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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Mar 06. 2019

또다시 안녕, 방콕

#방콕일기 10. 한 번 더 방끄라짜오


<틴트 오브 블루>에서의 마지막 조식.


퇴사를 기념하는 나의 '두 번째 방콕' 여행 마지막 날. 애석하게도 이 날은 일기를 써두지 않아 온전히 내 기억에만 의존해 글을 써야 한다. 여행 마지막 날의 일기는 쓰는 것을 곧잘 잊어버리곤 하는데 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생각보다 내 기억력에 더 많이 기대를 한다. 사진을 찍어두었으니 사진을 보면 그때의 상황이 얼추 기억날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의외로 큰 편. 대게는 내 기대대로 사진 속 상황을 잘 떠올리지만 대신 사진과 사진을 잇는 붕 떠버린 시간에 대한 디테일은 남는 게 없다. 그리고 보통은 이동하는 중간에 틈틈이 그날의 일기를 써두는데 마지막 날은 '비행기에서 몰아 써야지.'하고 미뤄버린다. 비행기에서는 또 '한국에 돌아가면 집에서 편히 누워 써야지.'하고 결국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한참 뒤에 여행의 끝을 정리하려 하면 이렇듯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다. 어느새 내 여행 루틴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오늘 호텔 식당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전에 밥 먹으며 한 마리는 스치듯 보았었는데 두 마리나 있었구나. 밥 먹다 말고 슬금슬금 고양이를 쫓아다녔다.



호텔 밖에서도 고양이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첫날 길에서 본 작은 고양이 두 마리는 제외하고는 그래도 건강해 보인다. 이 고양이는 큰 건물 아래 있는 작은 제단 앞에서 놀고 있었다.




방나 선착장에서 수상 버스를 기다리며.


한 번 더 방끄라짜오


지난 여행에서 두 번이나 갔던 방끄라짜오. 이번 여행에서는 마지막 날인 오늘에서야 간다. 위치만 조금 더 좋았더라면 거의 매일 갔을 테지만, 또 한 편으로는 거리 덕에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방나역까지 가서 걸어가거나 택시를 잡지 않고 호텔 앞 큰 거리에서 그랩을 잡았다. 그랩 프로모션 덕에 그 긴 거리를 저렴하게 이동했다.



수상 버스를 타고 강 건너로. 아니 나는 왜 어떨 때는 수상 버스라 하고 어떨 때는 수상 보트라 할까. 그리고 보트면 보트지 수상 보트는 뭐야. 그런데 이게 또 내 나름의 원칙이 있다. 큰 차이는 없지만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비교적 길면 수상 버스, 짧으면 수상 보트. (이상하게 방콕에서만은 보트 앞에 '수상'을 붙이고 싶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때그때 내 기분과 느낌에 따라 적는다. 그래서 같은 것을 타고도 어떤 일기에서는 버스라 적고, 또 다른 일기에서는 보트라 적고.


아무튼 강을 건너는 동안 하늘이 울적해졌다. 비가 오려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전에 달렸던 그 길을 따라 달린다. 나의 여행 루틴 중 다른 하나는 갔던 곳을 또 가게 된다면 전에 찍었던 것과 같은 사진을 찍는 것. 그래서 다섯 번의 대만 여행 중 단수이 사진은 특히나 비슷한 컷들이 많다. 늘 같은 위치에 서서 같은 골목을 찍기 때문에. 방끄라짜오도 예외는 아니라 최대한 같은 위치에서 같은 곳 사진을 몇 장 찍어두었다. 그리고 사람이 참 웃긴 게 그 사진은 언제나 마음에 들어 내 일기에 꼭 등장한다.



이 도로의 끝에서 왼쪽으로 꺾어 조금만 달리면 <로즈 애플 ROSE APPLE>이 나온다.



자리를 잡고 음료와 케이크를 시켰다. 전면 유리라 햇빛이 들면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가 드는 곳인데 오늘은 하늘이 도와주질 않는다.



그래도 잊지 않고 로즈 애플의 정원을 둘러보았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점점 먹구름이 커졌다. 여기서 선착장까지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십오 분은 걸리는데! 불안해하면서도 후다닥 자전거에서 내려 기념샷을 남겼다. 오늘은 여기서 찍은 게 인물 사진의 끝 같은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선착장이 보일 즈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급히 눈에 보이는 천막 아래로 들어가 숨었다. 이 비가 그치면 배를 타고 건너가야지, 라 했건만 비는 그칠 기미 없이 되려 더 쏟아졌다. 방콕은 한번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정말 들이붓는 것처럼 내린다. 이 비는 그칠 것 같지 않네.





나 홀로 방문했던 <시암 쏨분 시푸드>에서 혼자 시켰던 메뉴를 그대로 다시 한번 주문했다. 둘이 먹어도 많아서 남겼는데 그때의 난 참 욕심도 많았다.



어느덧 공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오늘 아침 급하게 밸럭서비스를 찾아 캐리어를 맡겨두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고 출국 심사를 받았다. 이렇게 방콕을 떠나려니 너무 아쉬워.



미라클 라운지 저렴한 버전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 이대로는 너무 아쉬워 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갔다. 쏨분 시푸드에서도 먹었던 땡모반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태국 음식인 쏨땀. 한국 가면 쏨땀이 제일 생각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타이항공을 이용했는데 정말 정말 좋았다. 우리나라 국적기보다 훨씬 넓고 쾌적했다. 어지간한 저가항공도 무난하게 이용해왔는데 타이항공을 타고나니 괜스레 눈만 높아졌다. 거기다 내 앞뒤 옆 좌석이 텅 비어있어서 더 편하게 왔다. 앞으로의 내 모든 비행이 오늘만 같았으면. (그러나 이 이후 이런 행운은 없었다.)



그 여느 때보다 편하게 잠이 들었다 깨보니 건너편 창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아름답던 하늘빛은 인천공항과 가까워질수록 더 밝고 다채로워졌다. 빛나는 해를 보고 있노라니 정말 이 여행이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오늘을 끝으로 나는 전 회사와 완전한 작별을 고하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곳으로 출근한다. 하늘이 나의 시작을 축하해주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안녕, 이구씨엠. 안녕, 방콕.


2018년 7월 30일, 31일

캐논 EOS 6D




여행일기 #두번째 방콕 편 연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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