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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Dec 19. 2018

안녕, 하노이

#베트남일기 5. 사파로 가는 야간열차


하노이에서는 이동하며 과일 팔던 사람들을 보는게 좋았다.


오늘은 사파에 간다. 야간열차를 탈 예정이라 하루가 길 것 같아 호텔에서 쉴 수 있는 만큼 꽉 채워 늘아지게 누워있었다. 그 틈에서도 조식은 꼭 챙겨 먹었는데 삼일 내내 거의 같은 것만 먹었다. 그러다 오늘 다른 투숙객이 계락 프라이를 받아먹길래 우리도 해달라고 해서 빵에 얹어 먹었다. 학교는 내가 졸업할 때쯤에야 학교 시설을 개선해주고 조식 메뉴는 내가 체크아웃하는 날에야 새 메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구나.



체크아웃 후 짐을 맡기고 나와 마지막으로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구경했다. 목적 없이 유유자적. 하노이에서는 곳곳에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하나엔 상인이 앉고 다른 하나엔 과일을 얹어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어떤 과일은 그 위에 고춧가루처럼 보이는 빨간 가루를 뿌려주기도 했다. 보통 동남아 여행을 할 때는 과일이 저렴해서 많이 먹는다는데 우린 도통 먹지를 않았다. 분명 어제 사려던 체리 가격에 놀랐기 때문일 테지. 또 이쯤 되었을 땐 하노이의 거진 모든 음식이 맛없어 과일의 맛도 기대되지 않았다.



주말이라 그런가 호수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단연코 눈에 띄던 이들. 내 추측으로는 졸업 사진을 찍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여자들은 흰색의 -아마도- 전통 복장을, 남자들은 검은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거기다 신고 있던 힐이 불편했던지 대부분이 맨발로 걸었다. 대체 뭘까?



이 밖에도 마치 제 집 거실처럼 바닥을 구르는 아이, 풍선을 파는 사람, 핀을 파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자보다 현지인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던 어제저녁과 요소는 비슷했으나 지금은 현실이란 자각이 들었다.




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이발을 해주었던 것 같다.


위험한 산책


호수 산책은 그만두고 에펠탑 설계자가 설계하고 프랑스가 지어 올렸다는 다리를 보러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도 되었지만 역시 우리는 걸었다. 시간도 많았고 -그놈의- 구글 지도를 보았을 때 충분히 걸어갈만한 거리였다. 하노이의 메인 거리라고 할 수 있는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이는 길게 난 도로가 나온다. 그리고 그 도로를 위험천만하게 건너면 -아마도- 시가지가 나온다. 시장 안도 누비는 오토바이이니 도로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분명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는데도 목숨을 걸고 건너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주로 머무는 호수 근처에는 온통 호텔과, 식당, 가게들 뿐인데 그 주인들은 어디서 사는 걸까. 생활을 하며 가게를 운영한다고 하기엔 그 가게라는 게 변변찮은 기구 없이 그냥 물건만 늘어놓은 상태가 많아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M이랑도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그들의 집이 모두 여기 있었나 보다. 호수와 이토록 가까운데도 이곳에 있는 외국인은 나와 M 단 둘 뿐이었다. 길 한 번 건넜을 뿐인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아래 나오는 내용은 사진 속 사람들과는 무관하다.


어떻게 바뀌었냐면 이곳은 너무 무서웠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만 일단 말이 안 통하는 곳이니까. 말이 안 통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참 새삼스럽게도 여기에선 그게 엄청 크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과일이 있길래 이름이 궁금해 잠깐 그 근처를 서성이며 구글로 과일을 찾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것을 살 것이라 생각했는지 주인이 다가왔다.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먹는 건지도 모르는 데다 그냥 이름이 궁금했을 뿐이라 안 산다며 손사래를 쳤는데 주인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불러 우리에게 무어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걸 만진 것도 아니고 엄청 가까이 간 것도 아니고 그냥 근처에서 서성였을 뿐인데. 무서워서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는데 그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말을 쏟아부었다.  



골목의 끝에 다다랐다. 지도에서는 분명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쭉 올라가라고 했는데 길이 보이질 않았다. 왜냐면 거긴 큰 공터를 바탕으로 한 고물상이었거든. 그냥 평범한 고물상이었는데 잔뜩 쌓여있는 형체가 구분 안 가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또 무서워졌다. 으슥한 골목의 끝이었고, 조금 전까지 욕을 얻어먹은 데다 지도는 이상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면 예의 그 과일가게를 지나가야 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에서 (심지어 다 현지인이다) 말도 안 통하는 그들과 또 대면하고 싶지 않아 그냥 눈앞에 보이는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지금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만 가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또 그 골목도 조금 무서웠다. 이 골목도 역시 으슥했는데 노름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냥 모든 게 다 무서웠다. 지도를 따라 아무리 걸어도 길은 안 나오지, 사람들은 욕하고 쳐다보지 더 이상 돌아다닐 힘이 나지 않았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맘때쯤 우리가 가던 곳이 가고자 했던 다리인 <Long Biên Bridge>가 아닌 그 아래 있는 다른 다리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롱비엔 다리고 뭐고 흥이 다 식었다. 어차피 큰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재빠르게 그 마을을 벗어났다.


호수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곳은 평범한 주택가였는데 우리가 겁이 너무 많았다. 길을 건널 때부터 진이 빠져 바가지로 쏟아지는 욕에 정신을 못 차리고 모든 걸 겁냈던 것 같다. 내가 욕이랑 먼 생활을 한 것도 아니면서. 호수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이 사람들일 텐데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하나를 겁내니 다른 사소한 것에서도 겁을 먹었다. 이게 다 감기약 때문이야. 평소의 우리라면 전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별일 아닌 일들인데.





안녕, 하노이


호수 돌아와 마음이 편해지자 몹시 배가 고팠다. 이 와중에 맛없는 건 먹고 싶지 않아 유명 맛집 중 하나인 <반미 25 BANH MI 25>로 갔다. 파테 pate를 피해서 치킨 반미 두 개를 시켰는데 백종원이 추천했던 반미집보다 훨씬 맛있었다. 다만 내가 고수 빼 달라고 말하는 것을 잊어 -다행히- 고수가 들어있지 않았던 몇 부분만 빼고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나름 눈에 보이는 고수는 뺀다고 뺐는데도 여전히 남아있었는지 한번 씹고 토할뻔해서 그냥 내려놨다. 맛은 진짜 좋았는데 입에서 자꾸 고수가 맴돌았다.



그래도 하노이에 왔는데 <콩 카페>는 한번 가봐야지. 오늘도 콩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다. 8할은 한국인이었고 우리도 그중 하나. M은 가장 유명한 코코넛 커피 스무디를,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코코아 스무디를 주문했다. 직원 셋 중 음료 제조는 한 명만 해서 음료가 굉장히 늦게 나왔다. 그래도 나는 입안을 계속 헤집고 다니는 고수의 흔적을 없애야 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코코아 스무디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그러나 내가 시킨 코코아 스무디보다 M과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시킨 코코넛 커피 스무디가 훨씬 맛있었다. 더위사냥 맛. 그래도 코코아로 고수를 몰아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차가운 스무디를 마시고 있으니 으슬으슬 추워졌다. 이때까지도 감기는 낫지 않아 계속 감기약 신세를 지고 있었다. 실내에서 조금 쉬고 싶은데 콩 카페는 비좁아 성 요셉 성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성당에서 조용히 쉬고 싶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별수 없이 성당 뒤쪽 벤치에 가만 앉아 소풍 나온 아이들을 구경했다. '베트남 사람들도 빨간색을 참 좋아하나 보다' 이런 생각이나 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도무지 추위가 가시질 않아 성당 맞은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 들어온 김에 아까 반미를 제대로 먹지 못해 배고팠던 나는 무난한 햄 치즈 샌드위치도 하나시켰다. 이번엔 고수가 들어있느냐 묻는 걸 잊지 않았다.



카페에서 나오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내 주변에서 맛집 찾는 걸 가장 좋아하는 것 같은 M이 또 하나의 맛집인 <꾸안 넴 Quán Nem>에 가자고 했다. 식당 발견은 M이, 길 찾는 건 내가. CNN이 선정한 블라블라 맛집으로 분짜와 넴이 맛나다고 했다. 꾸안 넴은 그동안 우리가 전혀 가보지 않았던 마을에 있었다. 여긴 어두운데도 무섭지 않았다. 꾸안 넴에 도착해 분짜와 넴을 하나씩 시키며 고수는 빼 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야채 더미에는 고수가 있었다. 알았다며, 빼준다며! 그나마 분짜는 국물에 내가 먹고 싶은 야채를 넣어 먹는 방식이라 고수를 먹거나 아니면 굶어야 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먹어본 분짜는 신맛이 나긴 했지만 맛은 또 있어서 잘 먹었다. 넴도 두툼한 부침개 같은 맛이라 역시 잘 먹었다.


주소 : 117 Bùi Thị Xuân, Hai Bà Trưng, Hà Nội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오늘도 호수 근처에서 야시장이 열려 주변 도로에 차와 오토바이가 없어 좋았다. 야시장에서 마그넷과 친구들 선물을 사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으나 딱히 살만한 게 없었다. 금방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기차역으로. 짐이 있어 이번만큼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

 




드디어 사파에 간다. 그것도 야간열차를 타고! 침대가 달려있는 열차라니. 기차를 보자 두근거림이 더 커졌다.

 


우리가 탈 열차는 7번 플랫폼에 있었다. 7/8번 플랫폼으로 내려와 혹시 몰라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우리가 타야 할 열차가 이 열차가 맞는지 재확인했다. 열차의 왼쪽 창가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오갈 수 있는 좁은 복도고, 오른쪽 창가를 기준으로 침대칸이 쫙 늘어서 있었다. 그중 4인실 침대칸의 오른쪽 1층과 2층이 우리 자리였다. 우리만 있었다면 둘 다 1층을 썼겠지만 이미 왼쪽 1층은 주인이 있었기에 M이 오른쪽 1층에서 내가 2층에서 자기로 했다. 그런데 올라가는 계단이 없다. 있는 거라곤 벽에 뿅 하고 작게 나와있는 발판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발판 하나뿐. 잠결에 화장실에 가려고 내려오려 하다간 사고가 날 것 같아 라오까이에 도착할 때까지 2층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않았다. 침대는 좁고, 날 보호해줄 난간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짧고 낮은 데다 천장도 낮아서 불편하고 무서웠다. 그래도 열차의 침대칸이라니! 영화 같고 재미있었다.

침대의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쾌적하고 깨끗했다. 바나나 두 개를 사 왔는데 이미 열차에 바나나가 있었다. 여기에 과자와 물도 있고. 다른 후기에서 없다던 와이파이는 느리지만 터지긴 했고, 되려 있다던 콘센트는 없었다. 화장실은 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1층에 머무른다면 만족도가 더 오를 테지. … 그런데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머리 쪽이 덜컹거렸다. 오, 이거 도착할 때까지 이럴 모양인데? 창밖을 보니 우리가 금요일부터 돌아다녔던 곳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하노이는 안녕이구나. 이렇게 덜컹거려서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2017년 1월 15일

캐논 EOS 5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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