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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우닝 May 16. 2024

01.도서관대출이 불가능했던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독서모임 8년째, 이미 집에도 책벌레 남편 덕에 수많은 책이 있어서 읽어야 할 책이 정해지면 웬만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합니다.


요새는 도서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집 근처 도서관에 그 책이 없더라도 상호 교차를 통해서 같은 구 안에 있는 다른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저를 포기하게 하고 , 서점에서 사게 만든 책이 바로

페트릭 브릴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입니다. 


우리말 책 앞에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있고 책 띠지에는 아마존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홍보 문구가 보입니다.  

영어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

우리말 제목이 탁월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책 제목을 지었다면 이 정도의 반응은 얻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도서관을 뒤져봐도 이 책은 늘 대출중, 게다가 예약자가 항상 2명이 앞에 있어서

독서모임이 있는 그날까지는 이 책을 빌려서 완독 하기란 불가능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책을 샀죠. 보통 이런 경우 저는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는데

이번에는 중고서점의 책 값이 인터넷 서점의 책값과 같더라고요? 새 책을 샀네요.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 인기지? 하며  읽어나갔습니다.


사랑했던 친형 톰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후  저자 패트릭은  잘 나가는 '뉴요커'라는 직장을 그만두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가  경비원 일을 시작한 2008년부터 퇴사하는 2018년까지

(물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있지만) 자신의 삶 그리고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서 일하면서 작품을 보고 느끼며 사유한 생각들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기대가 컸던 건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맞는 건지

책 중반까지는 그렇게 좋은 책인 줄 몰랐어요.

책장을 넘기는 것도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것에는 물론 저의 미술 지식이 일차원적인,

딱 학교 미술시간에 배운 그 정도라는 것이 큰 몫을 한 듯합니다.

(애초에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을 일도 없었겠죠 ^^;;)

책은  다양한 시대와 문화권의 회화, 소묘, 조각, 사진, 건축 등을  다루는데

미*알*못인 저는 막히는 부분이 많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책에는 작가가 언급하는 미술품의 사진이 없습니다.

일러스트로만 표현이 되어 있어서 상상력이 부족한 -작가가 작품을 묘사해 주었지만- 저는

그때그때 작품을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공감했던 부분은 오히려 그가 경비원으로서 일하며 느낀 고충, 생생한 경험들을 남긴 부분이었습니다.


" 아무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 해야 하는 일"이라며 우리끼리 농담을 하곤 했다. (p 313)


매너 없는 관람객의 에피소드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어디 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구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전시실을 나서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어. 자기 아들을 보고는 '작은 사람들한테는 작은 힘이 어울리지... 인생이 그래" (p230)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10년 동안 짧으면 하루 8시간 , 길면 하루 12시간씩 이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작품들과 교감하며 쌓은 기록들을 남긴 것인데 제가 10년의 사유를 단숨에 따라잡는다는

쉬운 일을 아니겠지? 그리고 드러 누워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에 똑바로 앉아서 진지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책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좋아졌어요.

독서대에 책을 놓고, 옆에는 폰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놓고 미술작품을 찾아보며 책을 읽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소묘 작품 전시가 나오는 12장에서는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도 이런 고통의 시간이 있었구나 -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신이시여 도와주소서!"(p284) -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다시 되뇌어보았습니다.


그렇게 읽다가 책 말미 저자가 경비원일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근무일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직장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있지만 그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없다는 점, 10년을 일했는데도 여름휴가를 미리 계획할 수 없고 크리스마스 연휴 때 쉬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삶이라는 점, 그러나 동시에 근무 마지막 날  관람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조언까지 생각할 사람이라면 이 미술관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그의 복잡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 당신은 지금 세상의 축소판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개펄에서 파리의 센강 서쪽  리브고쉬의 카페에 이르는 드넓은 땅과 그 너머 수많은 곳에서 인류는 정말이지 놀라운 성취를 이뤄냈습니다. 먼저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보십시오. 인색하고 못난 생각은 문밖에 두고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p322)


끝으로 책에서 소개된 많은 미술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하나를 여기 남겨봅니다

마담 X(마담 피에르 고트로)  존 싱어 서전트



독서모임을 통해 이렇게 저의 선호 분야가 아닌 책을 읽게 되면서 책 읽기의 폭을 넓혀봅니다. 언젠가 뉴욕에 가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저 그림을 보게 될 일이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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