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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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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Dec 16. 2018

오늘도 하노이를 그냥 걸었어

#베트남일기 4. 기찻길 마을부터 이름 모를 골목까지


분명 어제저녁에 마사지를 받았는데도 자고 일어나니 어깨가 몹시 결렸다. (이쯤 되면 인터넷 맹신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는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았고, 몇 개의 후기에서 '마사지를 받고 나니 되려 온몸이 결린다'는 부분을 찾아냈다. 그래 지금의 나도 마사지 때문에 더 몸이 결리는 걸지도 몰라. 술에 취하면 술로 푼다는 말이 있듯 마사지로 결리는 것이니 제대로 된 마사지로 풀어야겠다. 그래서 후기가 괜찮은 <야쿠시 센터>의 핫스톤 마사지를 찾아 바로 예약까지 끝냈다.



조식을 가볍게 먹고 백종원이 추천했던 쌀국숫집에서 제대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그래도 일단 호텔 조식을 먹긴 했으니 배를 조금 꺼트릴 겸 산책을 시작했다.




여행 중 번외 편 #산책2


언젠가 적었듯 관광지도 좋지만 이렇게 정처 없이 걷는 게 제일 좋다. 그중 꼭 한번 적고 싶었던 내가 좋아하는 산책 시간대. 여행지를 걷는 건 언제나 좋지만 그중에서도 평일 아침에 걷는걸 가장 좋아한다. 모두가 일하러 가는 시간에 나는 이렇게 쉬고 있다, 여유를 즐기고 있다는 약간의 으스댐이 첫 번째 이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여행을 왔다는 게 가장 잘 느껴지는 시간대라. 아마 도쿄 여행을 갔을 때였던 것 같다. 도쿄에 도착한 첫날 공항 근처에서 묵었는데 호텔을 옮기기 전 짧게 근처를 돌아봤었다. 출근하는 회사원들,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 신문을 들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들을 철저히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카메라의 시선만 빼고 모두 빠르게 사라지는 그런 느낌으로. 이상하게 그제야 '아 맞아, 나 여행 왔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사카였나, 아침 산책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역방향으로 걷는데 나 홀로 그 반대방향으로 걷는걸을 깨달았을 때도 '그러게. 서울이었다면 나도 저들 중 한 명이었을 텐데 나는 지금 여행 중이네.'라 생각했다.

쓰고 보니 첫 번째 이유가 곧 두 번째 이유구나. 저들은 일을 하러 가야 하지만 나는 지금 여행 중이라는 조금의 으스댐. 조금 재수 없어 보여 평일 아침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더 급하게 덧붙여보자면 한적한 골목. 이건 세계 어딜 가나 똑같지만.





백종원이 추천한 쌀국수 맛집
Phở Gia truyền


걷다 보니 도착한 <Phở Gia truyền>. 둘 다 익은 양지 쌀국수를 시켰다. 물론 나는 고수를 뺐고, M은 고수를 빼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시도는 해보자는 마음에 고수가 들어있는 M의 쌀국수를 먹어보았는데 의외로 고수 향이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헛구역질. 시도는 무슨 다시는 고수는 입에도 대지 않아야지. 우리나라에서 파는 쌀국수보다 특출 나게 맛있지는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파는 쌀국수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쌀국수를 시키면 나오는 양파절임이 먹고 싶었다. 김치까지 갈 필요도 없고 양파절임이면 되는데. 내가 먹기에는 삼삼했다. 나야 원래 자극적으로 먹는 편이니 그렇다 치고 평소에도 삼삼하게 먹는 M의 입맛에도 그랬다 하니 전체적으로 간이 약한가 보다. 백종원의 한국 음식 레시피는 내 입맛에 찰떡인데 대체 외국만 나오면 왜 이렇게 안 맞는 걸까? 내가 너무나도 한국인의 입맛이기 때문일까.


주소 : 49 Bát Đàn, Cửa Đông, Hoàn Kiếm, Hà Nội


베트남의 여느 식당들처럼 목욕탕 의자를 깔고 먹는 테이블과 일반적인 높이의 의자가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하노이의 유명지 중 한 곳인 기찻길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딱히 명칭은 없는듯해 그 부근에 있는 카페 중 하나인 <The KAfe>를 지도에 찍고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하노이 자체도 그리 넓지 않아 어지간한 곳들은 쉽게 걸어갈 수 있다.



<The KAfe>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찻길 마을 시작 지점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찻길 마을 끝 지점에서 시작했다. 의도한 게 아니고 지도를 따라 걷다 보니 사진에서 보던 익숙한 곳이 나왔고 그곳이 기찻길 마을이었다. 그 덕분에 다른 여행자들 없이 온전히 우리끼리 기찻길 마을을 즐길 수 있었다.

이건 나만의 여행 팁 아닌 팁으로 여행지에서의 루트를 반대로 짠다. 예를 들어 경주 여행을 할 때 보통은 불국사에 갔다가 석굴암을 가지만 나는 석굴암을 갔다 불국사에 간다. A-B-C가 유명한 루트라면 C-B-A로 가는 편.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명한 루트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 반대로 움직이면 비교적 붐비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언제나 사람들이 많은 곳은 어쩔 수 없다. 또 어두운 밤에 붉게 빛나는 홍등으로 유명한 대만의 지우펀 같은 경우도 제외. 기찻길 마을처럼 입구와 출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는 곳이라면 대게 출구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번엔 나도 우연히 길을 찾은 거지만.



여느 기찻길 마을이나 거진 다 그렇겠지만 이곳도 역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 최대한 조용히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타이밍이 맞으면 이곳을 지나가는 기차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다. 대신 사파로 넘어가는 길에 이 위를 기차를 타고 달렸다.





그냥 걸었어


커피로도 유명한 베트남. 그럴싸한 카페에서 쉬고 싶어 M이 찾은 카페를 찾아가는 길에 국립 도서관이 있길래 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안내판에 이안에 북카페가 있다 하여 북카페가 괜찮으면 그냥 여기서 쉬고 가야지 했는데 없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현지인들이 우리를 보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가라며 안내해주길래 '오 2층에 카페가 있구나'했건만 그냥 열람실이었다. DSLR에 완전 여행자 차림이었는데 우리에게 왜 열람실을 안내해준 거지?


도서관 앞 이발관. 하노이 곳곳에는 이런 실내 이발관이 있는가하면 길거리에서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



의문만 남은 도서관 안내를 뒤로 한채 나와 그냥 걸었다. 내게 하노이는 아주 복잡한 곳인데 이상하게도 걷고 있을 때면 그런 느낌이 안 났다. 여행을 마친 지금 뒤돌아보면 이리저리 얽혀있는 전선하며 길거리를 장악한 오토바이, 그리고 이것들로 가득 찬 골목으로 아직까지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그 골목들을 걸었던 지난 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무슨 사색이 그리 많은지. 그리고 생각을 더듬어가면 그 당시에는 크게 복잡한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오토바이가 오가는 도로를 건널 때는 예외다.) 참 알다가도 모를 신기한 곳이야.



M이 봐 둔 카페는 성요셉 성당 근처에 있어 성당까지 왔다가 코코넛 커피와 스무디로 유명한 <콩 카페>가 보이길래 콩 카페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니 웨이팅도 길고 목마름보다 배고픔이 더 커서 다시 식당으로 목적지를 변경, 오가며 봐 두었던 레스토랑인  <Pizza 4P's>로 향했다.



외관만 봤을 때는 하노이에서 보던 다른 가게들과 달리 비싸 보였는데 메뉴판을 보니 생각보다 저렴했다. 그런데 또 막상 피자를 시키고 보니 하노이 물가에 비해 꽤 비쌌다. 그래도 맛있으니 괜찮아. 피자랑 샐러드랑 이것저것 시켜 먹다 보니 남은양이 꽤 되어 포장도 해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과일가게에서 체리를 사려고 가격을 물어보니 1kg에 580,000동이란다. 우리가 방금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배부르게 먹고 480,000동을 내면서도 비싸다고 했는데 길거리 체리 가격이 이렇다고?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씌우는 건가. 결국 사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





호안끼엠 호수에에서
하노이에서 가장 큰 서호 호수까지


호텔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피곤하기도 하고 딱히 할 것도 없는 데다 약기운도 돌고. 하노이는 여러 투어를 하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에게도 딱 그랬다. 사파보다 더 오래 머물기는 하지만 사파를 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 그만큼 우리에겐 매력 없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래도 좋지 않은 몸상태 때문에 더 그런 듯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중간에 쉬어가기도 하고 여유면에서는 좋았다.

자다 일어나 <사파 익스프레스> 사무시로 가서 마지막 날 사파에서 하노이로 돌아오는 슬리핑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앞으로의 공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큰 지출은 미리 해놓는 게 나았다. 구매하며 사파에서 하노이로 오는 길에 공항에 세워주는지 다시 한번 확인, 그렇다는 확답을 받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리멤버 투어>에서 어제 예약해두었던 하노이-사파 야간열차 바우처를 티켓으로 교환했다.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서의 모든 할 일을 끝내고 마사지샵 <야쿠시 센터>가 있는 서호 호수 근처로 이동했다. 택시로 이동해야 할 거리였지만 우리는 그냥 걸었다. 시간이 많잖아. 사실 호안끼엠 호수-서호 호수의 거리를 간과한 것도 있다. 예상보다 더 오래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시간이 촉박해 서호 호수는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다.


구글 지도에서는 걸어서 오십 분이라고 했는데 M이 찾아보니 블로그 속 어떤 사람은 삼십 분 만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 글만 믿고 걸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네 배인  두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긴 했지만 금방 알아차려서 바로 제대로 된 길로 나왔음에도 두 시간. 그 한 번을 제외하고는 지도를 따라 제대로 걸어왔는데 두 시간이었다. 이게 다 오토바이 때문이야. 오토바이만 아니었다면 슥슥 빠르게 걸어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오토바이 때문에 길에서 수백 번을 멈춰 서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무사히 잘 도착했다. YAKUSH라 적힌 간판을 보는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어제의 그 형편없는 마사지도 천상의 마사지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야쿠시센터에서는 핫스톤 마사지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뜨거운 돌을 가지고 마사지를 하는 거였다. 어깨 마사지를 받을 때만 해도 시원한지 어떤지 몰랐으나 다리 마사지를 받을 때는 이렇게 계속 마사지를 받으며 누워있고 싶었다. 왠지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땐 온몸이 시원할 것 같다.



돌아올 때는 걷기를 포기하고 택시를 탔다. 마사지를 받아서 온 몸이 흐물흐물해졌어. 첫날 택시를 탔을 때처럼 호텔 바로 앞에 세워줄 줄 알았는데 주말 저녁이라 안 그래도 번잡한 곳이 더 붐벼서 그런지 호텔 근처 대로변에 세워졌다. 그래도 대충 아는 길 같아서 그냥 내렸다.



반미나 하나씩 입에 물고 호텔로 들어가자 했건만 어쩌다 보니 햄버거를 먹게 되었다. 호텔로 가는 길에 외국인들이 앉아있는 수제 버거 및 맥주집이 있었는데, 대충 헤아려보니 오늘자 공금이 200,000동 정도 남아있어 홀린 듯 들어갔다. 반미는 내일 먹지 뭐. 들어와서 메뉴판을 살펴보니 200,000동으로는 터무니없어 슬그머니 내일자 공금을 조금 끌어왔다.

나는 코코넛이 들어간 흑맥주를 M은 레몬이 들어간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둘이서 랜덤으로 고른 스테이크 버거 하나. 흑맥주는 처음엔 고소하다 끝에는 알코올 맛만 남았다. 목이 따끔거려 조금 마시다 말았다. 맥주는 별로였지만 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하노이에서 먹은 것 중 이 버거가 제일 맛있었다. 아니 정말 맛있게 먹은 유일한 음식이었다.


2017년 1월 14일

캐논 EOS 5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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