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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Feb 04. 2019

방콕의 색다른 야경

#방콕일기 3. 또다른 야시장, 딸랏롯파이2



면세점에서 블러셔를 하나 샀다. 그래서 세포라에서 블러셔 브러시를 사기로 했다. '방콕 세포라'를 검색하니 시암센터에 있다는데, 구글 지도는 시암역이 아닌 내셔널 스타디움역으로 가는 방향을 추천했다. 뭔가 의아했지만 지도의 안내대로 내셔널 스타디움역으로 갔다. 시암에는 많은 쇼핑몰이 있는데 내셔널 스타디움역은 그중 시암 디스커버리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시암 디스커버리 2층은 시암센터로 연결되어있단다. 길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터라 조금 헤매다 시암센터 G층에 있는 세포라에 도착했다. 이것저것 재보다가 세포라의 여행용 브러시 키트와 교통사고가 나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데도 지워지지 않았다던 캣본디의 타투 아이라이너를 구매했다. 그간의 모든 여행을 통틀어 가장 쇼핑다운 쇼핑을 한 것 같네.



오늘 오후 일정은 방콕의 소문난 야시장 중 하나인 <딸랏롯파이2>에 가는 것. 쇼핑센터에서의 쇼핑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터라 생각보다 시간이 애매했다. 바로 딸랏롯파이로 가자니 시간이 뜨고 그렇다고 호텔에 들렀다가자니 귀찮아서 밥을 먹기로 했다. 방콕에 오기 전, 한국에서 만들어두었던 구글 지도 내 '나의 방콕 지도'를 살펴보니 이 근처에 푸팟퐁커리 맛집으로 알려진 <쏨분씨푸드 시암스퀘어점>이 있다. 시암역과 이어져있어 역에서 갈 때는 길이 쉬운 편이지만, 밖에서 돌아다니다 찾으려면 애를 먹을 수도 있다. 구글 지도 이용 시 꼭 '시암스퀘어원'으로 검색해야 정확한 위치가 잡힌다. 후기를 찾아보니 대기 인원이 많다더니만 한 10분 정도 기다렸나, 금세 내 차례가 되었다.



혼자 왔음에도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 푸팟퐁커리, 새우볶음밥, 모닝글로리 볶음 여기에 땡모반까지 다 시켰다. 전부 다 맛있었지만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여행 후반에 합류한 HD님과도 동일한 메뉴를 시켰는데 그때도 남겼다. 둘이었음에도.) 그래도 푸팟퐁커리는 볶음밥과 함께 먹어야 더 맛있으니까. 땡모반이야 뭐 모든 식사에서 빼놓을 수 없고. 모닝글로리는 자제했어야 했나 싶다가도 그래 봤자 풀인데 배가 차면 얼마나 찬다고. 그러나 전부 반 이상은 남겼다. 내가 양이 많이 줄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하네. 내일부터는 적당히 먹어야겠다.





밥을 먹고 나오니 얼추 딸랏롯파이2의 오픈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그럼 이제 딸랏롯파이2로! 딸랏롯파이2가 있다면 딸랏롯파이1도 있겠지. 딸랏롯파이1은 2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더 다양한 것들을 파는데 반해, 2는 1에 비해 훨씬 작고 거의 먹거리 위주로 몰려있단다. 그러나 아마 여행자들에게는 딸랏롯파이2가 더 유명하리라 생각되는데 일단 위치상 접근이 용이하고, 유명한 맛집들이 많이 있으며 전파도 꽤 탔다. 그리고 최근 방송된 배틀트립에 여행자들에게 암암리에 유명하던 야시장의 야경까지 소개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유명해지리라.


아무튼 이미 식사를 했기에 딸랏롯파이2의 유명 먹거리들은 먹지 못하겠지만, 혹시 이곳에서 동남아 여행용 옷을 발견할지도 모르잖아! (실제로 나는 지난 태국 여행 시 짜뚜짝 시장에서 산 코끼리 패턴 옷을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시장의 휘황찬란한 천막들을 내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지금 당장 야경을 찍기에는 주변이 너무 환하지만, 시장을 대충 둘러보고 해질 때쯤 자리를 옮기면 내가 원하는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MRT를 타고 타이 컬처 센터로 이동, 타이 컬처 센터 3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직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쇼핑센터 <ESPLANADE>가 보였다. 이 건물을 통해서도 갈 수 있고, 쇼핑센터까지 가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골목으로 갈 수도 있다. 나는 골목을 통해 갔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가서 그런지 문을 열지 않은 곳도 꽤 되었다. 계획을 변경해 제대로 된 구경은 야경 사진을 찍고 난 뒤 하기로 하고 일단은 구조나 파악해 볼 겸 슬렁슬렁 걸어 다녔다.


쇼핑센터 1층 로비는 딸랏롯파이를 옮겨놓은 마냥 천막을 씌운 가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슬슬 해질 무렵이 되어 ESPLANADE로 넘어갔다. 이 곳 4층에 있는 주차장에 가면 방콕의 색다른 야경을 볼 수 있다. 방콕의 야경은 루프트 탑에서 보는 도시 뷰나, 왓 아룬 근처 바 bar에서 즐기는 왓 아룬 뷰가 대세인데 나는 이들보다도 이 딸랏롯파이2의 다양한 색의 천막들로 가득한 뷰가 더 궁금했다.



색색의 천막이 휘날리는 야시장


주차장에 들어서면 딸랏롯파이2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아직 해가 완벽하게 지지 않아서인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나만이 주차장에 서있었다. 가만히 딸랏롯파이2를 바라보고 있는데 바람까지 선선하게 불어왔다. 일부러 해 질 무렵에 올라왔는데 그 덕에 해지는 모습과 해진 후 야경까지 모두 볼 수 있는 데다가 잠깐의 여유까지 얻었다.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한 천막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그러다 또 정신 놓고 구경하고 있으니 어느새 모든 천막의 불이 다 켜졌다. 인스타그램에 두 번째 사진을 올렸더니 누군가가 '핑크 방콕'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한참 구경하다가 옆에 있던 중국 여행자에게 내 사진을 부탁했다. 딱 한 장이면 되었는데 그는 나를 이리저리 돌려세우고 팔을 올려라 내려라 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비록 마음에 드는 사진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은 참 고마웠다. 그래서 나도 그와 그의 연인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해외에서 지갑이 사라졌을 때


해가 완벽히 사라지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차장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의 수도 꽤 되었다. 나는 여유가 사라진 이 곳에서 서둘러 벗어났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돈이 얼마나 남았나 하고 가방을 열었는데, 지갑이 없었다! 대체 어디서 잃어버린 거지? 딸랏롯파이2를 둘러볼 때? 아니면 주차장에 올라와서? 하지만 난 두 곳에서 전부 지갑을 꺼낸 적이 없는데. 내가 지갑을 가방이 아니라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내려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주차장까지 가보았으나 그곳에 떨어트렸다고 한들 제자리에 있을 리 만무했다. 힘이 빠져 쇼핑센터 내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평소와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가져온 돈을 여행일 수에 맞춰 나누고, 딱 오늘 하루치의 돈만 가지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오늘 하루가 거의 다 끝날 무렵이라 (여기에 비싼 것만 먹기도 했고) 지갑에 돈이 얼마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속이 쓰렸다. 무엇보다 향후 몇십 년간은 지진 때문에 갈 일 없는 교토에서 사 온 지갑을 잃어버려서 너무 속상했다. 마음에 들어서 몇 년간 애용하던 지갑이었는데. 그래도 여권도, 유심칩도, 호텔 키도 잃어버리지 않았잖아. 그래 액땜했다고 치자!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아뿔싸! 호텔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걸어갈만한 위치도, 시간도 아니다. 그렇다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이곳에서 사정을 말하고 돈을 빌릴 곳도 없다. 그러다 문득 내 핸드폰 뒤에 꽂혀있는 신용카드에 눈이 갔다. 아, 신용카드가 있네! 한국에서는 지갑 들고 다니기가 귀찮아 꼭 카드를 꽂을 수 있는 핸드폰 케이스를 끼우는데 그 덕에 지갑을 잃어버린 지금 이 순간, 거지꼴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한국의 신용카드도 사용 가능한 ATM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안내대로 돈을 인출했다. 얼마를 뽑을까 하다 짜증 나서 그냥 통 크게 2,000바트를 인출했다. 어차피 얼마를 뽑든 수수료는 무조건 220바트라는데 그럴 거면 많이 뽑는 게 낫지. 에라 모르겠다.



2,000 바트를 들고 딸랏롯파이2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지갑을 샀다. 적당한 크기의 만족스러운 코끼리 패턴을 가진 지갑을 발견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전 태국 여행 후 부채를 선물했던 친구에게서 '강아지가 부채를 망가트렸어ㅠㅠ'라고 연락이 왔던 것을 떠올리고 그것과 똑같은 부채를 샀다. 돈도 많이 뽑았으니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워 코끼리 바지와 민소매도 하나씩 샀다. (부채는 짜뚜짝 시장보다 저렴했고, 옷은 짜뚜짝 시장보다 비쌌다.)



기운이 빠지면서 배도 꺼져서 야시장에서 뭔가 사 먹을까 하다 포기했다. 대신 수쿰빗역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와 컵라면 하나를 샀다. 그러나 이마저도 막상 호텔로 돌아와 씻고 나니 진이 빠져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멀리 밀어뒀다.


쉬자.


2018년 7월 24일

캐논 EOS 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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