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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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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Mar 21. 2019

말할 수 없는 비밀

#대만일기 3. 영화 속 그 학교, 그 동네


다음 날 아침. 모두들 조식을 먹었지만 난 조식 대신 잠을 택했다. 대신 어제 까르푸에서 산 아오리 사과 한 알. 각자의 아침을 맞이한 후 체크아웃을 하고 MRT를 타러 갔다.

오늘은 단 한 곳 <단수이>에만 간다. 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단수이가 지역명이므로 오늘도 역시 많이 걷게 될 것 같다. 단수이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의 배경지임과 동시에 주인공이자 감독인 주걸륜의 모교인 <담강중학교>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배를 타고 단수이강을 건너면 대왕 오징어 튀김을 파는 <빠리 八里>도 있다.



단수이까지 가는 빨간 노선을 가장 좋아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끝없는 거리와 푸른 산은 언제 보아도 변함없이 내가 좋아하는 대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노선을 따라 베이터우역까지 가서 단수이까지는 열차로 환승했다.



단수이에 도착했다. 단수이역에서 1번 출구로 나오면 우측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이곳에서 홍26번 버스를 타면 담강중학교에 갈 수 있다. 이 외의 몇 다른 버스도 담강중학교에 간다.

버스에 탑승해서 언제 무슨 역에서 내려야 하는가 갈팡질팡하고 있자 현지인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본인의 차로 담강중학교까지 데려다줄 테니 같이 내리잔다. 그때는 지금처럼 여성을 상대로 한 남성들의 범죄가 전파를 많이 타지 않았었고, 여행이라 들떠서 그리고 우린 넷이고 그는 혼자라는 안일한 생각에 큰 의심 없이 그를 따라 내렸다. 어쩌면 환한 대낮이라 더 안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절대 그를 따라가지 않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는 데려다 주기 전에 본인의 아파트 옥상을 구경시켜줬다. 옥상보다도 옥상에서 보이는 단수이를 구경시켜줬다. 사방이 뻥 뚫려있어 단수이가 한눈에 보였다. 한참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우리에게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알고 보니 그는 일본인으로 우리가 자기 고향 사람인 줄 알고 잘해준 모양이다. 어딜 봐서 우리가 일본인이야. 계속 기분이 좋았는데 그 순간 기분이 상했다. 아무튼 그는 조금 실망한 듯 보였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그의 아파트에서 담강중학교까지 가는 내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다. 그와 그의 부인은 담강중학교 옆에 있는 초등학교의 교사라 했다. 아, 부인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담강중학교 교사였나. 그리고 본인들이 사는 아까 그 아파트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란다. 옥상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좋아 잠자코 들어주었다.





단수이는 내게 청춘이 되었다


그의 차에서 내려 담강중학교로 가는 길.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단수이강이 보인다. 햇살과 바람 그리고 내 눈 앞에 있는 강까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리고 정말 난데없이 언젠가는 대만 그것도 이 단수이에서 꼭 살아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짧게라도 좋으니 기필코 꼭.




담강중학교 초입에는 이렇게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이 아래를 지나갈 때는 꼭 우리가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로맨스나 멜로가 아닌 친구들이 잔뜩 등장하는 싱그러운 청춘 영화! 단수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존재 그 자체로 내게 청춘이 되었다.



12월이라 그런지 학교 중심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색색의 알전구가 걸려있었다. 저 전구 하나가 내 주먹만 했다. 빌딩만 한 크리스마스트리라니. 우리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크리스마스트리라니.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였다.



영화에서 보았던 곳인가. 영화를 보긴 보았으나  「말할 수 없는 비밀」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더 좋아했던 나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사실 이 곳에 들어서는 순간 영화는 필요 없어졌다. 영화에서 보았던 곳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멋진 곳이었다.





정말 운이 좋게 교실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이 책상에서 조금 더 어린 커징텅이 션자이의 등을 볼펜으로 쿡쿡 찔렀을지도 모른다.






페리 타고 빠리


담강중학교에서 나와 옆으로 단수이 강이 보이던 그 골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단수이 강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선착장이 나온다.



자전거가 오가는 이 좁은 길은 내가 단수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곳 중 한 곳. (다른 한 곳은 담강중학교 근처에 있는 나무가 울창한 곳으로 이번 여행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곳이다.) 어느 장소에 반하는데 많은 것은 필요 없다. 그냥 그곳에 발을 들이는 그 찰나의 순간이면 된다.



이 나무 길이 끝나면 단수이의 일몰 명당이라는 스타벅스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쭉 걸으면 페리 선착장이 나온다.



매표소에서 왕복 티켓을 사고 페리 탑승! 빠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배를 타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다른 관광지와 다르게 미리 예약할 수 있는 방법도 없으므로 가서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수다 떨며 기다리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든다.



빠리에 도착하자마자 대왕 오징어 튀김을 먹으러 갔다. 자전거를 타고 빠리를 누빌 수도 있다지만 비행기 시간이 있어 아쉽지만 대왕 오징어 튀김을 제외한 모든 것을 포기했다. 괜찮아, 이것을 핑계 삼아 다음에 또 오면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한 대신 선택한 대왕 오징어 튀김은 그 값어치를 했다. 아 둘이서 하나는 먹었어야 했는데 넷이서 하나를 시켰다니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스펀에서도 먹었지만 느낌 탓인지 이곳 빠리에서 먹은 것이 훨씬 맛나다.



다시 긴 줄을 서서 페리를 타고 단수이로 돌아왔다.





빨간 노선을 타고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온 우리는 바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지막 식사는 소고백화점에 있는 <딘타이펑>에서 딤섬을 먹기로 했다. 사람들이 하도 딘타이펑 노래를 불러서 엄청 기대했는데 그저 그랬다. 그래서 한국에 딘타이펑 매장이 생긴다고 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이런 맛인데? 하고.


MRT를 타고 수신방 펑리수 사러.


저녁을 먹고 난 우리의 마지막 일정은 <수신방>에서 펑리수 사기. 이 여행에서 대만의 유명한 펑리수는 다 맛보고 사 왔다. 그래서 이 이후에는 펑리수를 사기 위해 돌아다니는 여행은 하지 않을 수 있는 건지도 몰라.



수신방은 <송산공항> 근처에 있다. 타이베이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송산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이용하는 타오위안이다. 시내에서 오가는 데는 송산공항이 훨씬 편하지만 나는 늘 타오위안 공항을 이용한다. 티켓 가격이 저렴하고 익숙한 곳으로 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스치며 본 송산공항은 타오위안 공항보다 훨씬 크고 더 공항 같았다.



수신방에서 펑리수만 사서 나왔다. 수신방 펑리수는  펑리수 박스 하나가 딱 맞게 들어가는 작은 에코백도 주었다. 비싼 값을 하는구나.



송산공항 앞에서 국광 버스를 타고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는 길. 짧지만 알차게 그리고 몇 개의 에피소드도 챙기면서 내 첫 해외여행이 끝이 났다. 이후로 많은 여행을 했지만 나는 평생 이때의 대만을 잊지 못할 거야.


2013년 12월 8일

캐논 EOS 550D




여행일기#대만 편 연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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