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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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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Mar 16. 2019

끝나지 않는 하루

#대만일기 2.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스펀>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에 기겁했다. 우리가 저 속으로 들어가야 해. 하지만 후에 갈 <지우펀>에 비하면 스펀은 약과였다. 관광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많지만 특히 '펀'자 돌림인 곳에 더 많은 것 같아.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 모든 사람들이 철길에 모여 천등을 날리고 있었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천등을 보는 순간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You Are the Apple of My Eye의 션자이와 커징텅이 천등을 날리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그곳에 와있다니! 사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천등을 날리던 곳은 핑시선의 핑시역 부근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여행자들에게는 스펀이 더 유명한 듯하다. 하기사 이들 중 그 영화를 보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 몇이나 있으랴. 아무렴 어때, 그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들처럼 천등을 날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충분히 신나는데.


천등을 날리기 전 먼저 스펀을 구경했다. 철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기념품샵에서 엽서를 사고 도장을 찍었다. 가게마다 다양한 도장들을 꽤 많이 구비하고 있어서 도장 찍는 맛이 났다.


천등을 날리기전에 주인 아주머니가 부적을 달아주셨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가게들을 구경한 뒤 드디어 천등을 날리기로 했다. 단색의 천등도 있고, 네 면이 전부 다른 색으로 된 천등도 있고 종류가 다양했는데 이 색마다 의미하는 바가 전부 달랐다. 당연히 네 면이 전부 다른 색인 천등이 더 비싸다. 어차피 우리가 바라는 건 딱 하나, 부자가 되는 것이기에 금전운과 재물운을 뜻하는 황색으로만 이루어진 천등을 골랐다. 넷이서 각자 한 면씩 맡아 소원을 적어 내려갔다. 말투는 달라도 담긴 뜻은 하나.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천등이 높이 날아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제발 우리의 천등이 아무 곳에도 걸리지 않고 가장 높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길.



천등을 날리고 나니 마을 한편에 길게 걸려있는 죽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천등과 마찬가지로 소원을 비는 것인가 보다. 죽통을 사서 걸어두진 않았지만 대신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아무도 몰래 짧게 기도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그 홍등


스펀에서 다시 핑시선을 타고 루이팡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1062번 버스를 타고 <지우펀>으로 향했다. 지우펀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と千尋の神隠し배경지로 유명한 <아메이차주관 阿妹茶酒館>이 있는 곳. 다른 곳은 몰라도 지우펀만은 꼭 가야 한다며 넷 다 기대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홍등으로 가득 찬 지우펀의 사진을 보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지.


버스를 타고 굽이진 산길을 달려 지우펀에 도착했다. 지우펀에 내리니 어느샌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니 우비 파는 곳들이 여럿 있어 그중 한 곳에서 우비를 샀다. 나는  SES의 보라색, A는 H.O.T.의 흰색, D는 젝스키스의 노란색, P는 god의 하늘색.



우비를 입고 지우펀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지우펀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고, 비가 내렸던 것이다. 지우펀의 모든 골목에서 기념품을 비롯한 가지각색의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우비 챙기기가 번거로운 데다 시간도 애매해서 많은 곳을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먹는 것 하나는 놓치지 않았다. 견과류를 안 좋아하는데도 맛있게 먹은 땅콩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넷이 나눠먹었다. 왜 각자 하나씩 사 먹지 않았는지 아직도 의문이네. 이후의 모든 대만 여행에서는 꼭 한 사람당 하나씩 사 먹는다. 지금도 입안을 맴도는 땅콩 아이스크림의 맛. 지금은 스펀이나 대만 다른 관광지에서도 꽤 팔지도 이때만 해도 지우펀, 지우펀에서도 딱 한 곳에서만 팔았다.



이 골목 저 골목 발길 따라 걷다 보니 <아메이차주관>에 도착했다. 지우펀 모든 골목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특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그곳이 바로 홍등 거리, 아메이차주관으로 가는 골목 입구다. 우리는 정말 우연히 계단이 보여 내려간 것뿐이었는데 그 골목 중간에 아메이차주관이 있었다. 운도 좋지! 내 기대만큼 멋스러운 곳은 아니라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우펀 골목 중 가장 오래 진득하니 머물러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우펀에서도 또 길을 잃었었다. 루이팡역에서 지우펀을 오가는 버스번호만 알아둔 채 온 거라 버스정류장 찾기가 꽤 어려웠다. 거기다 로밍도 해가지 않아 인터넷도 되지 않았으니 정말 감만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정류장을 찾는답시고 모든 골목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도중에 막다른 골목에서 일본 남자 무리를 보았는데 그땐 정말 무서웠다. 하필 으슥한 골목에서 마주칠 건 뭐람.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우리도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지도 몰라. 아무튼 헤매다 보니 길이 나오긴 나왔다. 가까스로 버스정류장을 찾아 1062번 버스를 타고 루이팡역으로.





끝나지 않는 하루


루이팡에서 TRA를 타고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MRT로 환승해 <시먼딩 西門町>으로 갔다. 시먼딩은 흔히들 대만의 명동이라고 비유하는데 그만큼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밤늦게까지 환한 곳이다. 오늘 하루가 그토록 고되고 힘들었음에도 시먼딩에 온 이유는 바로 < 아종면선 阿宗麵線>의 곱창 국수를 먹기 위해서! 내가 곱창을 진짜 좋아하는데 이 곱창을 넣은 국수가 있단다. 대만에 오면 먹어야 할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유명세답게 줄이 길었으나 금방금방 줄어든다. 줄을 서고 주문을 하고 (고수 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곱창 국수를 받았다. 한 입 먹자마자 넷 다 잉?! 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맛은 괜찮았지만 '우와 너무 맛있어! 꼭 먹어야 해!'라고 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릇을 싹 비우고 뒤돌아서는 순간부터 입맛 다시게 하는 묘한 맛이었다. 꼭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한 그런 맛.


그러나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만 음식은 단연코 곱창 국수다. 이 여행 이후 문득 곱창 국수가 생각났고 다시 한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정말 이 국수를 먹기 위해 다시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마성의 맛.



시먼딩에 온 다른 이유 하나는 <삼형제 三兄妹>의 망고빙수 때문이다. 다른 동남아는 망고 그 자체로 유명하지만 대만은 망고 자체보다 망고빙수로 유명한 듯했다. 나는 망고를 안 좋아해서 망고 밑에 깔린 빙수만 조금 긁어먹었는데 애들 말로는 엄청 맛있단다. 너네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된 거야.



대만에 오면 그리고 시먼딩에 오면 다들 까르푸에 가서 각종 기념품들을 털어온단다. 우리도 빠질 수 없어 까르푸 쇼핑 대열에 합류했다. 지금은 한국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통 밀크티와 달리 치약 등을 샀다.





이쯤 되면 호텔로 돌아가서 쉬는 게 맞지만 아직 우리는 젊었고 여행은 짧았다. 다시 MRT를 타고 호텔이 있는 중산이 아닌 <젠탄 劍潭>으로 갔다. 젠탄에는 대만에서 가장 큰 야시장 중 하나인 <스린야시장 士林夜市>이 있는데 이곳에서 파는 닭튀김인 지파이가 엄청 맛있다잖아. 야시장이면 밤에 가야 하는데 내일 저녁에는 공항으로 가야 했으므로 오늘이 아니면 갈 수 없었다. 그럼 가야지.

지파이는 그냥 닭튀김이 아니라 엄청 큰 닭튀김이다. 돈가스처럼 크게 위긴 후 샤샤샥 잘라 파파팍 양념을 뿌려준다. 역시 맛있다. 튀김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 튀긴 건 무조건 맛있어. 이 지파이를 먹기 위해선 취두부 냄새를 이겨내야 한다. 야시장 입구에서부터 진동하는 취두부 냄새. 이젠 취두부 냄새쯤은 거뜬하지만 이땐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악취에 계속 코를 막아야만 했다. 먹어본 사람들이 말하길 냄새만 극복하면 맛있다고 했지만 그 냄새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극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스린야시장까지 돌아보니 정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건만 암만 생각해도 덤터기를 쓴 것 같다. 아까 간 길을 또 가고 또 가고. 이래서 말 안 통하는 여행자는 슬프다.


호텔로 돌아와 까르푸에서 산 신라면을 먹기로 했다. 컵라면이 없어 봉지 라면을 사서 뽀글이로 해 먹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물을 붓고 기다리던 중에 자기 몫의 라면을 엎어버린 P. 그거 닦느라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라면은 맛있게 먹었다.


아! 드디어 하루가 끝났다.


2013년 12월 7일

캐논 EOS 5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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