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에서 만난 변태_힘의 논리에 대하여

by 양애진
'바바리맨을 만난다면 절대 놀라지 않을 거야. 아주 태연하게 사진이나 찍어 버려야지, 아니 거시기를 발로 차 버릴까?'... 혹시나 모를 그날을 위해 몇 개의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었다. 무의미한 짓이었다. 그날은 한치의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언니와 둘이서 강변 옆 도로를 따라 걸어가던 중이었다, 그때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짜오! 어디서 왔니?" 뒤를 돌아보니 멀끔한 차림의 이탈리아 남자. "한국" 시큰둥하게 답했다. 이탈리아 남자들의 무쓸모 한 직접 거림에는 이미 이골이 난 상태였으므로 얼른 지나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오, 삼성?" 하고 되물었다. 그저 무심한 표정 한 번 지어 주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 따라오는 남자. "잠시만, 너희들 이 사진 보여줄까?" 하며 나와 언니 사이로 폰을 훅 들이민다. '뭐지 삼성 사진 갖고 있다는 건가? 거참 별걸 다 보여주려 하네' 사진은 빛에 반사되어 내 쪽에서는 흐릿했다. 희미한 형체가 남자인 것 같았지만 알아보기 어려웠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 순간 내 귀를 파고드는 언니의 목소리. "X발"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한 템포 늦은 웃음기 가득한 그놈의 목소리. "빅 딕(Big Dick)"


.. 그랬다. 내 예상을 빚 나가도 한참 빗나간 그 사진은 다름 아닌 그놈의 발기한 성기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그 자리를 떴긴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황을 다시 곱씹어 볼수록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분노는 분명 그놈에 대한 것이었는데 조금 서글프게도 분노는 점차 대상을 바꿔서 그놈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로 옮겨져 왔다. 대체 왜, 우리는 제대로 분노하지 못했던가.


그 개자식의 그 개 같은 사진을 보고도 고작해야 "아, X발" 하는 나직한 욕지거리 밖에 내뱉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비웃음을 뒤로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마냥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혹시나 돌아올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에게 속 시원하게 한 마디 할 용기가 없던 것에, 아니 그 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에, 그래서 용기가 없으면 그처럼 무식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벌건 대낮에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 개자식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인간이라고 여기다가도 사실 우리는 한 없이 본능적인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가 있다. 힘의 논리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이 약육강식의 법칙은 인간이라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육체적인 힘 하나로 서열을 나누는 동물과 달리, 인간 세계에서의 힘의 서열은 훨씬 다층적이고 복잡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종류의 힘으로 상대와 나의 우열을 제멋대로 결정지어 버리곤 한다. 쟤는 나보다 작다. 쟤는 나보다 약하다. 쟤는 나보다 못생겼다. 쟤는 나보다 가난하다. 반면, 나는 쟤보다 크다. 나는 쟤보다 강하다. 나는 쟤보다 멋있다. 나는 쟤보다 부유하다. 그러니 나는 쟤보다 "우월하다." 그런 단순하고 본능적인 논리로 나온 결과가 바로 그토록 무식하고 폭력적인 과시욕--그게 왜 과시할 거리인지는 모르겠지만--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본능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차별당하는 일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서로 다른 종류로 여겨지는 문제들의 안에는 언제나 결코 '다르지 않은' 힘의 논리가 들어 있었다.

"니가 그때를 살아봤어? 내가 살아봐서 알아" 나이의 폭력

"남자가 되어가지고, 여자가 되어가지고" 성별의 폭력

"여기만 고치면, 살만 빼면 예쁠 것 같은데" 외모의 폭력

조언을 가장한 폭력적이기만 한 쓸데없는 오지랖들

"죽기 싫으면 내놔라" 힘의 폭력

"얼마나 주면 되는데?" 돈의 폭력

"내가 누군 줄 알아?" 권력의 폭력

여과할 것 없이 대놓고 이기적인 요구 아닌 명령들


우리의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단순히 남녀라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었고, 키나 체격 혹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었으며,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고, 나아가 국가나 인종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모두는 결국 힘의 논리라는 틀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며, 그 안에서는 누구나 언제든지 가해자가 될 수도 있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힘의 논리와 힘의 세계는 가차 없고 무정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이렇게 우리는 각자 힘의 차이가 있으므로 우리 모두의 힘을 똑같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어 보지만 궤변에 불과하다.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이상, 모든 종류의 힘을 똑같게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오히려 더더욱 힘의 논리를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힘의 논리에 갇혀 있는 한, 승자와 패자는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모르던 어릴 적에는 마냥 힘을 키우고 싶었다. 당시 초등학생 아이의 눈에 보이는 힘이라곤 오직 육체적인 힘뿐이었다. 그래서 유독 운동과 힘자랑에 집착했다. 어쩌면 '여자도 남자보다 강할 수 있어' 하는 일종의 반감이었다. 또래 남자아이를 이기면 이름 모를 성취감 혹은 희열감을 느끼곤 했다. 물론, 그 시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은 당시의 나 또한 결국은 힘의 논리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힘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그 틀,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힘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를 부정한 채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힘을 이용하는 '태도'다.

힘이 센 자가 힘이 약한 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힘이 약한 자가 힘이 강한 자를 받들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하나의 힘은 그저 수많은 종류의 힘들 중에 하나의 '다름'에 불과하기에

힘이 센 자는 자신의 힘의 위험을 알고 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힘이 약한 자는 자신의 다른 종류의 힘을 악용하지 않게 주의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때때로 모든 방면에서 힘이 센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힘이 세다는 것은 그만큼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뜻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가장 먼저 힘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이를 통해 나 또한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잠재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조심하는 것. 결국 어릴 적 내가 했어야 하는 것은 똑같이 힘으로 승부를 내기 위해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버리는 것이었다. 애당초 승부를 낼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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