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축제를_보내드립니다
지난 일주일간 진행했던 #유채꽃축제를_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는 시금치 매거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꽃을 딸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쉴 새 없이 진동음이 울렸다. 준비한 상자 수량이 부족해 몇 번이나 추가 주문을 클릭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수백 건의 유채꽃축제를 발송하면서 상반된 반응을 마주했다.
"유채꽃을 왜 따? 그걸 누가 사?” 마을 어르신들은 의아해했다.
“아니 유채꽃을 보낸다고요?” 옆 마을 사람들 역시 반문했다.
“덕분에 올해도 유채꽃축제를 보네요!" 도시 사람들은 기뻐했다.
“남해의 봄을 보내줘서 감사해요!” 유채꽃 너머의 ‘봄’을 보았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물론 유채꽃 대신 유채꽃’축제’라는 워딩을 사용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와 그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이라는 시의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발견은 애초에 그 둘이 유채꽃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유채 꽃이 피기 ‘전'의 유채나물(=겨울초)을 판매한다. 판매 가치가 없는 유채꽃은 오로지 다음 해 재배를 위해 씨를 받는 용이다. 지천에 깔린 유채꽃은 집 안의 관상용으로 조차 쓰이지 않는다. 반면 도시 사람들에게 유채나물은 익숙하지 않아도 유채꽃축제는 익숙하다. 봄이 되면 유채꽃축제, 벚꽃축제 등 각종 꽃 축제를 찾아다니며 꽃놀이를 즐긴다. 봄이 왔다는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흔해서 쓸모없는 유채꽃이
누군가에게는 지나칠 뻔한 소중한 봄이었다.
차이를 발견하고 사이에서 만드는 것, 둘을 동시에 이해하는 것, 둘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 지역 기반으로만 만들 수 있는 콘텐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수익창출, 시기적절함의 중요성, 지금 이 시기의 사람들을 아는 것 등... 여러 생각과 고민을 들게 했던 유채꽃축제 안녕.
한동안 눈을 감으면 꽃봉오리 송송송 맺힌 유채꽃이 아른거렸다는 후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