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과 좌절감을 이겨내게 해준 클라이밍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클라이밍은 내 삶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가며, 연구실에서 잡일과 수업, 실험을 반복하다 보니 운동이라곤 달리기와 팔굽혀펴기가 전부였다. 자연스레 하루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내며 인간관계도 좁아졌다. 게다가 연구실 동료들은 다들 뛰어나 보여, 학부 때처럼 대충하다가는 졸업조차 힘들 것 같았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자 서서히 우울감이 몰려왔다. 낯선 스케줄, 긴 실험 시간, 새로운 전공 공부, 좁아진 인간관계가 차례로 나를 짓눌렀다.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점점 무기력해졌다. 특히 생각지도 못했던 연구 분야에 뛰어든 탓에, 부족한 전공지식과 실험 경험, 거의 영어로만 이루어진 연구실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실험 결과마저 동료들보다 잘 나오지 않으니 자신감을 잃고 생기마저 사라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심리상담센터의 박사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내 고민을 묵묵히 들어주신 박사님은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시며 몇 가지 조언을 건네주셨다. 연구도 중요하지만, 목적 없이 그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것이 취미든, 운동이든, 게임이든 상관없다고 하셨다. 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야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고, 그래야 긴 대학원 생활도 끝까지 잘 버텨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 맞다. 내가 좋아하던건 클라이밍이었지?!’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날 밤, 퇴근 후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시 클라이밍 암장을 찾았다. 몇달만에 다시 뵌 사모님과 사람들에게 멋적은 인사를 건넸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홀드를 잡았다. 내 마음속에서 순수한 즐거움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누구에게 말은 못했지만, 벅착 감동과 감사함에 그 날 부터 다시 암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 주말에 학교에 남아있다면 주말에도 한번. 벽을 타고 있으면 그 날의 스트레스, 우울감 등을 잊을 수 있었다. 전완근이 펌핑되고, 땀이 나면서 눈에 초점이 맞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정리는 안될지 언정, 정신과 마음은 또렷해 졌다. 운동을 한 다음 날이면 몸은 피로했지만, 마음과 정신은 정말 한결같이 가벼웠다. 또 클라이밍 중간중간 연구 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내 상태를 환기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연구 후 클라이밍 하는 루틴이 내 대학원 생활에 잡히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답답하거나 머리가 아플 때면 혼자 클라이밍을 한다.
클라이밍 동아리에 대해 몇번 사모님께서 말씀하셨다.
“너 다니는 학교에 클라이밍 동아리가 있어. 주중에 와서 운동도 곧 잘 하고들 하는데 모르니?”
나는 속으로 같이하면 좋겠지만, 대학교 때 처럼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활동하기에는 사실 부담스러웠다. 어쨋든 학위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자연스레 A군을 알게 되었다. 평소처럼 암장을 갔던 날, 한 문제에서 계속 똑같은 구간에서 난 떨어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조용히 등반 팁을 알려줬다. A군이었다. 이 친구의 조언대로 운동해보니 크럭스 구간을 넘어갈 수 있었다. 이게 인연이 되었다. 그 후 종종 시간대가 맞아 운동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학교 내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A군이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도 모임에 참여해도 되냐고 물었고, 괜찮을 거라며 카카오톡을 공유해 주었다. 이렇게 나도 자연스레 클라이밍 동아리 사람들과 운동을 하게 되었다.
동아리 활동은 확실히 내 대학원 생활에서 멘탈관리에 도움이 되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여, 밤 12시까지 함께 암장에서 클라이밍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배가 고프면 치맥을 하거나 야식을 먹곤 했다. 종종 낮에 시간이 되는 친구들끼리 점심도 같이 먹었다. 나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게 되었고, 연구와 분리된 또 하나의 삶이 생겼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무엇보다 이해관계 없이 알게된 친구,동생들이 좋았다.
클라이밍 활동을 통해 웃음을 되찾았다. 함께 운동하며, 땀을 흘리며, 주변 지인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클라이밍 입문을 도와주기도 하며 대학원 생활을 잘 이어나갈 수 있었다.
여러분도 기분이 좋아지는 본인만의 취미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