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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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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Mar 15. 2019

생애 첫 해외여행

#대만일기 1. 첫 여행에서 길을 잃다



첫 해외여행
첫 도깨비 여행


2013년,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것도 1박 2일 도깨비 여행으로. 지금 내가 도깨비 여행을 간다 하면 목요일이나 금요일 밤, 갑자기 떠나고 싶어 져서 덜컥 표와 호텔을 예약하고 떠나는 말 그대로의 '도깨비 여행'이었겠지만 저때의 우리는 1박 2일짜리 여행을 10박 11일이라도 되는냥 오래도록 고민하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결정했더랬다. 환전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결국 D의 어머니가 은행 업무를 보실 때 슬쩍 끼워넣기도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공항 내 국광버스 정류장 앞.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싸고 12월 7일 토요일 오전 1시 50분에 인천공항을 떠나 현지 시간 3시 6분에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D의 엄마가 환전해준 돈을 공동경비와 개인경비로 나누었다. 지금이야 어림잡아 어느 정도 환전하면 되겠다 감이 오지만 이때만 해도 환전 하나 하는데도 얼마나 해야 적당할지 몇 날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한 명당 180,000원씩 걷어 반은 공동경비로, 또 반은 개인경비로 쓰기로 했다. 가기 전까지는 너무 조금 가져가는 거 아닌가 했는데 여행의 끝에는 돈이 넘쳐흘렀다. 아무튼 개인경비를 나눠주고, 한국에서 입고 온 두터운 점퍼를 맡기고, 편의점을 찾아 소시지와 컵라면으로 배부터 채웠다.



우리의 첫 여행은 여행박사에서 모든 것을 결제했다. 항공권과 호텔을 결제했더니 타오위안 공항에서 대만 시내를 오가는 '국광 버스 티켓' 왕복 티켓을 주었다. 요즘은 시내를 오가는 공항철도도 생겼지만 이때만 해도 버스뿐이었다. 뭐, 철도가 생긴 이후에도 나는 1819번 국광 버스를 타지만.



버스가 달리는 40여 분간 창문에 바짝 붙어 하염없이 밖을 바라봤다. 서울과 너무나도 다른 도시의 분위기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버스는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기차역과 MRT가 함께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 같은 곳으로 이곳에서 MRT로 갈아타고 중산역으로 갔다. 우리 호텔은 중산역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포르텔 호텔>로 세면대가 화장실 밖에 나와있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여행 이후 대만을 네다섯 번은 더 갔지만 중산역에 호텔을 잡은 적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산역 자체를 이때 이후로 간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호텔에 짐만 맡기고 (심지어 방에 들어가지고 않고 카운터에 맡겼다) 바로 밖으로 나왔다. 길을 나서자마자 펑리수 가게가 보여 홀린 듯 들어갔다. 대만 펑리수 하면 따라오는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신이 났다. 직원도 친절하고 맛도 좋은 데다 포장도 예뻐서 한국까지 고이 잘 챙겨 왔다.




문제의 티켓


대만 여행의 가장 보편적이고 인기 있는 코스는 '예스진지'로 각각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뜻한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알차게 대만을 둘러보아야 했던 우리는 이 중 '스(펀)', '지(우펀)'에 가기로 했다. 스펀과 지우펀은 모두 루이팡역에서 이동할 수 있는데, 스펀은 기차를 타고 지우펀은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기차 시간표를 살펴본 뒤 먼저 스펀에 갔다가 다시 루이팡역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지우펀에 가기로 했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TRA를 타고 루이팡역으로 갔다. 그리고 루이팡역 개찰구로 나가 직원에게 스펀에 가고 싶으니 핑시선 티켓 4장을 달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보고 간 것과 다른 티켓을 받았지만, 핑시선 티켓이 아닐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직원에게 재차 확인했는데 그는 핑시선 티켓이 맞다고 했으니 디자인이 바뀐 거겠지.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대만에서 사고의 중심이 되다


분명 삼십분남짓만 달리면 스펀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나도 방송에서는 스펀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혹시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역에 정차할 때마다 스펀(十分)이란 글자를 찾았으나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여행기 속 핑시선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했지만 우리가 탄 열차는 아주 여유로웠다. 사람이 별로 없어 의아하긴 했지만 '우리의 첫 여행이 아주 운이 좋다!'라고 기뻐했을 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루이팡에서 티켓을 사는 관광객들은 100이면 99는 핑시선 티켓을 살 텐데 우리에게 이상한 티켓을 줄리가 없잖아! 스펀은 외국인이 발음해도 스펀이라고 들리는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본 현지인이 우리에게 어디를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우리 스펀에 가는 중이야."라고 대답했더니 기차를 잘못 탔단다. 그리고 4분 뒤, 우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루오동역 羅東車站>에 내렸다


나중에 찾아보니 루오동역은 나름대로 알려진 야시장이 있는, 알음알음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었는데 이때만 해도 정말 깡촌에 도착한 줄 알았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달려온 루이팡역에서도 한참을 달려서 만난 곳이었고, 루오동까지 오는 내내 창밖으로 논과 밭만 보았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우리의 영어 실력도 만만치 않지만 이곳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영어를 못했다. 이맘때쯤 한창 열을 올려 공부하고 있던 나의 중국어도 실전 앞에선 형편없었다. 말은 안 통하지, 무슨 자신감인지 데이터 로밍도 안 해왔지, 생전 처음 보고 듣는 곳에 말 그대로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이 역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는지 역무원을 비롯해 봉사활동을 하는듯한 중학생들까지 죄 몰려와 우리를 에워쌌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우리는 당장 내일 저녁에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이곳에서 미아가 되는 건가 패닉에 빠졌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영웅처럼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아주머니 한분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의 사정을 듣고 역무원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역무원은 웃으며 "표를 사서 루이팡역으로 돌아가면 된다"라고 했다. 그 정도는 우리도 알지. 하지만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 다시 표를 사서 돌아가라고? 표를 산 후 한자를 몰라 제대로 확인 못하긴 했지만 대신 살 때도 그리고 사고 나서도 직원에게 몇 번이나 확인했었다. "이거 스펀 가는 표 맞죠?" "핑시 원데이 티켓 맞죠?" 직원은 그때마다 맞다고 고개까지 끄덕였는데.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루오동 직원에게 말을 했고 잠시 생각하던 역무원은 그냥 다음 기차를 타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시계를 보니 11시 20분. 정말 배고플 시간이다. 하지만 개찰구안에는 식당이 없고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젠 우리의 말을 전해줄 이도 없는데. 그렇다고 두어 시간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데 이대로 굶고 있을 순 없었다. 역무원에게 다가가 개찰구 밖 식당을 가리키며 "out" 음식을 가리키며 "buy" 다시 개찰구 안을 가리키며 "in"이라 말했더니 용케도 뜻이 통했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나가 도시락 2개와 콜라 한 병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사온 도시락은 형편없는 맛이었다.



다시 루이팡으로


이제 완전히 안정을 되찾아 루오동역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만 보면 오는 길에 본 역들은 모두 자그마했는데 그에 비하면 루오동역은 큰 편에 속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 미아가 되지 않은 거겠지. 역을 보고 있으니 저 멀리서 기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역무원이 우리에게 역무원실 옆에 붙어있는 객실에 타면 도착해서 말을 해주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무원을 비롯한 루오동역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무사히 루이팡에 데려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것처럼 잘해주었다.


돌아가는 기차 안은 올 때보다 더 한산했다. 중간에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돌아오는 듯한 할머니 무리다 타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고요해졌다.


이렇게 된거 이곳에도 내려보고 싶을만큼 아름다웠던 역.


원래는 고양이 마을도 가고 싶었다. 스펀행 핑시선을 타고 달리다 도중에 고양이 마을인 <허우통>에 내려 구경을 한 뒤 다시 핑시선을 타고 스폰에 가려했다. 고양이 마을에 가고 싶어 오늘 일정을 조금 빡빡하게 짰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다니. 또 어찌 생각해보면 일정을 빡빡하게 짜두어서 길을 잃었어도 스펀과 지우펀을 들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돌아왔다. 표를 잘못 준 매표원에게로 가 환불을 받고 다시 스펀행 티켓을 끊었다. 이때는 뭔가 실랑이할 힘도 없을 것 같아 돌아오는 기차에서 짧은 중국어로 "우리는 스펀에 가는 표를 샀어. 너에게도 확인했는데 너는 우리에게 잘못된 표를 주었어. 이 표를 환불하고 다시 스펀에 가는 핑시선 표를 줘."라고 종이에 적어, 말 대신 종이를 건넸다. 그것을 본 매표원은 별말 없이 표를 환불해주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티켓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하지만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인터넷에서 질리도록 본 그 표였다.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루이팡역 밖으로 나왔다. 이따 지우펀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정류장도 살펴보고 소시지도 사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핑시선을 탔다. 오전 10시쯤 타려 했던 것을 오후 2시 17분이 되어서야 탔다. 이제야 천등을 날리러 간다.


2013년 12월 7일

캐논 EOS 5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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