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머무르게 된 도시는 프랑스어로 프리부르 (Fribourg), 독일어로는 프라이부르크 (Freiburg)라고 불렸다. 공용어가 프랑스어/독일어어였다. ‘자유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은 종교와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한국인들에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가 더 친숙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 역사를 미뤄 짐작하건대, 자유를 갈망했던 흔적 아닐까?)
스위스 도착 후, 집과 연구실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국에 이은 두번째 랩 셋팅은 만만치않았다. 말도 통하지도 않고, 모든 시스템을 처음부터 세우고, 다시 교육받는 다는게 쉽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랩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되고 하루 루틴이 자리 잡히자, 프리부르에 있는 클라이밍장을 찾아 가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사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이 도시에 클라이밍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내가 사는 도시에 클라이밍장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처음인데, 유럽에서 클라이밍이라니! 가슴이 설렜다. 어느 평화로운 주말, 나는 버스를 타고 프리부르 외곽에 위치한 암장을 찾아나섰다. 암장 이름은 Gimper. 프랑스어로 ‘기어오르다'는 뜻이라고 했다.
버스 밖 풍경은 점차 변해 갔다. 프리부르의 고즈넉한 시내를 지나 농지와 정체모를 공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글맵을 들여다보며 내리는 정류장을 확인했다. 공장지대, 철문들, 무채색 창고들. 그 가운데 ‘Gimper’라는 간판이 조용히 서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도심의 높은 임대료 때문에 암장을 외곽에 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드디어 클라이밍장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규모에 압도되었다. 내부는 몇백 평은 되어 보였다. 나는 2층 입구에 서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일랜드 형태의 볼더링장이 중앙에 있었고, 주위를 족히 10미터는 돼 보이는 리드 클라이밍 벽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안에는 전부 외국인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외국인이다). 베른에 가깝긴 하지만, 스위스 소도시라는 특성상, 이 암장을 찾은 한국인은 아마 내가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돌이켜 보면, 실제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은 딱 두명 밖에 없었고, 그 마저도 신학을 공부하러 온 분들이었다.
요즘은 한국에도 다양한 형태의 클라이밍장이 있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 규모와 시설을 갖춘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클라이밍장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인파가 벽을 타고 있었다. 문보드, 트레이닝 존, 휴게공간 등 나는 이곳 저곳을 눈으로 담았다.
‘유럽인들은 오래전부터 클라이밍을 즐겼다더니, 정말이구나.’
혼자 감탄하고 있던 중,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왔다. ‘Excusez-moi’ 나는 그녀에게 영어밖에 못 한다고 말하자, 웃으며 영어로 대답해줬다.
“클라이밍하러 왔니? 처음이지? 내가 도와줄게.”
그녀는 친절한 미소와 함께 이용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스위스 물가를 감안하면 비싼 가격이었지만, 다행히 학생증이 있으면 할인 혜택이 있었다. 클라이밍에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할인받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옷을 갈아입고 암장을 거닐었다. 정말 한국인은 아니, 아시아인은 나혼자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클라이밍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에 내가 있다니, 뭔가 어색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는 아일랜드 볼더링 벽으로 다가갔다. 루트 구성은 한국에 비해 투박했다. 무엇보다 홀드 간 거리가 매우 길었다. 아마도 평균 신장이 큰 유럽인의 신체에 맞춰 설계된 듯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180cm 이상은 되어 보였다. 손가락도, 몸도 나보다 굵고 강해 보였다.
나는 비록 왜소한 체격이지만, 클라이밍을 꽤 오래 해왔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당시 나는 지구력 중심의 리드 클라이밍을 즐겼고, 다이나믹한 무브가 많은 볼더링은 낯설었다.
여기서는 V-시스템이 아닌 B-시스템으로 난이도를 구분하고 있었고, 우선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루트부터 시도했다. 루트는 대체로 거칠었고, 볼더링치고 벽이 높았다. 홀드 간 간격도 멀어, 자꾸만 의도치 않게 점프하게 되었다. 반면 내 옆에서 같은 루트를 타는 사람은 팔다리만 뻗으면 홀드에 쉽게 닿았다. 나는 눈에서 땀이 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흑.
볼더링을 하며 옆 리드 클라이밍 벽도 구경했다. 놀랍게도 아주 어린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와서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었다. 내심 ‘강하게 아이를 키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처럼 선수나 영재교육을 위해 오는 게 아니라, 가족 단위로 운동 삼아 오는 분위기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내게는 흐믓한 풍경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실력이 좋았다. 5, 6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벽을 타며 꺄르르 웃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탄이 나왔다. 스위스에는 알프스가 있어서일까?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클라이밍장에서 알게된 스위스인 친구
“이거 까다롭지 (Isn’t it tricky)? 저 홀드에 힐훅(Heel-Hook)을 걸어보는 건 어때 ?”
“ 오, 힐훅이라.. 그..그래. 한번 시도해 볼게!”
내 근처에서 클라이밍을 하던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20대 초반 혹은 10대 후반이려나? 아직 유럽이들의 나이와 국적을 유추하는 것은 어려웠다. 홀드도 깊고 쉬워보이는 볼더링 문제에서 나는 혼자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루트 내 어려운 부분(크럭스)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도해봤다. 이 사람 말대로 힐훅을 걸으니, 상체에 힘이 덜 들어가고 결국 루트를 깰 수 있었다.
“나는 프리부르에 사는 B야.’’ 이 친구는 근방 동네사람이었고, 이 후 종종 만나서 운동을 함께 했다. 랩 동료 외에 알게된 첫 스위스인이라 나는 뭔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B와 몇번의 클라이밍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나중에는 이 친구의 친구들까지 함께 모여 운동을 했다. 어느 날은 운동 후 프리부르에서 유명한 퐁듀 식당(이자 카페)에 가서, 화이트 와인과 퐁듀를 함께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살면서 스위스에서 친구를 사귀고 와인을 함께 마실 줄이야!’’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을 겪으니 재밌었다.
(당시 처음 Grimper를 방문할 때,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편집은 형편없다. 주소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