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클라이밍장에서 열린 유럽의 문 (2)

암장에서 만난 작은 연결들

by 에스카

홀드 위에서 찾은 쉼표

퇴근 후의 클라이밍은 내게 특별했다. 하루 종일 연구실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고 다시 클라이밍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니라, 피로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스위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작은 안식처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아

볼더링 중급 수준쯤 되었던 나는 가끔 다른 이들이 어려워하는 루트를 성공하곤 했다 (종종 키작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문제들이 있다). 그럴 땐 티 내지 않고 내려왔다가, 곤란해하는 사람에게 슬쩍 팁을 건네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루트를 푸는 동작을 보여주며 작은 교감을 쌓아갔다. 렇게 친해지면서 서로 “알레!(Allez!)”를 외치며 응원하던 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물론 외로울 때도 있었다. 내가 루트를 오르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 버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 A가 내게 말했다.

“Hey,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꼭 배워야 해. 여긴 여러 언어가 섞여 있지만, 영어는 잘 통하지 않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K-Pop과 K-Drama 덕분에 한국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일상 속 대화는 또 다른 문제였다. 랩메이트 P(오스트리아인)와 함께 클라이밍을 가면, 사람들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나를 소개해 주었고, 덕분에 나도 조금씩 그들 속으로 스며들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스위스 클라이밍장은 내 실력과 마음가짐에도 변화를 주었다. 체격이 큰 유럽인들은 먼 홀드를 손쉽게 넘겼지만, 나는 점프(다이노)로 넘어가야 했다. 높이 또한 한국의 암장보다 훨씬 커서 높이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한국에 휴가를 와서 클라이밍장에 가면, 스위스에서 단련된 덕분에 리치 문제로 힘들어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클라이밍은 내게 일상의 쉼표였다. 고된 연구 일상 속에서도 벽을 오르면 잠시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쌓여, 낯선 스위스 생활에 조금씩 뿌리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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