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클라이밍장에서 열린 유럽의 문 (1)

로컬에서 이방인으로

by 에스카

한국에서, 내가 로컬이던 시절

스위스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기대반 걱정반이었던 것은 ‘친구 사귀기’였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영어회화수업, 외국 교환학생을 도와주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비록 내 영어가 유창하진 않았지만, 외국친구들과 밥 먹기, 놀러 가기, 술 마시기, 한국어 공부 도와주기 등 소소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함께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대학원에서는 연구실의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지냈다. 내 학창 시절엔, 실제 영어로 소통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영어로 말하고, 듣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덕분에 내 생각의 특과 저변을 넓히고,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외국인들과 교류가 쉽지 않은 점들도 있었다. 그들의 종교적인 이유 (돼지고기, 소고기 못 먹음), 개인적인 선호(채식주의자 등)를 고려하다 보니, 같이 갈 수 있는 식당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내 영어가 서툴다 보니 소통의 오류도 많았고, 문화적 차이로 그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도 있었다. 가끔 의견 공유나 선택의 범위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나도 결국은 한국 사람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런 경험들은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지루했던 삶의 작은 활력소였다. 그래서일까? 스위스에서의 삶이 기대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처음 스위스에 발을 딛다

스위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다양한 인종들의 피부색, 생김새, 옷차림, 낯선 말소리, 냄새들이 뒤섞여 있었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순간이었다.

칸톤에 도착했을 땐, 정류장에 쓰여있는 영어 외에는, 어느 것 하나 읽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와 독일어로 적혀 있는 스크린 속 정보들을 읽을 수 없었다.

거리도 매우 낯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 문과 천장의 높이, 유럽식 창문, 화장실의 변기 높이, 개수대의 높이, 중세 건물들과 현대식 건물들의 공존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에 나 혼자 툭 떨어진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제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스위스에서, 내가 이방일 때

스위스 대학에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순수 혈통’의 스위스인은 거의 만나기 어려웠다. 스위스 국적을 가진 이들조차 뿌리가 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스라엘, 체코, 싱가포르, 중국, 타지키스탄, 터키 등, 국적과 배경은 실로 다양했다.


당황스러웠던 건, 내가 있던 지역의 공용어가 프랑스어와 독일어였다는 점이다. 영어로 소통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말을 걸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프랑스어권은 영어 사용을 꺼렸고, 독일어권은 영어를 하긴 했지만, 아시아인에 작은 체구의 내가 쉽게 어울리기는 어려웠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 아시아인과 교류하는 경험 자체가 흔치 않았다. 마치 한국에서 내 부모나 친구들이 외국인과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과 비슷했다. 한국에서는 내가 ‘주류’였고 외국인 친구들이 이방인이었다면, 스위스에서는 정반대로 내가 이방인이자 비주류가 된 셈이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영어가 공용어였기에 조교 업무, 연구 실험, 코웤, 학회 참석 등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영어 사용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아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나의 왜소한 체격과 아시안이기에 어려 보이는 외모는 그들과 정서적 교감을 하는데 조금 걸림돌이 되기는 했다. 키가 180, 190 cm에 육박하는 친구들이 첫 만남에 무례함과 은근한 무시(?)를 보이기도 했고, 단순히 자신들의 인생에서 아시아인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마음을 열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작지만 보이지 않는 삶의 불편함들을 나는 나만의 스타일로 풀어가긴 했지만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또, 학위를 위해 유럽에 온 만큼 랩 세팅에 집중해야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 건물 안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스위스 로컬 친구를 사귀기 위한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독자님 중에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실까요? 외국에서 외국어 때문에 겪었던 고충은 없으셨나요? 그리고 나만의 극복방법은 무엇이었나요? 댓글로 한번 공유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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