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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Aug 14. 2017

To.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는 당신에게

-육식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영화<옥자> 스포주의)

  

영화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와. 슈퍼돼지 옥자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비밀리에 유전자 조작 돼지(일명 슈퍼돼지)를 계획 중인 다국적 기업,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동물 보호 단체 등 옥자를 둘러싼 각자의 이권 다툼 속에서 미자는 옥자를 구출해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이게 된다.


결과는 어떻게 되냐고?


미자는 옥자를 구출하는 데에 성공한다.

미자와 옥자가 산으로 돌아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완벽한 해피엔딩이지 않은가..!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옥자가 끝나갈 무렵 사람들은 기쁨과 안도가 아니라 무력감을 느낀다.

거기에 환호는 없다. 오히려 영화 <옥자>를 본 사람들은 대거 혼란에 빠졌다.


“옥자는 살았지만 남은 슈퍼돼지들은?”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옥자는 구하면서 닭고기는 먹다니. 미자는 모순적이야!” 라며 지적하는 이도 있다.

“공장식 축산은 모두 나빠! 이제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어!”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채식 권장 영화야 뭐야? 하지만 난 고기를 멈출 수 없어!” 라며 슬퍼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극명하게 대조되는 반응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문제가 된 것인가?

딜레마에 빠져있는 자, 과연 누구일까?



딜레마에 빠진 자, 미자를 제외한 모두.

: 모순관계가 아닌 것을 모순관계로 오인할 때,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다국적 기업의 CEO 루시 미란도는 친환경적 축산을 말한다. 그녀는 돈은 벌고 싶지만 과거 아버지와 같은 악랄한 사업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공식이 새겨져 있다. "유전자 조작=나쁘다 VS 친환경=착하다". 때문에 선량해 보이고픈 그녀는 ‘유전자 조작 돼지’라는 옥자의 검은 비밀을 감추고 ‘자연 교배된 친환경 슈퍼돼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 애쓴다. 어둡고 음침한 실험실을 숨기고 화려한 꽃과 분홍빛으르 가득한 페스티벌을 열어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한다. 그녀는 말한다.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게 무척 찔리지만 사람들이 유전자 조작이라면 무조건 거부하잖아.” 하지만 거짓말로 만든 그녀의 환상의 성은 빈틈이 생기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입장은 어떠한가.


동물해방 단체 ALF는 비폭력적인 동물 해방운동을 주장한다. 그들의 공식 또한 확고하다. "폭력=나쁘다 VS 비폭력=착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결국 그들을 방식의 딜레마에 빠뜨리고 만다. ‘비폭력’이라는 그들의 방식은 모호하다. 그들은 굶주려 쓰러지는 순간에도 조차 토마토는 길러지는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폭력적이라며 먹기를 거부한다. 인간 본연의 먹는 행위마저 부정해버릴 정도로 그들의 신념은 필사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전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다른 방식의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유전자 조작 돼지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반대로 옥자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대체 비폭력의 경계는 어디인 것인가. ‘미션 임무가 먼저인가 옥자의 안위가 먼저인가? 대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은 불가피한가? 하지만 폭력은 나쁜 것인데 어떡하지?’ 그들은 결국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나는 동물을 사랑해!” 라며 울부짖는 외침, 이 얼마나 애처로운가.


이처럼 루시 미란도와 ALF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공식은 지극히 이분법적이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그 결과, 둘 모두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자는 다르다. 그녀는 동물로 돈을 벌고 싶은 사업가도 아니며, 동물 해방 운동을 하는 활동가도 아니다. 미자는 그저 옥자의 친구이자 가족, 그뿐이다. 애초에 옳고 그름에 대한 어떠한 공식도 가지지 않은 미자는 단순하다. 그런 그녀의 목적은 오로지 ‘옥자 구출’. 그래서 그녀는 방식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미자는 자본주의 세계를 인지하고, 그에 걸맞은 방식으로 옥자를 구출하기로 결정한다. 아무리 옥자가 자신에게는 가족과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사회에서 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옥자는 단지 하나의 상품이라는 것을 그녀는 안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작 상품으로써의 지위밖에 되지 않은 옥자의 현실을 깨달은 미자는 결국 선택을 내린다. "I want to buy okja.. alive (난 옥자를.. 산 채로 사고 싶어)". 영화의 말미에서 황금돼지와 옥자를 거래하는 장면은 이러한 미자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렇다. 세상은 두 갈래 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괜찮다. 우리가 모두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 육식과 채식은 모순관계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육식을 하기가 불편해졌는가. 옥자의 고통에 그렇게 눈물을 흘려놓고 삼겹살 앞에서 군침이 도는 게 미안해졌는가. 하지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미자 또한 채식주의자가 아니지 않나. 옥자의 존재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닭백숙을 먹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녀에게 옥자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가족이지, 돼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에게 돼지는 가족도 아니지 않은가. 옥자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미자에게 처음 온 그날도, 옥자를 돈으로 다시 되찾은 그날도 옥자는 상품이었다. 그러니 육식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마음 쓰지는 말자. 미자의 할아버지도 말하지 않았느냐. “목살, 등심, 삼겹살, 사태, 알겄어? 이번에 가면 이렇게 되는거여. 이게 이놈이 타고난 팔자여. 팔자…” 너무 무정하다고? 에이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자. "육식=나쁘다 VS 채식=착하다" 따위의 공식은 없다. 세상에는 육식, 혹은 채식 두 가지의 식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에 대해 확실히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비건(채식주의)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장면 식탁에 야채들만 있다고? 자세히 보시라. 삶은 달걀이 있다. 사실 통닭을 넣을까 하다가 소심하게 계란을 넣었다(웃음). 밥상은 중요하다. 육식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닌 육식의 방식을 생각하자는 거다. 인류도 육식을 계속 해오지 않았나, 적당히 고만고만한 범위 안에서 했지. 근데 현대는 비즈니스 모델화 시켜 동물을 사육한다. 자본주의화된 거지. 우리 모두가 완전한 채식주의나 육식주의자가 아니잖나. 다들 무난한 범주 안에 있다. 동물을 키우면서도 삼겹살을 먹고, 마트 계산대에 등심을 올리면서 다른 손엔 애완견을 안고 있다. 애완동물이 제품이 되는, 그 대량생산 공정에 들어가는 걸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목도하게 하고 싶었다. 좋은 의미로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


결국 어찌 됐든 옥자와 같은 슈퍼돼지들은 싼 값의 맛있는 고기가 되어 팔려나갈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잘. (마치 어느 고기 식당의 간판처럼). 영화의 막이 올라갈 무렵 흘러나오는 경쾌한 배경음은 그와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과 한데 뒤섞여 이상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이 익살스러운 모순이 바로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분명히 알자. 옥자와 슈퍼돼지는 다르다. 옥자는 돼지가 아니라 가족이다. 그러니 영화 <옥자>는 "동물의 공장식 생산을 돌이켜보자"는 영화이지,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영화가 아니다.






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알았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대체 동물의 공장식 생산이 어떻길래 봉준호 감독은 무려 120분 동안을 빌려 말한 것일까?




농장 아닌 '공장'에서 자라는 동물들

: 돼지로 태어나 돼지인 적이 한 번도 없는, 돼지 아닌 돼지고기.


봉준호 감독이 한 번 돌이켜 보자고 했던 공장식 축산에서의 돼지의 삶은 이러하다.

1. 돼지들은 보통 1평(3.3㎡) 채 안 되는 좁은 면적에  3마리씩 지내게 된다. 우리나라 돼지 사육장은 대부분 한 마리당 약0.2평(1.8m*0.65m)의 콘크리트 바닥과 철장으로 되어있다. 몸에 딱 맞는 침대, 그것도 등 다 배기는 딱딱한 돌침대 하나 있는 방인 거다.


2. 이곳에서 몇 백 마리의 돼지들은 일시에 인공수정을 하고, 일시에 출산을 한다. 이때 더욱 확실한 ‘일시’를 위해 그 문제의 돼지발정제를 투약한다. (싫다 정말..)


3. 강제 임신 후 출산. 그게 끝이 아니다. 출산 후에도 어미 돼지는 좁은 스톨에 갇혀 일어나지도 못한 채 온종일 누워서 아기 돼지들에게 젖을 물리게 된다.


4. 그렇다면 아기 돼지들은 어떻게 되는가? 갓 태어난 돼지들은 서로 싸우다가 상처입지 않도록 이빨과 꼬리가 잘리게 된다. 좁은 공간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싸우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란다. ('좁은공간'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하니 다칠 위험을 없애버린다니.. 이거 무슨 해경해체도 아니고..)


5. 그러고도 고작 20일 후면 아기 돼지들은 강제로 젖을 떼게 된다. 왜냐고? 바로 출산 회전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충격) 출산 횟수는 일 년에 2번이 정상인데 고작 30일 만에 재임신을 하는 것이다. 어미돼지는 그야말로 출산과 양육 기계인 셈이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영화 <매드 맥스>의 임모탄의 여인들을 떠올려보자)


6. 젖을 뗀 돼지들은 이제 위와 마찬가지로 0.2평 짜리 철장에 갇혀 꼼짝달싹하지 못한채 살만 찌우게 된다. 움직이질 못하고 먹기만 하니 6개월이면 100-110kg은 순식간이다.


7. 살 찌운 그대들은 모두, 고 투 도축장..


이상 공장 돼지의 일생 끝.




하지만.. 보다 문제는 따로 있다.

: 세상에는 완벽히 착한 것도, 완벽히 나쁜 것도 없다.


바로, 사람들은 이미 공장식 축산의 현실에 대해 알면서도 공장식 고기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영화나 뉴스에서 익히 들어 공장 안에 벌어지는 끔찍한 현장과 그로 인한 폐해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말한다. “영화는 불편하지만 내 수입으로 고기를 사려면 결국 공장식 축산밖에 답이 없다.” 그렇다. 그들은 차마 돼지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런 그들의 선택은 일리가 있다. 이게 바로 무조건적으로 공장식 축산을 배척할 수는 없는 이유다. 거대한 시스템의 등장에도 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결국 "공장식 축산=나쁘다" 또한 성립될 수 없는 공식인 것이다. 때문에 ‘공장식 축산은 비인간적이다’ 라며 사람들의 죄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어떠한 변화도 불러오지 못한다. 도리어 죄책감은 쌓이다 보면 반감이 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마음이 불편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을 택하고 만다. 그 결과,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는 어떠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당신의 불편하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 육식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선택지.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선택지

돼지고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자꾸만 옥자가 생각나서 너무 괴롭다고? 그래도 돼지가 조금이라도 돼지답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당신에게 어쩌면 하나의 탈출구가 될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다. 바로, 공장이 아닌 '농장'에서 길러지는 돼지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소비자의 불편함이 커져감에 따라 요즘에는 기존의 공장식 양돈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축산 농가들이 점차 생겨나는 추세다. 동물 복지 인증을 받은 농가나 자연 순환 농법, 농지 내 축산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중에서 다섯 마을이 모여 자연 양돈을 하고 있는 경북 봉화군의 ‘땅 파는 까망돼지’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읍내에서도 한참 동안 산길을 굽이굽이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산속의 작은 농가가 등장한다. 마치 영화 속 옥자의 집이 생각나는 이곳이 바로 땅 파는 까망돼지들의 집이다. 이곳 돼지들의 삶은 이러하다.

1. 돼지들에게는 한 마리당 10㎡(약 3평)의 널찍한 공간이 된다. 0.648㎡(약 0.2평)에서 지내는 공장돼지에 비하면 약15배 이상의 크기. (가히 갑부 수준ㄷㄷ)


2.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오롯이 돼지에게 맡긴다. (하고 싶을 때 하겠지) 출산 또한 단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3. 키우고 젖을 떼는 일 마저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돼지는 2개월은 충분히 젖을 먹어야 한다. 새끼들이 사료를 먹는 양이 점점 많아질 때 스스로 젖을 떼게 된다.


4. 아기 돼지들의 이빨과 꼬리가 잘릴 일은 결코 없다. 넓은 공간에서 뛰어 노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 양돈이라 하더라도 숫퇘지의 경우는 누린내가 지나치게 심하기 때문에 거세ㅠㅠ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5. 사료는 농가의 부산물을 활용하는데 주식은 쌀겨다. 그 외에는 풀이나 각종 과일들을 발효하여 사료에 섞어주기도 한다. (나 보다도 건강하게 먹는듯..)


6. 이렇게 먹은만큼 뛰어 노니 살이 찔새가 없다. 무려 1년이 지나도 100kg채 되지 않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 (6개월만에 100kg를 임박하는 공장 돼지보다 약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만 이게 원래 돼지의 속도인 셈이다.)


7. 수요가 있는 정도로만 도축된다.


이상 까망 돼지의 일생 끝.




둘러보니 축사에는 똥이 치워지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임헌문 농부님은 당당하게 말한다. “까망돼지는 똥이 아닌 탈취제 위에서 삽니다.” 썩지도 못한 채 밑으로 계속 쌓여가는 밀식 사육장과 달리 널찍한 공간을 갖춘 이곳에서는 배설물은 썩을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지하수를 오염시킬 위험도 없다. 신기하게도 미생물에 의해서 분해가 된 똥은 고약한 냄새보다는 시큼한 내음을 냈다.




문득 영화 속 대사 한 토막이 생각난다.


옥자를 본 리포터가 미자의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슈퍼돼지를 기른 비법이 뭔가요?”

할아버지는 별것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하게 답한다.

“그냥 산에 풀어놨는디”

.

.

.

자,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옥자 #미자 #애자

#땅 파는 까망돼지_를 찾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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