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일기 마지막. 여행의 마무리는 룸피니 공원에서
공항으로 떠나기 전까지 꽤 시간이 남은 우리는 시암에 가서 쇼핑센터를 돌아보기로 했다. 쇼핑엔 큰 관심 없어 쇼핑센터가 몰려있는 시암은 아예 일정에서 빼놓았었지만, 시원하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은 없으니까. 수많은 쇼핑센터 중에서도 우리가 간 곳은 <시암 파라곤>. 어제 보지 못했던 에이프릴 풀데이의 수영복이 있는 곳이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예뻤지만 실물은 더 예뻤다. 심지어 모델이 입고 있을 때보다도 더 예쁘다니! 그러나 둘 다 사지 않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결국 비슷한 디자인의 수영복을 샀을 때 에이프릴 풀데이의 샀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방콕에서도 그렇고 돈 없이 아이쇼핑만 하다 보면 쉽게 지친다. 수영복 말고는 크게 눈에 띄는 것도 없어 구경하는 것을 멈추고 배나 채우기로. 시암 파라곤 내 프랑스 디저트 전문점에 들어가 딸기 케이크와 땡모반을 주문했다. 케이크와 땡모반이라니, 무척이나 이질적이지만 방콕이니까! 그러나 땡모반은 방콕에서 마신 것 중 가장 맛없었다. 방끄라짜오의 트리하우스보다 더 맛없었다!
방콕에 산다면
룸피니 공원 근처에서
시암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나와 P는 생각만큼 쇼핑에 관심이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아니다, 시암과 우리의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엄청 비약해서) 무신사 스타일인 우리가 W컨셉에서 옷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비행시간까지 거의 반나절은 남아 다음 일정을 찾다사 가게 된 <룸피니 공원>. 무계획 여행이다 보니 되려 더 알찬 일정이 되었다. 룸피니 공원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리는 살라댕역에서 하차, 쭉 걸어서 5번 출구로 나왔다. 그곳에서 길만 건너면 룸피니 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방콕의 센트럴파크, 방콕의 허파라 불린다는 룸피니 공원. 그만큼 울창한 나무숲을 자랑한다. 나무야 방끄라짜오에 훨씬 많지만 방끄라짜오는 외곽에 있고, 룸피니 공원은 정말 도심 한가운데 있으니 비교할 수 없다.
룸피니 공원은 입장료가 따로 없어서 그런지 가벼운 차림으로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간혹 돗자리를 깔고 간단하게 음식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고. 공원의 규모가 꽤 컸는데 전에 갔던 짜뚜짝 공원을 확대시켜놓은 느낌이었다. 공원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있어 증권가에 있는 기분도 들었다. 아 그래서 센트럴파크라는 별명이 붙었나?
우리 회사 근처에도 이런 공원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집 근처라도. 언젠가 해외에 나와서 살게 된다면 1순위는 언제나 대만이었지만 룸피니 공원을 마주한 순간부터 1순위는 방콕이 되었다. 퇴근 후 공원에서 산책을 해도 좋고, 맥주 한 캔 들고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좋겠다. 주말에는 배터리를 풀로 채운 노트북을 들고 나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낭만적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공원에서 몇 마리의 왕도마뱀을 발견했다. 처음 룸피니 공원에 대해 찾아보았을 때 400여 마리의 도마뱀이 산다길래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몇 번 본 작은 도마뱀을 상상했건만 어지간한 어린아이보다도 큰 도마뱀이었다. 새끼 공룡이라고 속여도 믿겠다. 아이들도 가까이에서 구경하는 걸 보니 엄청 위험한 종은 아닌가 보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도 놀라운데 왕 도마뱀까지 있다니! 도마뱀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다들 호수 근처에서 벌러덩 누워있었다. 나는 물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해도 무서워서 멀리서만 바라보았건만 대단하다.
공원에서 비행시간까지 꽉 채워 시간을 보내려다가 계획을 조금 틀었다. 지난 여행 기간 동안 많이 걸었으니 마사지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방콕에는 유명한 마사지샵이 많지만 대부분 예약을 해야 하고 또 그곳들을 찾는 것도 귀찮아 그냥 공항에 일찍 가서 공항 안에 있는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안녕, 방콕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하며 맡겨두었던 짐을 찾고, 호텔 툭툭을 타고 큰길로 나왔다. 자주 타지는 못했지만 툭툭을 탈 때마다 스윗하게 대해주었던 기사님은 마지막까지 미소를 보여주었다. (고마워요!) 짐이 있으니 택시를 타면 편했겠지만 분명 길이 막힐 것임으로 공항철도를 타기로 했다. 공항철도를 타러 가기 위해 수쿰빗역에 들어갔는데 퇴근 시간에 맞물려서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아서 MRT를 두 대나 그냥 보냈다. 가까스로 세 번째 열차에 탑승! 한 정거장만 가면 막까산역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할 수 있다. 말만 환승이지 표는 따로 끊어야 한다. 막까산역에도 사람이 많아 두어 대를 그냥 보냈던 듯싶다. 이용객은 많은데 막상 열차는 2-3량 정도로 작아서 꾸역꾸역 밀어서 타거나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던 오후 7시 30분쯤 공항 도착. 도착하자마자 전광판에서 우리 비행기를 찾았지만 5시간 뒤 출발이라 그런지 보이질 않았다. 언젠가는 뜨겠지 하며 마사지샵으로 갔다. 공항 3층으로 올라와 서점 방향으로 쭉 직진! 블로그를 찾아보았을 땐 발 마사지와 약간의 어깨 마사지가 한 시간에 500바트라고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땐 870바트였다. 팁은 팁대로 따로 줘야 하는데 마사지 가격만 거진 두배는 올랐네. 우린 마사지만 받는 게 아니라 밥도 먹어야 하고 샤워도 해야 해서 가지고 있던 개인 돈을 탈탈 털어 총 2,100바트를 공동 경비에 추가했다. 생각해보니 짜뚜짝과 고메 마켓 말고는 개인 돈을 거의 안 썼다. 그 덕분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지. 마사지는 가격에 비해 별로였다. 그냥 누가 내 발과 다리를 만지고 있구나 하는 정도. 그래도 조금의 피로라도 풀리면 되었다.
방콕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샤워하기! 일정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방콕에서 행한 마지막 일이니 여행 일정에 포함시켜야지. 보통 여행에서 돌아올 땐 집에 도착해서 씻지만, 이번 방콕 여행은 새벽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회사로 출근해야 했기에 가능하면 방콕에서 씻고 가고 싶었다. 한국 공항에서 씻어도 되지만 시간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저렴하게 씻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P가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비교적 저렴한 샤워시설이 있다고 해서 검색 끝에 찾아낸 <Miracle Transit Hotel & Spa 미라클 트랜싯 호텔 & 스파>. 이전부터 블로거들에게 알음알음 유명했던 <Dayrooms>의 바뀐 이름이란다. 수완나품 공항 샤워시설을 검색하면 나오는 <미라클 라운지>의 저렴한 버전으로 가격은 350바트. 1,500바트인 미라클 라운지의 1/4 가격이다. 두 개의 샤워룸이 있고 각 샤워룸 안에 또 샤워부스가 딸려있다. 한 사람당 샤워룸 하나를 배정해주기 때문에 누가 내 짐을 훔쳐갈 염려도 없다. 샴푸와 바디워시가 있고 일회용 면도기와 바디로션, 수건을 주지만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샴푸와 바디워시, 폼클렌징 정도는 챙겨가는 게 좋을 듯. 드라이기도 구비되어 있어 머리까지 완벽하게 말리고 나왔다. 샤워도 끝냈으니 이제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자.
tip. 방콕 수완나품 공항 미라클 라운지 찾아가는 법
미라클 라운지가 있는 G 게이트 근처에 있다. G 게이트 방향으로 꺾자마자 멀리 보이는 미라클 라운지를 향해 쭉 가면 된다. 면세 구역이 끝나고 미라클 라운지 쪽에 다 왔을 때 눈앞에 바로 보이는 곳으로 가지 말고, 미라클 라운지 간판 왼쪽에 작게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도착.
2017년 11월 22일
캐논 EOS 6D
여행일기 #방콕 편 연재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