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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Aug 14. 2017

여행의 맥락 하나, 음식

-[넥스트저널리즘스쿨] 지원서 ‘내가 디지털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이유'-

얼마 전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이라는 미디어 스타트업 양성 교육 프로그램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다. 뜬금없이 삼시세끼 프로젝트와 이게 대체 무슨 연관이냐고? 글쎄. 콕 집어 말하는 데는 젬병인데..음.. 가지고 있는 많은 구슬들을 어떻게 꿰우면 좋을까 고민하던 때마침 발견한 곳이었다. 보이지 않는 붉은 실(?) 뭐 그런 건가. 쨌든 덕분에 간만에 정리의 기회를 가졌다. 당시의 지원서를 조금 수정해 보았다.




1.회의의 시작.

 저널리스트를 꿈꾸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역설적이게도 정체불명의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보니 그건 두려움이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다가 본래의 목적과 수단이 주객전도 되어버리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내가 바라는 기자상이 언론사에서 바라는 인재상으로 바뀌어 버리지는 않을까, 기자가 아닌 조직의 일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아직 길을 가지 않은 자의 섣부른 두려움은 도리어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만들만큼 막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왜'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는 왜 저널리스트를 꿈꾸었던가. 애초에 기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었나? 내가 사람들을 만나서 듣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내가 글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나?




2.다시, 돌아가서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연고 하나 없던 시골을 찾았던 지난 여행들, 그 시작에는 ‘음식’이 있었다. 갈망하는 도시의 음식은 쉽고 빠른 인스턴트 식품이었고, 홀대 받는 시골의 음식은 건강과 신선함으로 가득했다. 막연하게 시골음식을 꿈꿨고 막연하게 시골생활을 그렸다. 정말 막연하게.


 현장과 닿아있는 글을 쓰고 싶어 그 현장 속을 헤집고 돌아다녀 보기를 택했다. 온전히 현장에 속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간접경험이라도 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최소한의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삼시세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SNS에 차곡차곡 기록으로 쌓여갔다. 짧은 소감을 말해보자면 시골생활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시골도 결국, 삶의 현장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때 만난 삶들의 무게, 가치, 기쁨.. 그 모두를 적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국내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뉴욕은 식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가장 냉혹했다. 건강하고 몸에 좋은 음식은 비쌌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은 먹는 것에 마저 차별을 당했다. 균형잡힌 식단으로 점점 건강해지는 부자들과 불균형한 식단으로 점점 병이 나는 가난한 사람들. 이 악순환의 고리가 궁금해졌다. ‘맛’ 그 자체보다는 그 맛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정책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그 호기심은 시골생활을 넘어 농업으로 관심의 영역을 넓히게끔 만들었다. 농부님이 많은 시골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을지는 모르겠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농촌에는 농촌 관광, 농촌 체험.. 등의 전에 없던 활기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6차 산업, 스마트 팜 등의 단어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안에는 농사와 농업, 농부에 대한 진지하고도 현실적인 고민이 담겨 있지 않았다. 소규모의 농부들에게는 막대한 거금을 들여 가공식품 기계를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의 아니타는 아이스크림 기계를 산 지 9년이 되는 해에 비로소 온전히 그녀의 기계가 되었다고 했다. 농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그러했다. 적정선을 알지 못하는 일시적인 지원은 오히려 그 후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위험도 있었다. 어떤 기기를 지원해 주어도 그 후에 지원이 중단 될 때, 그 기기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부품이 없어진다면, 결국 쓸모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6차산업과 스마트팜의 바람이 야속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여행의 기록은 어느새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공적인 특성을 가져갔다. 사적인 기록을 넘어서 공적인 기사로.




3.대체 왜 이럴까?

 하지만 전하고 싶은 것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오히려 어려워져만 갔다. 대상을 생각하고,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은 한 가지 고민거리를 가져왔다. 소위 말하는 ‘반응의 문제’ 였다.


 몇 날 며칠, 심지어 몇 달에 걸쳐 고민한 결과를 조심스럽게 글에 옮겨 담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미적 지근한 조회수. 여행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려놓은 만화, 화려한 사진들이 담긴 짤막한 사진 일기들이 조회수 5,000을 훌쩍 넘겼던 것과는 현저한 차이였다. 그렇다. 정작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실망스러웠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무겁게 쓴 글은 무겁게 받아들여졌다. 무겁게 쓴 글은 읽히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만, 보다 문제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재미를 추구한다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기자는 통역을 해야만 했다. 세상의 모든 단어들은 ‘언어’라는 하나의 틀에 묶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층위가 존재했다. 언어 안의 수많은 언어들.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이해되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렇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사이의 적정선을 지키면서 중간 다리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4.방법을 고민하다.

 맛집과 쿡방이 일상이 된 지금 정작 그 바탕인 ‘농업’과 ‘맛’은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기존의 언론에서는 이미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최근에 네이버에서는 Farm판을 새로 개설하여 농업/귀농귀촌을 전문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시도를 했지만 정작 그곳에 올라오는 컨텐츠들은 타 농업신문과 다를바 없이 지나치게 전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거나, 혹은 명인, 약초, 부동산 등 특정 연령대나 직업군에 한정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결국, 외면당하는 분야가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재미’란 필수요소였다.


 이에 대해 ‘글’이라는 수단은 필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종이라는 공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는 ‘오늘날의 독자’라는 변수가 존재했다. 짧은 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제는 그 마저도 읽지 않고 재생 버튼만 누르면 되는, 혹은 굳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자동 재생되기도 하는 영상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영상은 깨알같은 드립과 고퀄리티의 이미지들이 등장해 각종 정보를 시청자에게 떠 먹여주었다.


 아무리 숭고하고 높은 대의를 갖더라도 사람들이 듣지 않으면 소용 없는 일이다. 제 아무리 신경 쓴 글이라도 독자에게 닿지 않으면 그 글은 자기 만족에 불과했다. 자기만족적인 글을 쓰기 위함이 목적이라면 그 사람은 이미 기자라고 부르기 적합하지 않았다. 기자의 본질은 '전달'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상적인 목적을 현실로 옮길 때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현실적'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글이 아닌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먼저, 쉽고 재미 있게 문제 의식에 접근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문제에 재미있게 접근하는 법. 어려운 단어를 쉽게 설명하는 법을 알아야만 했다. 재미는 결국 사람들을 움직이는 근원이었다. 다음으로, 인식이란 결국 물리적인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인식의 확장을 위한 물리적 연결이 충분조건이 되어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디지털’이 그 물리적 연결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5.새로운 시작.

 다시 말해, 눈높이를 맞춰 가야한다. ’맛’ 이면에 숨겨진 맛을 둘러싼 사회 구조에 대해 말하고 싶어 ‘렛잇비(Let EAT be)’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거창한 이야기를 부담스럽지 않고 소화하기 쉽게 잘 다듬어서 내놓고 싶은 마음이다. 렛잇비가 단순히 개인 페이지를 넘어 젊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어떠한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막상 시작을 앞두니 막연함과 막막함에 사로잡혔다. 단적으로 말해서 기성언론과 같은 자본력은 없고, 기성언론과 같은 규모는 없다. 기성언론과 같은 긴 역사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도 부족하다. 팩트자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막연한 뜬구름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헛된 상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리는 자신을 마주한다. 때문에 앞으로의 저널리즘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일이 꼭 필요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아직은 ‘넥스트 저널리즘은 ㅇㅇㅇ다' 하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넥스트 저널리즘이란, 단순히 최신의 플랫폼과 도구를 사용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소통 방식 아닐까?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기사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직접 보고 들은 현실적인 고민들을 안고, 공중에 떠 있는 막연한 이론이 아닌 땅에 발을 붙이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2015년부터 운영중인 #삼시세끼프로젝트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3M3Tproject

<농촌여성신문> “대한민국 청춘, ‘삼시세끼’ 무전여행 떠나다” http://www.r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11

<캠퍼스 잡앤조이> “세 청춘의 좌충우돌 귀농 프로젝트 ‘삼시세끼’” http://jobnjoy.com/portal/joystory/ggol_q_view.jsp?nidx=103587&depth1=2&depth2=2&depth3=3

<네이버 더농부>

(1)http://blog.naver.com/nong-up/221059054116

(2)http://blog.naver.com/nong-up/22105905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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