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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Nov 06. 2018

방콕의 또 다른 카페거리

#방콕일기 9.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아리역



통로보단 아리


같은 카페거리지만 통로보다는 아리가 좋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딱. 특별하게 눈에 띄거나 멋스러운 건물이 있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골목골목 보는 재미도 있고. 통로보다 더 알찬 느낌.


이때는 이렇게 느꼈지만 지난 두 번째 방콕 여행에서는 아리보다 통로가 더 좋았다. 통로는 첫 여행 때의 교훈으로 분위기 좋은 카페를 두어 곳 알아갔고, 그 두 카페를 제대로 즐겼다. 그러나 아리는 첫 여행 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갔음에도 좋았기에 무계획으로 갔다가 멍하니 시간만 보내다 왔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한 여행지를 여러 번 간다. 여행지에서의 난 언제나 이방인이고, 뜨내기이기 때문에. 이번엔 못 느낀 매력을 다음엔 느낄 수 있고, 이번에 느꼈던 매력이 다음엔 이게 뭐야 싶을 수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이미 갔던 곳의 감상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통으로 바뀔 때의 재미가 쏠쏠하다.



아리에는 P가 가고 싶다던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무모하게도 구글 지도를 켜지 않고 그가 찍어둔 곳을 찾아 골목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모든 골목이 다 마음에 들어서 조금 더 헤맨다 해도 상관없었다. 무척이나 더웠고 길도 다 비슷했으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포인트가 달라 좋았다.



결국 P가 가고 싶어 했던 카페는 찾지 못했다. 큰 대로변 두 개를 두고 양 옆으로 골목이 쫙 늘어서 있는 직선 형태라 길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 골목마다 또 사이 골목이 있어 생각보다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구글 지도 켤걸!



그곳은 가지 못했지만 좋은 곳을 발견했다. 걷다가 발견한 정말 숨겨진 장소 같던 곳. 아마도 공사 중인 듯 대로변에서 보면 가벽으로 막혀 있어 아무것도 없다 생각하고 지나치기 쉬운데, 안으로 들어가면 카페가 있다. 가벽 사이에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나있길래 들여다보니 음식 사진이 붙어있는 입간판이 있지 않은가. 평범하지 않은 느낌에 신나서 들어갔다.



들어오길 잘했다. 이토록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넓은데 분위기까지 있는 카페라니. 아까 가벽 옆에 붙어있던 목공소(겸 크래프트 샵처럼 보였다)와 이어져 있는 곳이었다. 야외에도 멋들어진 테이블이 있었으나 걷느라 지쳐 시원한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음료와 롤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고 카페를 구경했다. 방콕 어딜 가든 국왕의 초상화를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 국왕 사랑이 돋보였던 카페. 사랑인지 존경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둘 다겠지. 국왕이 표지인 매거진이 이토록 많다니. 우리도 타임지가 있지만! 이 위에는 초상화까지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음료수! 카페 자체가 워낙 마음에 들어 음료수는 맛없어도 이해하리라 다짐했는데 음료까지 맛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다른 카페의 커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마신 복숭아 소다는 내 인생 소다가 되었다. 비록 롤케이크는 그냥 마트에서 파는 것을 차갑게 해 두었다가 그냥 꺼내 준 모양새였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 (두 번째 여행에서 이 소다를 마시고 싶어 아리를 한참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상호를 잘 안 보는 게 진짜 문제다. 다음 여행에서는 꼭 다시 찾아갈 수 있기를.)





마치 청춘처럼 뛰었다
비와 함께


다음엔 뭘 할까 하다가 P가 갖고 싶어 하는 수영복 브랜드의 매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P가 갖고 싶어 했던 수영복은 태국 브랜드 '에이프릴 풀데이'의 것으로, 사진을 보니 나도 전에 봤던 곳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특유의 디자인과 사진으로 소소하게 인기 있는 브랜드. 그곳에 가기 위해 카페에서 어느 정도 더위를 식히고 나왔다. 역시 트래픽 잼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태국답게 좁은 골목도 오가는 차로 가득했다. 그래도 지나가는 행인을 보면 요리조리 용케도 다 비켜주었다. 친절해.



쑤라싹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아리역으로 돌아왔다. 무사히 BTS를 탔으나 열차가 움직이질 않았다. 문도 닫혔고 사람들도 다 탔는데 미동도 않는 BTS. 방송이라도 나오면 (비록 태국어라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어 기다릴 텐데 그런 것도 없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고 아유타야에서 돌아오는 기차처럼 내리고 싶으면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이유 모르게 아리역에 한참을 서있다가 출발했다.



분명 환하게 밝을 때 출발했는데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아리역에서 오래 멈춰있던 탓인지 사람으로 가득 찬 열차를 타고 왔다. 하지만 방콕의 열차는 항상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기 때문에 비교적 쾌적했다. 그래도 무사히 쑤라싹역에 도착!



그래, 도착했는데. 우리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칠 기세 없이 세차게 내리는데, 에이프릴 풀데이의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어떻게든 가보기로 했다.

1. 우리가 나온 출구 반대편에 패밀리마트가 보여서 다시 역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반대편 출구로 나갔다. 패밀리마트에 들어가자마자 우산을 찾았으나 'finish.' 끝났단다.

2.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구글 지도를 다시 한번 살펴보니 직선거리이고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뛰어서 가보자. P는 그럴 필요 없다고 돌아가자 했으나, 나는 가까운 것 같으니 뛰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뛰었다. (이 와중에 내가 가진 것 중 제일 비싼 카메라만 꽁꽁 싸맸다.) 그런데 분명 있어야 할 곳에 쇼룸이 없었다. 쇼룸은커녕, 구글 지도가 알려준 곳은 건물이 아니라 대로변이었다. 구글 지도 무슨 일이야! 근처에 다른 쇼룸이 있던 것 같아 급한 대로 편의점 아래 숨어 새 주소를 찾았다. 그리고 또 뛰었다. 그리고 역시 또 없었다. 비는 비대로 다 맞고. 위치는 맞는 것 같은데 없어졌나 보다. 비록 쇼룸은 찾지 못했으나 마치 조금 더 어릴 때로 돌아간듯해 재미있었다. 짧게나마 청춘 영화에 빙의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내 일기의 소재가 생겼잖아!


재미는 여기까지. 다시 역으로 돌아와 (이때는 비가 그쳤다)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아보니 우리 호텔이 있는 수쿰빗역에도, 심지어 환승하는 시암역에 있는 쇼핑센터에도 입점해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쇼룸 자리에만 쇼룸이 없는 거야? 그래도 수쿰빗과 시암에는 종류가 별로 없던 것을 위로 삼아야 하나. 호텔 가는 길에 들러볼까 하다 포기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배고파.





씻고 나와 저녁을 먹을까, 먹고 들어갈까 갈팡질팡하다 씻고 나면 안 나올 것 같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아속역에 도착하자마자 아속역과 이어져 있는 쇼핑센터인 터미널 21로 갔다. 4층의 유명한 여러 식당 중 우리가 고른 건 태국 음식점인 <해브 어 지드>. 똠양꿍과 쏨땀, 모닝글로리 볶음을 시켰는데 전부 다 맛있었다. 이 중 제일 맛있었던 건 모닝글로리 볶음으로 중국에서 한번 먹어본 맛이었다. 아, 칭도오 <소남국 식당>의 개불 볶음 아래 깔린 부추 맛! 어쩐지 맛있더라니, 내가 칭다오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의 맛이었구나. (슬프게도 이 식당은 없어졌다.) 쏨땀은 첫맛이 엄청 시큼했으나 먹다 보니 계속 손이 갔다. 그리고 대망의 똠양꿍. 처음 먹어보는 똠양꿍은 최고였다. P는 향이 너무 강하다 하며 한 입 먹고 수저를 놨지만 난 괜찮았다. 호불호가 엄청 갈릴 것 같긴 하다.



돌아다니며 세운 계획 중 마지막 일정이 딸랏롯파이2 야시장이었다. 그러나 가서 딱히 할 것도 없고 오늘 비까지 맞아 워낙 지친 터라 야시장 대신 휴식을 택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오전에 맞긴 세탁물을 찾아왔다. 그러고 나서 짐 정리.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 미리 캐리어를 싸 두려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불현듯 면세점에서 산 내 바디로션이 300ml라는 것이 떠올랐다. 기내 반입은 100ml로 제한되어 있건만! (내가 끊는 티켓은 대부분 특가-초특가라 위탁수하물이 없다.) 현장에서 위탁수하물을 추가하면 더 비싸서 지금 신청하려고 부랴부랴 알아보니 불가능하더라. 그럼 공항에서 항공사 포인트로 결제할까 하고 찾아보니 그것도 불가능. 별 수 없이 현금을 내고 추가하거나 내 바디로션을 포기하거나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둘 다 싫은걸!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바디로션을 공병에 나눠서 담아가기로 했다.

1. 호텔 어메니티 통을 비웠다. 여기에 나눠서 넣어야지. 그런데 또 그러고 있자니 호텔 어메니티 통의 질이 별로였다. 입구가 너무 작았고 겨우 담는다 해도 내용물이 잘 나오는 재질이 아니었다.

2. 그래서 편의점에 공병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가보았으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기는 아쉬워 편의점을 배회하다 알코올이 들어있는 60ml 병을 발견했다. 만져보니 딱딱하지 않은 것이 로션을 넣어도 잘 나올 것 같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알코올이니 내용물 비우기도 쉬울 테고. 그래서 총 5병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알코올을 버리고 통을 헹구었다. 그리고 바디로션 옮겨 담기 시작. 마치 마약 제조 현장 같았다. 그래도 깔끔하게 잘 해결되었다! 다만 왜 300ml를 다 짜서 넣었는데 60ml 통 4개도 다 안 채워지는 거야?


2017년 11월 21일

캐논 EOS 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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