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 동아리는 어느새 내 일상 속 익숙한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저녁시간, 내가 주로 가던 암장에서 함께했다. 나는 그냥 함께 어울려 벽을 타는 게 좋았다. 종종 실수로 몸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에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저 웃고 떠들며 벽에 매달리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스포츠 콤플렉스 내 작은 클라이밍 벽이 생겼다. 회장님께서 직접 루트 세팅을 도와주셨고, 그곳에서 지구력 연습과 빌레이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곳에서도 모임을 진행했고, 나도 가끔 참여해 다른 부원들의 등반을 도와주곤 했다. 가끔 외국인 교환학생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영어로 클라이밍을 소개해볼 좋은 찬스라고 생각해서, 자원해서 외국학생들과 클라이밍을 같이 했다. 설명 중간중간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나름 재밌었다.
어느 주말에는 외부에 설치된 인공암벽장으로 향했다. 높이가 11m에 해당하는 리드 클라이밍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클라이밍장에 도착에 벽을 바라보니, 간담이 서늘했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이 들었다. 저 위에 올라가면 무슨 느낌일까? 우리는 하네스 착용법, 빌레이법 같은 기본 안전 교육을 미리 마친 상태였다. 자, 이제 등반이다. 나는 우선 낮은 단계의 루트 등반을 시작했다.
평소 지구력 벽을 자주 탔기에 위로 올라가는 데는 생각보다 큰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10미터쯤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니 간담이 서늘했다. 와.. 높이 올라왔다..
클라이밍 활동을 ‘상담활동’의 일환으로 적용해 본 적도 있다. 대학원 생활 중, 나는 학과에서 학생들의 학업 계획을 도와주고, 애로사항을 수집하는 상담학생 역할을 했었다. 나처럼 대학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특별한 전문성이 있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힘든 학생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를 더 늘리려는 학교의 배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고 바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카페에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자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나도 때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어색함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같이 클라이밍을 해보기로 했다. 클라이밍 기초 루트를 한두 번 같이 하다 보면서 자연스레 어색함도 좀 줄어들고, 땀을 한번 흘리고 쉬는 시간에 도란도란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말문이 트였다. 나름 효과적이었다. 이런 경험을 학내 소식지에 소개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저 실내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대학원 생활로 고립감과 외로움이 컸었는데, 클라이밍을 하며 소속감이 생겼고, 연구 외적으로 지인들이 생기며 한층 나 자신이 밝아졌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남을 돕는 일에도 조금은 보탬이 되었다는 점이 뿌듯했다.
이렇게 클라이밍을 즐기며 대학원 생활을 잘 보내던 중, 예상치 못한 소식이 찾아왔다. 교수님께서 스위스로 랩을 옮기신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나에게도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함께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많이 아쉽기도 했다. 동아리 부원들을 알게 되어 나름 대학원 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이별이라니. 스위스로 떠나기 전, 부원들이 조촐한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고마웠고 즐거운 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스위스로 떠나게 되었다.
클라이밍을 하며 대학원 생활을 잘 헤쳐나가던 중, 급작스레 스위스로 떠나게 되었다. 기대반 걱정반, 인생의 기로에서 큰 결심이었다. 마음 한편엔, 유럽에서 클라이밍을 할 수 있으니 버틸 수 있겠지..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