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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중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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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Apr 02. 2019

을씨년스러운 오늘, 그래도 여행 중

#칭다오일기 3. 안개 낀 칭다오를 거닐다



호텔의 묘미, 통유리. 통유리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어나고 싶어 일부러 암막 커튼을 걷어두고 잤다. 그러나 알람이 울린 지 한참이 지났어도 빛이 들지 않아 살짝 눈을 떠보니 창문 밖으로 햇살 대신 안개가 자욱했다. 여기에 쏟아지는 비까지. 따스한 아침은 포기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더 자자.



거의 모든 여행에서 그랬든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파글로리 레지던스>의 조식 메뉴는 다양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막상 먹으려 하니 꽤 다양하게 느껴졌다. 빵, 소시지, 햄, 과일 여기에 국수 등. 나는 조식만은 모험 없이 무난한 걸 찾는 편이라 아메리칸 스타일로 결정했다. 식빵과 모닝빵을 굽고 두 종류의 슬라이스 햄을 모두 담았다. 와인 소스를 뿌린 양상추와 방울토마토, 오렌지주스와 달걀 프라이 그리고 시리얼을 넣은 요거트까지. 담고 나니 그냥 샌드위치 재료였다. 모닝빵의 반을 가르고 한쪽엔 버터를 그리고 다른 한쪽엔 쨈을 발랐다. 여기에 슬라이스 햄과 양상추를 넣으니 꽤 맛있다. 두어 개 더 만들어먹고 식사 종료.





날씨가 안 좋아서 무력해졌다. 모든 일정을 느긋하게 다시 잡았다. 침대에 들러붙어 한참을 더 자다 두시쯤 길을 나섰다. 다행히 우리가 나왔을 때는 비가 그친 상태였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내린 비에, 바로 옆이 바다라 공기가 축축했다. <54 광장>도 내가 서있는 광장도 모두 을씨년스러웠다.



금강산도 식후경. 더군다나 오늘은 금강산도 없으니 무조건 배를 가득 채워둬야 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진취덕> 옆에 있는 <서브웨이>에 들렀다. 여행지에서 서브웨이라니. 여행지에서의 맥도널드처럼 나에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그냥 갔다.

친구와 각자 반개씩 시키고 멀뚱멀뚱 서있는데 직원이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건다. 중요한 말인가 싶어 영어로 무슨 말인지 물어보았는데, 영어를 못하는지 중국어로 빠르게 대답하던 그. 그렇게 그는 그대로, 우린 우리대로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해댔다. 그러고 있으니 옆에 있던 다른 한국인이 통역을 해준다. 지금 1+1 행사 중이란다. 우리가 반개씩 시켰으면 결과적으로는 각각 하나씩 나온다는 이야기. 각자 하나씩 먹기에는 양이 많아 내가 내 메뉴를 포기하고 친구의 메뉴로 통일시켜 하나를 취소했다. 친절한 한국인 덕분에,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계속 우리에게 1+1을 어필하던 직원 덕분에 적당히 잘 먹었다. (평소 한국에서도 서브웨이를 잘 먹는 친구의 말로는 한국의 것보다 더 건강한 맛이라고 했다. 하긴 채소가 많긴 하더라만.)





날씨가 안 좋아도
여전히 우린 여행 중


<중산공원>에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조금 멀지만 어제처럼 걸어갈 수도 있었으나 날이 너무 꿉꿉했다. 가만 앉아있으니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노래가 너무 좋아 기사님에게 노래 제목을 알고 싶다며 핸드폰의 중국어 자판을 켜서 주었더니 '你把我灌醉'라고 적어주었다. 바로 검색해보았는데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국 가면 자세히 찾아봐야지.



기사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밖을 보았는데 <소어산 공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중산공원은 분명 소어산 공원과 우리 호텔 사이에 있는데? 기사님에게 우리 지금 중산공원에 가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중산루>로 가고 있단다. 곱씹어보니 내가 중산공원이 아닌 중산루라고 말을 한 듯하다. 어쩌지. 다급히 찾아보니 중산루 근처에 <천주교당>과 <피차오위엔 꼬치거리>가 있어 그대로 가기로 했다. 일정을 바꾸지 뭐.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우리가 어제 본 '중국의 유럽'이라는 그 빨간 지붕 마을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했다. 중국어 가득한 간판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유럽으로 착각했을지도 몰라. 이 착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으스스한 골목이 나타났지만.



중산루에서 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천주교당이 보였다. 이곳도 역시 안개가 자욱했다. 이런 날씨면 목적지를 잘못 말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공원은 조금 더 맑은 날 가고 싶어.


사회주의 느낌이 물씬 나던 아저씨.



칭다오에서 그림을 사다


천주교당을 보러 오긴 했으나 나도 친구도 딱히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천주교당의 담과 이어져있는 유럽풍의 건물 안 카페 <愛爾1899>로 들어갔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꽤 컸음에도 아무도 나와보지 않은 데다 카운터도 비었길래 문을 닫은 건가 했는데, 우리의 말소리를 들은 건지 어디선가 한 젊은이가 나왔다. 핸드폰을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을 보니 거기에 푹 빠져있었구먼. 일단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받았다. 생각보다 음료수는 비싸고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가 마실 만한 것도 별로 없었지만 밖으로 나가긴 싫어 대충 주문했다.



음료가 나올 동안 카페를 둘러봤는데 카페 곳곳에 좋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거기다 한쪽에는 이젤과 물감까지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 카페 안에서 작업을 하는 듯했다. 그림의 화풍이 다양한 것을 보면 작업자가 한 명은 아닌듯한데, 그렇다면 이곳이 예술가의 카페인가! 


그림을 보고 있자니 갖고 싶은 그림이 생겼는데, 핫초코 한 잔이 30위안인 것을 보면 그림은 더 값이 나갈 것 같아 지레 겁먹고 포기했다. 그래도 내가 계속 탐을 내니 친구가 번역기를 통해 직원에게 혹시 작품 판매도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직원이 알아듣지를 못하길래 내가 짧은 중국어로  "我要买 (나 이거 사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구매 가능하단다. 심지어 가격도 100위안으로 비싸지 않았다! 신이 나서 바로 구매했다. 내가 고른 그림은 중국의 <우전 乌镇>을 그린 그림이란다. 이 그림과 더불어 다른 그림도 눈여겨보았는데 그 작품도 같은 작가의 그림으로 역시 같은 곳을 그렸다며 내게 그림 볼 줄 안다고 칭찬했다. 그럼, 나 미대 나온 사람이야.

친구도 한 작품에 꽂혔는데 그 작품은 내 것의 열 배는 넘었다. 퀄리티 자체가 다르긴 했어. 직원과 이야기를 하니 원래는 1,200위안이지만 600위안에 주겠단다. 그리고 현금이 없으면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본인의 작품도 아닌데 저렇게 반값까지 내리는 건 말이 안 되니 원래가 600위안이 아니었다 싶다만. 직원은 "가지고 싶으면 지금 사세요. 작가의 작품이에요. 이 그림은 꼭 가격이 오를 거예요."라며 영업을 했다. 친구가 구매하겠다고 하자 이 작품을 그렸다는 작가 '류진 刘振'이 나타났다. 그림 한편에 사인도 하고 그림의 배경도 설명해주었다. 몽골에서  울프라는 영화를 찍을 때를 그렸단다. 작가의 카드기가 말썽이라 결국 가진 현금을 모두 털어 구매해야 했지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낭만적이고 또 멋있잖아.



음료수는 맛없었다. 그래도 칭다오에 온다면 또 올 거야. (그리고 정말 칭다오에 올 때마다 방문하게 된다.)





카페에서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나와 <춘화루>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꿔바로우와 만두, 칭다오를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직원들이 우르르 나타나 우리를 보고 사라지고 나타다길 반복했다. 외국인이라 그런가? 하지만 이미 이곳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곳인걸. 이해가 안가네. 

꿔바로우는 우리나라의 탕수육과 거의 비슷했지만 조금 더 쫄깃쫄깃했다. 새우만두는 피가 너무 두꺼워서 별로였다. 그리고 일단 맥주가 시원하지 않아 너무나도 아쉬웠다.



만두를 많으려 했었으나 맛이 없어 적당히 먹고 <피차오위엔 꼬치거리>로 넘어갔다. 좁은 골목 하나가 전부 꼬치를 파는 곳으로 가득했다. 일반적인 꼬치는 물론이거니와 바퀴벌레, 개구리, 도마뱀 꼬치도 있었다. 현지의 음식은 한번 맛보자는 주의지만 그쪽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큰 오징어 꼬치 하나만 샀다. 이것도 맛없었다.





꼬치를 손에 들고 야경을 보러 <잔교>로! 택시나 버스로 이동해도 되지만 걸어가는 것도 무리 없다. 우린 걷는 게 좋아 걸어서 이동했다. 그렇게 본 잔교는 생각보다 좋았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게 훨씬 좋았다. 그래서 다리 위로 잔교를 향해 갔다가 금방 되돌아왔다. 칭다오의 구시가지도 그렇고 잔교도 그렇고 이렇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봐야 더 좋아 보이네.



택시를 타고 <54 광장>으로 돌아왔다. 칭다오의 야경 하면 이곳도 빼놓을 수 없기에 호텔에 들어가기 전 들러보았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오늘의 음식은 대체적으로 다 실패다.


2016년 11월 18일

캐논 EOS 550D + 필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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