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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Oct 14. 2018

안녕, 라오스

#라오스일기 마지막. 우리를 붙잡은 노을


다시 비엔티엔



라오스 여행의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라오스의 세 도시 중 가장 이국적인 모습이 덜해서 그런 건지 큰 감흥이 없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비엔티엔에도 여행지다운 곳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때의 난 비엔티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 어쨌든 다시 비엔티엔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비엔티엔 시내로 가는 길. 택시비는 공항에서 일정 구간 내의 시내로 이동시 7달러로 고정이라서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M이 찾은 쌀국수 맛집 <포잡(PHO ZAP)>으로 마침 점심때라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비엔티엔 플라자>라는 큰 쇼핑몰 옆에 있어 찾기 쉬웠다. (그런데 비엔티엔 플라자가 쇼핑몰이 맞나? 이름 때문에 나 홀로 쇼핑몰로 단정 지은 건데 혹시 모르니 그냥 비교적 큰 건물로 정정한다.)



포잡은 라오스의 여느 식당이 그렇듯 활짝 열린 문에 선풍기만 몇 대 돌아가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엄청 더웠지만 에어컨이 없었다는 소리. 그래서 자리에 앉자마자 얼음물을 부탁했다.



주문한 쌀국수가 나오기 전 먼저 나온 채소. 이 여행 이후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본 것이지만 저 가운데 기다란 마늘쫑 같이 생긴 채소의 정체를 모르겠다. 같이 나온 소스에 찍어 먹으니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서도 찾아보려 했는데 도통 모르겠단말이지. 쌀국수는 맛을 적어놓지 않은 것을 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나 보다. 특이한 부분이 없는 적당한 맛이었겠지!



쌀국수를 먹고 나니 딱히 할 게 없어 무작정 걷기로 했다. 목적지는 라오스에 도착한 첫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부근. 아무래도 그 부근이 비엔티엔의 시내 같아서. 가는 길에 비엔티엔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라는 <탓담>도 보고 나름대로 유명한듯한 남푸 분수도 보았다.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수파폰 게스트하우스>로 되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맞이하게 되었구먼. 게스트하우스 앞에 서있던 툭툭 기사에게 공항도 가냐고 물어본 후, 오후 7시에 공항에 가는 것으로 구두 예약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요금이 정해져 있어서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공항을 오갈 때는 택시도, 툭툭도 다 나름의 요금제가 있나 보다.



라오스를 여행하는 모든 날들이 다 비곤했지만 그 빈곤함은 마지막 날이 최고였다. 참다못한 M이 아무래도 돈이 있어야겠다며 ATM기에서 카드로 돈을 뽑았다. 100,000낍을 인출하는데 수수료가 40,000낍이 들었다. 무려 40%! 그래도 M의 그 돈 덕분에 <조마 베이커리>에서 지친 다리를 달랠 수 있었다.




우리를 붙잡는 라오스의 하늘


메콩강 건너로 보이는 불켜진 곳은 태국땅이란다.


메콩강을 따라 걷다 보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토록 기가 막힌 노을을 보여주었다. 정말 말 그대로 '불타는 하늘'을 처음 보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이렇게 하늘로 우리를 붙잡는거냐며 탄식했다. 돌아가는 마음 무겁게 왜 이런 하늘을 보여주는 거야. 넘실대는 구름처럼 내 마음도 넘실대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 일주일만 더 있고 싶어, 아니 하루라도 좋아.



그 노을의 끝에 서있던 야시장. 비엔티엔의 야시장은 루앙프라방의 야시장과 굉장히 달랐다. 내가 기대하는 현지인의 시장이 아니었다. 물론 현지인의 시장이지만 여행자가 기대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라 입구에 있는 몇 곳만 보다가 나왔다. 나는 라오스의 야시장에서 상업적인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사고 싶은 게 아니라서.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 식사는 태국 음식으로 정했다. 딱히 태국 음식을 먹자고 한건 아니고 식당을 고르다가 적당히 깔끔하고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갔는데 태국 식당이었다. 똠얌꿍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시켰는데, 여행의 끝이라고 마음을 놓는 탓에 고수 빼달란 말을 못해서 나는 똠얌꿍엔 손도 안 댔다. 딱 한입 먹자마자 웩하는 맛에 M과 J가 먹는 것을 바라만 봤다. 아쉬워라.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식당이었던 건지 식당에서 식사하는 동안 내내 피아노 소리가 들렸고, M과 J는 식사 중간중간 이 식당의 bgm이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피아노나 음악에 별 생각이 없는 나는 그렇구나 하며 한 귀로 흘렸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 흘러나오는 bgm이 CD를 돌리거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음원을 튼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M과 J는 식당 카운터를 등지고, 나는 식당 카운터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는데 그들 사이로 피아노가 보였다. 그리고 설마 하는 마음에 몸을 들썩이다가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M이나 J 같은 감흥은 없었을지라도 놀라긴 해서 그들에게 우리가 듣는 피아노 선율이 라이브 연주라고 말해주었더니 그들은 엄청 감동받은 표정이었다.


한국의 하늘에서 본 모습인지 라오스 하늘에서 본 모습인지. 아마 한국이겠지.


멋진 피아노 연주를 뒤로 하고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툭툭을 탔다. 툭툭이 출발하기 바로 직전, 식당에 카메라 배터리를 두고 온 게 생각나 다급하게 식당에 뛰어갔다 왔다. 공항에서 알아챈 게 아니라 다행이다.


이후의 기록은 없다. 아마 셋 다 공항에서 또 비행기에서 뻗은 것 같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로 넘어가 꽉 찬 일정을 보내고, 밤 비행기로 라오스를 떠나 새벽에 한국에 도착했다. 정말 꽃보다 청춘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즐길 수 있었을까. 저때의 우린 참으로 청춘이었다.


2015년 11월 30일

캐논 파워샷 g7x




여행일기 #라오스 편 연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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