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리노가 내 집인 것 마냥 친숙하게 머물 수 있었던 것은, 그곳 에서 바로 파비아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이탈리아에 첫발을 내딘 우리를 기다리던 환영식이었다.
그녀의 집을 찾게 된 것은 카우치서핑에서였다. 수많은 호스트들 중에서 유독 눈길이 갔던 그녀의 프로필. 이전에도 몇 번 카우치서핑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런 프로필은 처음이었다.
"내 공간은 오픈 공간입니다. 언제나 문은 열려있어요. 여러 국가에서 온 수많은 카우치 서퍼들이 함께 머물면서 보내고 있지요. 나는 당신에게 저녁과 와인을 원하는 만큼 제공해줄 수 있어요. 필요하다면 아침도요.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너무 많은 카우치서퍼들을 받다 보니 전기세와 수도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하루에 10유로씩 받기로 결정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너무도 어렵다면 받지 않을 테니 부디 말해주세요."
매력적이었다. 10유로의 숙박비를 고사하고라도 꼭 가서 지내고 싶은 곳이었다. 그녀에게 당장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토리노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 그녀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울곡진 산속에 있는 그녀의 집에 가기 위해선 버스에서 내리고도 15분가량 걸어 올라가야 했는데 20kg의 짐을 지고 산을 타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게다가 길마자 헤매다 1시간 만에 간신히 도착한 그녀의 집.
그녀의 집에 머무는 사람은 우리 둘 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으로 왔다가 그만 토리노가 마음에 들어서 파비아나 집에서 벌써 한 달째 지내는 중이라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호세, 집을 구하기 전까지 지낸다는 다섯 명의 우즈베키스탄 교환학생 무리들,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라는 스페인 락커 까를로스, 짧은 방학을 맞이해 휴가 온 폴란드 여학생 올가 등등.. 이토록 많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모두들 제각기 다른 국가에서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신기했다. 파비아나라는 사람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그녀에게 우린 모두 교점이 하나도 없는, 게다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생판 모르는 남일뿐인데, 어찌 이렇게까지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식사를 대접해 주고, 기꺼이 술을 권하는 것일까? 그것 만으로도 눈뜰 새 없이 바빠 보이는데 심지어 빨래와 청소마저 해준다! 물론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유별나게 숙박비를 받는 카우치서핑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는 말도 안 된다.
도대체 이 공간은 대체 뭐지? 아니 그녀는 어떤 사람이지? 무엇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이 공간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집 책장을 가득 매우고 있는 여행 서적들.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할 것 없이 다양한 나라의 서적들이 모여 있다. 아마, 그녀는 한 때 굉장한 여행가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받았던 도움들을 이제는 베풀고 있는 그런 것 아닐까?
어느 날 저녁, 그녀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파비아나, 나는 당신이 너무 지치지 않을까 걱정돼요."
"오, 아니야 그건 네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 내가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말이야. 물론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다음 달엔 쉬려고 생각 중이기도 하고. 목 치료 때문에 올해는 여행을 가지 못한 대신 세계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싶었거든."
돈이라는 물질적 이익을 잊어버릴 수 있는 그녀의 답은 바로, "좋아서"였다.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나 당황스러워했던 걸까? 왜 말도 안 된다고 여겼던 걸까? 그것은 ‘돈’이라는 물질적인 눈으로만 판단하려고 했기 때문은 아닐까? 문득, 지난 파리에서 우리가 벌였던 테이블 프로젝트들이 떠올랐다. 이 뭔가 싶은 얼떨떨함. 아마 파리 포차에 왔던 사람들의 기분이 이러했을 것이다.
파비아나는 그렇게 저녁 식사에 이웃들을 친구를 초대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어서. 다 같이 즐기는 모습이 좋아서.
돈을 넘어서는 가치를 볼 줄 아는 사람.
돈보다 좋은 '함께라는 즐거움'을 아는 멋진 사람.
그리고 그날 우리는 직접 한 요리를 무려 스무 명의 친구들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