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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Nov 11. 2018

한적한 자전거 여행을 원한다면

#방콕일기 10. 또다시 방끄라짜오


이제는 익숙해진 방나역


방콕에서의 마지막 날. 무계획 여행답게 오늘도 딱히 할 것이 없었다. 룸피니 공원을 갈까 아니면 다른 무얼 할까 생각하다 우리 둘 다 방콕에서 가장 좋아했던 방끄라짜오에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P는 방끄라짜오에 이어 아유타야에서도 자전거를 타 꼬리뼈가 아프다며 그다지 내키지 않은 듯했지만 반강제로 데려갔다. 느지막이 일어나 조식을 먹고 짐을 한 번 더 챙겼다. 그리고 체크아웃.


방나 선착장은 대만 단수이를 생각나게 했다.


사실 방나역은 툭툭을 잡기 쉬운 위치는 아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기로 하고 방콕에서 처음으로 택시를 탔는데 트래픽 잼을 직접 느꼈다. 그간은 보기만 했는데. 방콕 시내도 아니고 평일의 애매한 시간대인데도 길이 막혔다. 방나역에서 방나 선착장까지는 차 타고 5분이면 갈 거리건만 길 위에서 시간을 얼마나 보냈는지. 택시 타기 전 기사가 100바트를 불렀을 때 걷기엔 너무 덥고 멀어서 흥정 없이 바로 타면서도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하염없이 시동 틀고 서있어야 하면 그 정도는 내는 게 맞는 것 같다. 바가지라도 상관없어.


뭉게 구름, 민트색 건물 벽, 푸른 나무와 그 아래 빨간 오토바이까지!


방나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다 P가 산 커피. 맛이 어떤지 말해주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더위 식히기에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커피 만드는걸 바로 옆에서 구경했는데 무엇이든 듬뿍 넣더라. 얼음도 듬뿍, 연유도 듬뿍!



이곳에서 배를 탈 때면 언제나 무념무상. 오늘 저녁이면 이 여행이 끝나고 내일 이 시간에는 다시 서울, 회사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매일 이렇게 여행하며 살고 싶다.



한번 더, 자전거!


며칠 전 자전거 빌렸던 곳에서 또 빌리려고 했는데 문을 닫았다. 그곳뿐 아니라 대부분의 자전거 대여소가 문을 닫아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곳이 몇 없었다. 그래도 문을 연 곳이 있어 그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가 쌩쌩 달리던 길이 한산했다. 자전거 대여소도 그렇고 지금 이 거리도 그렇고 편일이라 이리도 여유로운가 보다. 마치 우리만의 것인 양 달릴 수 있는 것도 좋았는데 날씨마저 그 어떤 날들보다 더 좋고 푸르렀다. 날씨도 도와주니 좋긴 한데 이토록 좋은 날이 마지막 날이라니 점점 아쉬워진다.



이번 방끄라짜오행에서는 P가 지난번부터 가고 싶어 했던 <ROSE APPLE 로즈 애플>이라는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보통 여행지에서의 지도는 내가 보고 길을 찾는 편이지만 오늘 카페는 P가 지도를 보는 것으로. 그런데 한참을 달려도 카페는 나오지 않고, 막다른 길인 듯 우리가 내린 곳과 다른 선착장이 나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 보아온 방끄라짜오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에 갑자기 흥미진진!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라서 지도를 넘겨받아 확인해보니 정반대 방향으로 왔더라. 이번엔 지도가 켜진 P의 핸드폰을 내 자전거 바구니에 잘 고정하고 다시 출발.



도착했다! 방끄라짜오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이제 내가 길을 알기 때문이겠지. 돌고 돌아 도착했더니 자전거를 세우는 순간이 꿈같았다. (방끄라짜오도 우리나라처럼 골목-아니면 도로-에 숫자가 매겨져 있다. 표지판도 큼지막하게 서있으므로 구글 지도를 기본으로 중간중간 도로의 숫자를 보면 길 찾기가 더 쉽다. 사실 카페에 거의 다다라서는 지도 대신 도로 숫자만 보고 찾았다.)



로즈 애플 역시 손님은 우리뿐으로 한산했다. 볕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앉아 소다와 소시지 파스타, 그리고 일본식 카레를 시켰다. 소다의 색과 탄산이 퐁퐁 올라오는 모습이 예뻐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뒤이어 나온 음식들도, 빛이 들어오니 너무 예쁘게 보여 계속 사진 찍었다. 보는 만큼 맛도 좋았다.





여행 중 번외 편 #카메라


1. 내 여행은 거진 사진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남는 게 사진이라고 보기에 여행할 때 1순위로 여권과 함께 카메라를 챙긴다. 해외로 여행 반경을 넓힌 이후로 국내여행에서는 종종 안 들고 가기도 하지만 카메라가 없으면 불안하다. 그런 나인데 이번 방콕 여행 도중 카메라가 고장 났다. 바디 문제인 듯싶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예 안 찍히는 건 아니란 것과 간헐적으로 말을 안 들었단 것이다. 잘 찍히다 갑자기 초점이 나가거나 셔터가 제대로 안 눌리거나. 아마 아시아티크 그쯤부터 고장 난 거 같은데, 카메라를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래서 화가 났다.

화가 난 이유 중 하나는 카메라를 구매한 곳에서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기때문. 나는 이 카메라와 렌즈를 늘 거래하던 중고샵에서 사고 친구도 몇 소개해줬다. 주로 전문가들과 거래하는 곳으로, 신품이 나오면 바로 사서 테스트로 몇 번 작동시켜보고 바로 되파는 사람들의 것을 판매한다. 10년 가까이 거래한 곳이라 풀바디로 바꿀 때도 믿고 산 것인데 벌써 두 번이나 고장이 나다니. (이번 방콕 여행 전에 전주 여행을 갔었는데 그때는 렌즈의 핀이 나갔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 샵에 수리를 맡겼다. 늘 면대면으로 오랜 시간 거래하다 보니 서로 안내 사항을 안내하고 안내받지는 않아서, 일 년 무상 수리인 줄 알았다. 그렇게 알고 맡겨두고 왔는데 전화가 와서는 일 년이 아닌 반년 무상 수리란 거다. 후에 그분이 카메라 주인이 나인 것을 알고 무상 수리로 해주긴 했으나 이후에도 한 번 더 카메라 수리를 맡겨야 했다.


2. 얼마 전 마카오로 엑소 콘서트를 보러 다녀왔다. 토요일 오전에 마카오에 도착, 저녁에 콘서트를 보고 일요일 오후 늦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주변에서 워낙 나에게 어울리는 여행지라 했고 마카오(홍콩)에 대한 기대도 커서 사진 많이 찍고 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카메라를 챙겨가지 않았다. 배터리도 전부 충전하고 혹시 고장 난 곳은 없나 점검까지 다했건만! 심지어 이 사실을 집에서 꽤 멀어진 곳에서 발견했다. 엑소 콘서트 봐야 한다고 응원봉과 슬로건 챙기느라 미처 카메라를 챙기지 못했다. 마카오 여행에서만큼은 1순위가 카메라가 아니라 응원봉이었다.

그렇다고 사진을 안 찍을 수는 없지! 내 아이폰 6S의 기본 카메라는 이미 수명을 다해서 그럴싸하게 버무려줄 필터가 필요했다. 그러다 후지필름에서 나온 ‘grapic 그랩픽’이란 어플을 발견했다. 보통의 필름 카메라처럼 24장짜리 한롤을 다 찍어야 결과물을 보여준다. 진짜 필름 카메라처럼 날짜를 넣을 수도 있고, 한롤을 다 찍으면 인화까지 해서 배송해준다. 물론 핸드폰으로 찍는 데다 일회용이나 다름없어 24장에 오천 얼마를 주고 사자니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카메라가 없던 나는 재고 겨를 시간이 없었다. 그 결과 1박 2일 동안 8롤을 썼다.


3. 내가 사용했던 몇 안 되는 카메라 사용기

nikon coolpix 5100 내 최초의 카메라. 이전에는 가족용 올림푸스가 있었으나 내 돈으로 산 나만의 카메라로는 최초다. 중고로 샀는데 가벼워서 자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대학생 때 산거라 주로 작품 사진을 많이 찍었고 많은 보정을 필요로 했다.

canon eos 550d 가장 오래 사용했다. 초반에는 기본 번들 렌즈를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3-40만원 주고 시그마 렌즈를 샀다. 그렇게 6-8년은 썼나. 한창 사진을 많이 찍을 때 들고 다녀서 카메라가 너덜너덜해졌다.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카메라라 팔지 못하고 사촌동생 줬다. 사실 팔려고 해도 얼마 못 받을 상태였지. 영웅 바디라고 불릴 만큼 보급형 중에서도 뛰어난 바디였다.

yashika electro 35 필름 카메라는 갖고 싶은데 차마 콘탁스 t3는 사지 못해서 저렴한 카메라를 찾다 발견했다. 전부 수동이라 첫 롤은 죄다 날렸다. 그래도 넣는 필름에 따라 느낌을 다르게 뽑아줘서 한때 엄청 들고 다녔다. 그러나 자동 필름 카메라가 갖고 싶어서 또 조금 무거워서 어느 순간부터 안 들고 다니고 있다. 고장 났던 것도 같고.

canon g7x 보정 앱 vsco와 합이 좋다. 라오스 여행과 초기 일본 여행은 모두 이 카메라로 찍고 보정했는데 이때 카메라 기종 및 보정 문의가 가장 많이 들어왔다. dslr이 무거워서 똑딱이로 눈길을 돌렸을 때 소니와 놓고 한참 고민하다 캐논으로 샀다. 지금 모델은 모르겠는데 내가 살 때만 해도 소니는 화면 터치가 안되어서 불편했다. 가벼워서 덕분에 편하게 여행했었다. 결국 나는 다시 dlsr로 돌아왔지만 다음에 또 똑딱이를 산다면 g7x를 선택할 듯.

canon eos 6d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 5d 시리즈가 사고 싶었는데 나한테는 6d가 맞을 거 같아서 샀다. 렌즈는 일단 기본 번들을 끼워 찍고 있는데 영 별로다. 렌즈가 고장 났을 때 상해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카메라 샵에서 24-75 렌즈를 빌려줬었다. 줌도 잘되고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서 렌즈를 바꿀까 고민 중이다.






카페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려 하니 그사이에 자전거 안장이 뜨겁게 열이 올랐다. 그래서 그 위에 생수를 부어 열을 좀 식히려 하니 눈 깜짝할 사이에 물이 증발한다. 그래, 방콕의 더위는 덥다 못해 뜨겁다는 걸 잊고 있었구나.



엉덩이가 아파 더 이상 자전거를 타는 건 무리라 자전거를 반납하고 방끄라짜오를 나가기로 했다. 방끄라짜오를 그렇게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역시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선 후에야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반납하니 대여소 주인이 시원한 코코넛을 까서 주었는데 나는 한 입 먹고 말았다. 코코넛은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든 나와 맞지 않아.


방끄라짜오에서 나오기전, 카페에서 잠깐 쉴까 했는데 사방이 뚫린 야외라 더위를 이기지 못한 우리는 그냥 나왔다.


타이밍 좋게 바로 서있는 배를 타고 방나선착장으로 나왔다. 오늘도 지난번처럼 툭툭을 타고 역으로 나가려 했지만,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방나역까지 단체 툭툭을 운행하지 않는단다. 별 수 없이 택시를 탔다. 기사가 100바트, P가 50바트, 기사가 다시 60바트. 60바트에 방나역으로 가기로 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지름길인가라고 생각하기엔 지름길이 필요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심지어 거리도 더 멀었다. 여기에 택시에 붙어있는 면허증은 여자 사진인데 정작 택시 기사는 남자라 더욱 불안했다. 다행히 택시는 방나역이 아닌 우리의 다음 목적지와 한 정거장 더 가까운 우돔쏙역에서 멈췄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좋긴 한데 왜 아무 말도 없어 이곳으로 데려온 걸까. 쓸모없는 배려다.


2017년 11월 22일

캐논 EOS 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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