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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Oct 07. 2018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건 어때?

#라오스일기 11. 푸시산 정상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



오전에는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했던 <루앙프라방 왕궁 박물관>. 크게 흥미 있는 곳은 아니라 입구만 살짝 돌아보다가 나왔다.


나보다도 훨씬 어려보이는 승려들이 셀카를 찍으며 놀고있었다.


여행,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건 어때?


지금의 나는 '꿀보산악회' 회장으로 매주 토요일, 날만 좋다면 산에 오른다. 그러나 3년 전만 해도 등산은커녕 그 어떠한 운동도 하지 않던 사람이라 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단톡방에 M이 보낸 푸시산 정상 사진을 보고 나니 그런 나라도 산을 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산화를 신고, 등산스틱을 들고 올라야 하는 게 아닌 잘 놓인 계단을 오르는 수준이었다는 것. (심지어 인터넷 사전 어딘가에선 동산이라고 적어두었다.) 새벽부터 움직여서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다리가 무거웠지만 그래도 올랐다. 그리고 푸시산 정상에 올라 루앙프라방을 바라보니 계단이 몇백 개는 더 많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사진 속 길게 쭉 나 있는 길이, 아까 내가 걷다 감탄하며 홀로 서성였던 그 길이었다.


새벽부터 바로 조금 전까지 내가 걸었던 길이 보였다. 그리고 남은 여행 기간 동안 내가 갈 곳과 내가 가보지 못할 곳까지 보였다. 내 루앙프라방 여행의 시작과 끝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 여행의 시작을 이렇게 높은 곳에서 하는 것도 좋겠다. 위에서 여행지를 내려다보며 가고 싶은 곳을 고르고 길을 정한다. 오늘은 저 길을 통해서 저길을 가고, 내일은 저-어 길을 통해서 저-어기를 가는 거야. 산이 아니어도 좋다. 아침에 느릿느릿 여행지를 한 바퀴 돌다가 보이는 높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지금 그곳이 도시라면, 높은 빌딩이어도 나쁘지 않겠다. 어둑해진 하늘을 향해 빌딩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도시를 내려다보며 내일의 일정을 정해 본다. "저기 제일 빛나는 게 ○○야. 내일은 ○○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돌아볼까?"



한국에서는 하루 한 번, 해외에서는 적어도 2-3번은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내가 어디 있는지 보고하듯 전화하고 끊을 때도 있고 엄마가 뭐하는지 알아내고 끊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설명하고 기분을 말해준다. 그리고 정말 너무 멋진 곳에 있을 때는 영상통화를 해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다음에 꼭 같이 오자는 약속을 한다. 푸시산 정상에서도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에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음에 꼭 같이 오자고는 말을 했고 엄마도 늘 하는 말 그대로 "그래, 다음에 꼭 같이 가자."라고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라고 불렀는데, 뒤에 있는 외국인이 "마마!"하고 나를 따라 했다. 건방진 외국인 같으니라고. 다음에 또 만나면 코를 뽑아버릴 테다.)




루앙프라방 세 바퀴



푸시산에서 내려와 M을 만나 남은 시간 동안은 함께 산책하기로 했다. 나와 다른 방향으로 돌아다녔던 M이 좋은 곳을 찾았다며 나를 데려간 초등학교. 주말이라 서너 명의 아이들만 놀고 있었다.



성별로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남녀 나누는 건 정말 싫어하는데, 이 사진에서는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웃음이 나왔다. 너넨 이렇게 놀고 너넨 저렇게 놀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닐 텐데.



학교 근처에 있던 사원 중 한 곳. 고양이를 보고 홀린 듯 들어갔더니 그중 한 마리가 표범처럼 걸어왔다. 사진 찍다가 나도 모르게 무서워서 뒤로 움찔움찔.



이번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M을 데리고 메콩강 쪽으로 내려왔다. 아까 산책하다 본 다리인데 저 다리를 한 번 건너가 보고 싶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다리를 건너려고 하니 다리 입구에 앉아있던 사람이 한 사람당 5,000낍을 내야 한단다. 돈을 내라는 소리에 우리가 고민하고 있으니 "여긴 평소에는 물에 잠겨있어서 볼 수 없어. 1년 내내 보이는 게 아니라 지금 포함해서 몇 개월만 볼 수 있는 다리야."라고 넌지시 말을 흘린다. 그렇다면 건너야지. 어렴풋이 들리는 영어 단어로 해석을 끝내기 무섭게 5,000낍씩 내고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가니 마을이 나왔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사방이 뚫린 교실이 있었다. 라오스어는 하나도 모르면서 괜히 교실 근처를 기웃거려본다.



루앙프라방에 와서야 라오스 국민의 90%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라오스에서 이렇게 외국인이 없던 곳을 본 적이 있던가. 이 마을은 오전에 걸었던 중앙사거리 뒷골목보다도 더 외국인이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나와 M 말고는 외국인을 보지 못했다. 참 웃기기도 하지. 해외여행을 가면 그곳에 한국인이 적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한국인이 적은 곳에 가면 이번엔 또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이 적기를 바란다. 내가 그 한국인이고 그 외국인이면서도. 누가 봐도 그곳에서의 이방인은 난데.



마을 회관 같은 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그들이 곁을 스쳐가는 우리를 구경했다. 동네 개들도 누워있다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구경하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다시 다리를 건너 루앙프라방 메인 거리로 돌아왔다.



벌써 하루가 다 간 것처럼 걷고 또 걸었음에도 아직 오전 11시. M과 나 모두 지쳐서 호텔로 돌아갔는데 다행히 체크인을 해주었다. 침대를 보니 쉬고 싶었다. 꽝시 폭포도 가고 야시장에 가서 그 유명한 '만낍부페'에서 밥도 먹어야 하는데. 일단 쉬어야 했다. 샤워고 뭐고 세수만 하고 두 시간가량을 푹 잤다.


우리가 루앙프라방에서 묵었던 호텔 <마이 라오 홈>은 특히 화장실이 입이 턱 벌어질 정도로 좋았다. 지금 내 방 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욕조도 있고 샤워 부스도 있고 요소 하나하나 전부 다 좋았다. 화장실 때문에라도 다음에 루앙프라방에 간다면 또 여기에 묵고 싶어 질 정도로. 위치 또한 좋았는데 <조마 베이커리> 옆 골목으로 1분 정도 들어가면 바로 나온다. 


2015년 11월 29일

캐논 파워샷 g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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