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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중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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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Apr 14. 2019

칭다오 자이언트 판다

#칭다오일기 4. 중국의 놀이공원과 동물원



여덟 시쯤 일어나 창밖을 보니 칭다오는 여전히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우중충한 하루가 되겠구나 싶어 우울해졌다. 호텔이 바다 바로 옆에 있으니 습기가 차서 이런 걸 거라고, 금방 맑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날씨는 하루 종일 우울했다.

여기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더니 어제 내가 맛있게 먹었던 모닝빵도 없었다. 대신 깨가 잔뜩 뿌려진 빵이 있길래 그것의 반을 잘라 굽고 어제처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럴 수가 빵 안이 팥으로 가득했다. 원래 팥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샌드위치에 팥은 조금 아니잖아. 먹던 것을 내려놓고 팥을 긁어낸 뒤 다시 내용물을 대충 주워 담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오렌지주스 대신 따라온 포도주스에선 발 냄새가 났다.





산책부터 놀이기구까지,
칭다오 중산공원


이 모든 우울한 요소들을 물리치고 아홉 시 사십오 분, 어제 가지 못했던 <중산공원>으로 출발! 오늘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보기로 했다. 까르푸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1위안을 내고 316번 버스를 탔다. 한화로 200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버스를 탈 수 있다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중산공원..."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잽싸게 벨을 눌렀다. 버스는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라면 계속 긴장한 상태로 안내 방송을 들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게 또 묘미지만.



<중산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날아오는 커다란 비눗방울에 시선을 빼앗겼다. 비눗방울을 따라가다 보니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아주머니와 그 옆에 잔뜩 쌓여있는 비눗방울 기계가 보였다. 친구가 몹시도 탐냈지만 생각보다 비싸기도 했고 이 공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짐이 될 것임을 알기에 친구를 이끌고 자리를 옮겼다. 중국다운 스케일로 꽤 커다란 비눗방울을 뿜어내 더 지켜보다간 나 역시도 충동구매를 할 것 같아 정말 도망치듯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중산공원은 산책하기 좋은, 말 그대로의 공원과 놀이공원 그리고 동물원까지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포함해 연인, 가족 등 다양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놀이공원에서는 단연코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가 많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무언가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거들떠도 안 봤을 것들이지만 외국에 나왔다는 그 설렘 하나로 우리도 그 근처를 서성이게 만들었다. 이십 년 전 내가 가족들과 공원에 놀러 갔을 때 보던 풍선이며 장난감들이 많았는데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놀이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놀이기구도 몇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재미나 보였던 건 회전 그네.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자주 가지 않아서인가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이 밖에도 귀신의 집, 금붕어 잡기 등이 있었으나 그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아주 작은 소도시의 곧 없어질, 마지막 개장날의 놀이공원 같았다. 그리고 서글프게도 내가 세 번째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놀이공원의 모든 놀이기구는 멈춰있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몰랐지. 2년 뒤 이 놀이기구에는 아무도 타지 않을 것이란 걸.


우리나라의 놀이공원은 어른들도 즐기기 좋은 곳이라면 이곳의 놀이공원은 아이들만을 위한 곳 같았다. 딱히 우리가 타고 즐길만한 놀이기구가 없어 슬슬 걸어 동물원이나 빨리 가자며 산책로로 나왔다.



동물원으로 이동 중에 본 코카콜라! 이 곳 사람들은 정작 펩시콜라를 더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공원 한가운데 있는 매점은 코카콜라 천지였다. 파라솔부터 벤치까지 모두 코카콜라. 하긴 콜라는 누가 뭐래도 코카콜라지!



그리고 코카콜라 맞은편에서 공연을 하던 사람들. 북한 방송에서나 들을법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에 피리 부는 사나이의 아이들처럼 홀린 듯 따라가 보니 하모니카 부대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하모니카를 불고 있을 뿐인데 왜 이리 멋스러운지 한참을 서서 그들의 공연을 보았다. 브라보.





자이언트 판다를 만나다


우리가 중산공원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자이언트 판다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동물인 판다, 그중에서도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자이언트 판다가 이 곳 중산공원에 있단다. 그러고 보니 판다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엄청 기대를 했더랬다.


동물원에 들어서자마자 자이언트 판다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그는 저 멀리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판다를 만나기에 앞서 다른 동물들을 먼저 만났다. 가장 먼저 본건 기니피그와 염소. 수십 마리의 기니피그가 아주 좁은 우리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 우리에 염소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엄청나게 굵은 쇠사슬로 된 목줄이 염소의 목에 걸려있었는데, 그 길이가 아주 짧아 사실상 염소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30cm는 되려나. 이 모습을 보니 내가 더 답답해졌다.



그럼에도 판다는 보고 싶어 부지런히 발을 놀려 자이언트 판다의 우리로 갔다. 그렇게 만난 판다는 아주 게을렀다. 마치 주말의 나처럼 퍼질러 누워서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 여기저기를 박박 긁는다. 그리고 또다시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워있던 판다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갑자기 구르듯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쉴 만큼 쉬었다는 건가!



판다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럼 그렇지, 사육사가 사과로 판다를 유인하고 있었다. 억지로 판다를 움직이게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판다는 하루 종일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느릿느릿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몇 번을 쉬며 가더니만 사과는 나름 재빠르게 낚아챘다. 그런데 또 덩치와는 다르게 사과 한 알을 엄청 느리게 먹었다. 판다가 사과를 먹는 내내 사육사가 판다를 내려다보며 다음 사과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글쎄, 과연 판다가 오늘 안에 저 사과를 다 먹을 수 있기는 할까.


또 다른 나의 무지


판다를 보고 출구로 나가는 길에 호랑이와 사자가 있다기에 보러 갔다. 그리고 또다시 속이 답답해졌다. 아주 좁은 우리 안에 두 마리의 사자가 그리고 바로 옆 우리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사자는 아프리카의 그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녔고, 호랑이 역시 넓은 산을 마치 제 집처럼 돌아다녔는데 동물원에서 본 이들은 축 늘어져있거나 그저 우리 안을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동물원 초입에서 본 기니피그와 염소가 생각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물원을 가볍게 생각했다. 누군가가 말하는 '이것도 경험이지. 동물원이 있어야 아이들이 동물들을 실제로 보고 경험하지. 직접 보는 게 중요해.'라는 말을 듣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호랑이를 실제로 보고, 사자를 실제로 보고, 내가 좋아하는 기린을 그리고 이 자이언트 판다를 실제로 보는 게 무슨 경험이 되는 걸까. 아이들에게 동물들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걸까. 아이들이 우리 속 동물들을 당연시 여기게 되는 게 당연한 걸까. 동물원이 아닌, 갑갑한 우리가 아닌, 태초에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루 행동반경이 20킬로미터인 호랑이 두 마리는 최소 400제곱킬로미터 의 서식 면적을 필요로 하며 야생 북극곰은 100킬로미터 이상 헤엄을 칠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동물들이 끽해야 우리 집보다 조금 넓은 정도의 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 안을 하염없이 빙빙 도는 코끼리,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손을 물어뜯는 곰,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북극곰. 심지어 센트럴파크의 북극곰은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몇 번의 동물원을 가고 아쿠아리움을 갔다. 이 이후 더 이상의 동물원은 가지 않았지만 나는 또 아쿠아리움에 간다.

사자의 하울링이 구슬프게 느껴졌다.





출구에서 군밤과 군고구마를 팔길래 군고구마 하나를 샀다. 노릇노릇 맛있어 보이길래 엄청 기대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 맛없어라! 누가 중국 음식 진짜 맛있다고 했는데 나는 중국에 와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없다.



중산공원에서 다음 목적지인 <신호산공원>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출구로 나오니 버스를 타기도, 택시를 잡기도 애매해서 별 선택지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걸어가는데 크게 무리가 없는 거리였다는 것. 거기다 지도 어플이 어찌나 자세하게 실시간 위치를 잡아주는데 길을 헤매지도 않았다. 되려 무서울 정도로 나의 위치를 쏙쏙 잡아냈지.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한 대학교의 캠퍼스를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빨간 지붕이 한눈에 보이는 곳
두 번째, 신호산 공원


칭다오의 빨간 지붕, 구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이 두 곳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첫날 갔던 <소어산 공원>이고 다른 한 곳은 오늘 간 <신호산 공원>이다. 신호상 공원은 조금 더 본격적인 곳으로 낮은 산 꼭대기 위에 전망대까지 있다. 그래서 큰 기대를 안고 갔는데 날이 너무나도 흐려 아쉽게도 멋진 뷰를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낮은 산 중턱에 올라 처음 본 뷰포인트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짧은 등산을 마치고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는 바닥이 회전목마처럼 회전을 하고 그 위에 의자가 있어 앉아서 밖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바닥을 아예 빙빙 돌려버리는 게 참으로 중국다운 발상 같아 웃음이 나왔다.

의자에 앉아 칭다오 구시가지를 바라보는데 흐린 날씨임에도 참 좋았다. 소어산 공원보다 더 자세하게 구시가지의 구석구석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날만 조금 더 좋았다면 이곳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전망대에서 내려와 <mr.mong>이라는 아주 작은 한식당에 갔다. 아까 중산공원에서 신호산공원으로 걸어오는 길에 본, 신호산공원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식당으로 한국인이 한국 음식을 해준단다. 맛있는 메뉴가 무엇이냐 하니 떡볶이와 볶음밥을 추천하길래 그대로 주문했다. 볶음밥은 기본 재료에 소고기와 사과가 들어있었는데 먹을수록 맛있었다. 떡볶이는 친구는 맛있게 먹었으나 내 입맛에는 조금 밍밍했다. 그래도 입맛에 별로 맞지 않는 음식들만 먹다 한국 음식을 먹으니 마냥 좋았다.


2016년 11월 19일

캐논 EOS 550D + 필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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