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 화초 콤플렉스
여행에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어느 순간 스스로가 거대한 유리 온실 속 화초처럼 여겨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 수두룩했다. 그 무리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돋보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대학에 와서도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그럴듯한 스펙을 적기 위해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슷한 모양새로 재배되는 온실 속 화초였다. 너무 거대해서 세상이라 착각했을 뿐. 그렇다면 과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지지대가 없었다면 과연 이룰 수 있는 것들이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주어진 환경과 경제적 층위가 다름으로 인해 누군가는 원치 않은 박탈감을 주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 일이 싫었다. 모든 게 돈 때문인 것 같아서 돈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돈 없이 행복할 수는 없을까 궁금해서 자급자족에 끌렸다.
그 후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인 삶의 방식이 아닌 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꿈꾸기 시작했다. 꿈꾸는 삶의 공간과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2년 동안 한국을 비롯한 인도, 유럽 등지의 농촌과 대안공동체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 끝에 촌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도시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선택지로서 말이다.
일을 하며 여행한다는 것은
여행자만 얻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지의 사람들도 얻어가는 것이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돈으로 시작되는 상인과 손님보다는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싶었다. 상품을 사는 몇 분의 시간을 넘어 어쩌면 함께 지내보고 싶었다. 그런 방법을 찾다 보니 떠오른 것이 당신들의 일을 돕는 것이었다.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거들고 그로 인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었다. 아침에는 언제 일어나는지, 식사로는 무엇을 먹는지, 주변에는 어떤 이웃들이 사는지,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요즘의 고민은 무엇인지, 그런 시시콜콜한 일상들에 폭 파묻히며 다녔다.
그러다 보면 찰나로는 알 수 없었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웃음 속에도 울음이 있었고 울음 속에도 웃음이 있었다. 감췄던 슬픔과 갈등을 알게 될 때면 어쩔 줄 몰라하다가도 미처 몰랐던 빛나는 부분을 발견할 때면 감동했다. 일을 함께한다는 것은 단지 상대방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삶의 형태와 방향을 알게 되는 일이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돈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혐오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돈이 가진 파괴력을 알고, 내가 지금 쓰는 돈, 혹은 얻은 돈이 나의 주변에 끼칠 영향을 생각해 보고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줄이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 그리고 신중해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
세상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눌 순 없지만.사실은 세상 모두가 주류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벽으로 미약하게 경계를 지어놓았던 나의 두 세계관이 조금씩 합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무의식적으로 나누어 놓았던 두 부류의 사람들, 두 갈래의 길들, 두 층위의 계층을 아울러 가고 있다. 주류가 평생 주류일 수도 없고 비주류가 언제까지나 비주류로 남는다는 법도 없다.
다시 만난 친구
여행에서 돌아온 뒤,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지난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불공정한 경쟁에 대한 죄책감, 무언가를 향한 분노, 미안함.. 한참을 듣던 친구는 내가 이야기를 마친 뒤,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죄책감은 가지지 마. 그 시절이 나를 좀 더 단단하기 만들어 준 것은 맞지만, 굳이 겪어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오히려 가진 것에 감사해야지. 나는 내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그래도 늦게 찾아온 것도, 내가 공부 능력이 있었던 것도, 마침 입시전형이 바뀐 것도 다 운이 좋았어 정말."
친구의 그 한 마디에 매번 볼 때마다 주머니 속에 채 털어지지 않은 미세한 모래가 남아있는 것처럼 아릿하게 박혀있던 감정이 풀어졌다. 친구가 너무 예뻐서, 친구가 너무 멋져서, 그래서 나는 너무 기뻐서 그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친구의 행복이 행복했다.
친구의 정답이 내 오답이 아니었다.
친구의 합격이 내 탈락이 아니었다.
친구의 성공이 내 실패가 아니었다.
행복은 제로섬 게임이 아닐 지언대,
화수분처럼 끝없이 넘쳐나는 것일 지언대,
나누면 나눌수록 점점 늘어나는 것일 지언대,
그걸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결국 목적지는 내가 원하는 삶
얼마 전(2021년 8월) 오랜만에 지난 여행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내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나름대로 익숙했지만 이번만큼은 유독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남해의 팜프라 멤버가 아닌 서울의 일개 직장인 겸 도시 생활자 양애진으로서 말하는 자리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기억일지라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가진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삼시세끼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정하고 대안을 찾아 공동체와 시골을 돌아다녔던 2년간의 세계여행은 촌과 농업을 기반으로 여러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했던 3년간의 팜프라를 지나 서울 어느 원룸의 방구석 홈파밍이 되어 있었다. 결국은, 일상으로 향하는 여행이었다. 내가 지향하는 것들을 깨닫고, 내가 중요시 여기는 것들을 가까이 두고, 내가 존중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챙기는 일상으로 말이다.
2시간의 이야기는 “그래도 제 일상은 좀 더 행복해졌어요"로 마무리되었다.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노동 숙식 교환 여행은 여행의 방식에만 초점이 맞춰진 말이었다. 그 안에 여행의 목적이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여행했던 것일까. 다른 삶의 방식이 궁금했다. 결국 목적지는 타인의 삶이었다. 타인의 삶을 빌려 찾아가는 내가 원하는 나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