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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Oct 07. 2018

나 홀로 루앙프라방 산책

#라오스일기 10. 골목, 골목 그리고 또 골목


루앙프라방 두 바퀴


<조마 베이커리>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러 갔으나 12시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시간이 한참 남았길래 이번에는 같이 다니지 말고 셋이 떨어져 다니다가 체크인 시간에 맞춰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행 첫날 유심칩을 갈아 끼우지 못했던 J는 호텔 로비에 남아있겠다기에 그만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전 일기에도 적었듯 그때의 J는 연애, 그것도 연애 초기였기에 남자 친구와 계속해서 연락을 해야만 했다.)



M은 이른 아침에 돌아다니다 보았던 꼭대기에 '황금색 건물'이 있는 푸시산*으로 올라가 본다 하였고 나는 메콩강을 따라 골목 위주로 돌아보기로 했다.


*푸시산은 라오스어로 '신성한 산'을 뜻한다. 또한 꼭대기에 있는 황금색 건물은 탑이었다.



강가로 나가기 전 정처 없이 골목을 누비다 또다시 시장으로 들어섰다. 계속해서 현재의 나와 비교하게 되어 조금 그렇기는 한데, 이때의 나는 혼자 있으면 조금 소심 해지는 편이라 지갑을 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내 앞에 있던 외국인이 겨우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물건을 사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마침 배도 고파서 바나나를 한 번 사볼까 하고 지갑을 열었다가, 지갑 안을 보고 이내 귀찮아져서 닫아버렸다. 라오스는 화폐 단위가 큰 데다가 또 세세하기까지 해서 돈 계산하기가 꽤 힘들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내 지갑에는 십만낍짜리부터 오백낍짜리까지 전부 지폐로 들어있었다. 그래 꼭 막 배고파 죽을 거 같은 게 아니면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시장을 돌고 나오니 어느덧 내가 산책을 시작했던 (나만의) 중앙사거리가 나왔다. 저 너머로 가보기로 한다.



방비엥은 여행자가 그곳의 95%는 되어 보일 정도로 많아 뭔가 도시 전체가 붕 뜬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가도 뒤돌아서면 빨리 떠나고 싶어 지기도 하는 신기한 곳이었다. 루앙프라방 역시 여행자도 많고 그들을 상대하는 가게도 많았지만 (솔직히 가게의 대부분이 여행자를 상대로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현지인들의 공간에 내가 놀러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비유가 잘 될지 모르겠으나 방비엥은 야간 개장한 놀이공원에 혼자 놀러 간 기분이었고 루앙프라방은 가족과 함께 서울 어귀의 오래된 유원지에 놀러 간 기분이었다.



큰길을 따라 걷다가 샛길이 나오면 그 길로 걸었다. 그렇게 들어선 골목에서 발견한 집! 벽돌의 색부터 문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화분들까지 완벽해.




다시 큰길로 나왔다. 드문드문 여행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내가 여행자들 틈에 껴있었다. 내 주위는 펍과 게스트하우스로 가득했는데, 이곳의 게스트하우스는 우리가 묵는 곳보다 더 저렴하고 훨씬 더 배낭여행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밤이 되면 다들 한데 어우러져 맥주잔을 부딪히며 여러 나라의 언어로 웃고 떠들 것 같은 그런 분위기. 그리고 이 골목엔 유난히 서양인들이 많았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던 노인과 펍. 노인이 내가 상상하던 헤밍웨이의 모습과 닮아서일까.


게스트하우스 골목 중에서도 특히 분위기가 좋아 한참을 서성였던 곳. 사진 속 길을 따라 아주 조금만 내려가다 왼쪽으로 꺾으면 <유토피아>가 나온다. 이때는 유토피아가 뭔지도 몰랐지만.



게스트하우스 골목을 지나 메콩강을 낀 채 걷다 보면 이렇게 얕은 오르막길이 나오고,



오르막길을 넘으면 내가 아는 루앙프라방의 메인 거리가 나온다. 분명 산책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다시 돌아오니 자동차나 툭툭이 다니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두었더라. 주말이고 또 정오를 향해 가는 시간대라 거리의 유동인구가 많아져서 그런 듯했다.



어여뻤던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지금 떠올려보면 루앙프라방은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다. 비엔티엔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고, 방비엥에서도 막 도착했을 때 샌드위치 아이들 말고는 기억에 없다. 반면 루앙프라방은 거리 어디에서나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여행 중 번외 편 #골목


이번 라오스 여행일기도 '골목'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라오스 말고 앞으로의 많은 여행일기에, 어쩌면 한 편도 빠지지 않고 '좋은 골목을 찾았다'라던가 '분위기가 좋아서 한참을 바라봤던 골목'이라던가 '골목이 좋다'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골목을 좋아하는데 지난 몇 년간 운영했던 네이버 블로그에 '골목'을 검색하면 골목 사진이 담긴 글만 92건이 나온다. 그중 어딘가에 내가 골목을 좋아하는 이유를 써놓았던 것도 같은데 찾아보니 없네.


1.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은 골목의 모습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모든 골목이 좋은 것도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좋은 골목 기준이 있는 건 확실한데 그걸 콕 집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왜냐면 나도 그 기준을 모르고 그냥 봤을 때 '아 역시 좋은 골목이네.'라는 생각이 훅 하고 떠오르기 때문에.

2. 그러면 나는 왜 골목을 좋아하는가? 이전 블로그에서도 찾지 못한 걸 보면 아마 적어보려 시도했다가 실패해서일지도 모른다. 이 역시도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 흔히들 '난 이게 좋아. 왜? 그냥 좋은 거지, 뭐 이유가 필요한가.'라고 말하는 범주에 나는 골목이 들어가는 것뿐. 그래도 어떻게든 이유 하나를 찾아보자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어서 -쉽게 말하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3. 그리고 어감이 예쁘다. 형태는 둥근 구석 하나 없이 죄다 각이 살아있는데 이상하게 둥글둥글한 어감.


그래서 언젠가 내가 찍은 세계 곳곳의 골목만 모아보고 싶다. 엄두는 안 나지만.




2015년 11월 29일

캐논 파워샷 g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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