으로 변했다. 강 건너의 불빛을 보고 한번 더 건너볼까 생각을 했지만 괜스레 무서워져서 보기만 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인데 술 한잔은 해야 하지 않냐며 편의점에서 맥주와 사이다, 과자, 컵라면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내일이면 비엔티엔으로 그리고 비엔티엔에서 한국으로 떠난다.


2018년 11월 29일

캐논 파워샷 g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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