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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우닝 Jul 08. 2024

한 살이라도 어리면  최고의 스펙?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구직활동을 할 때만 해도 나의 나이가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앞자리 숫자가 4일 때였으니까. 수학학원에서 일할 때는 원장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 나이가 나보다 많은 편이어서 나이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어유치원으로 직장을 옮기면서부터 나이를 의식하게 되었다.


처음 들어가게 된 영어유치원에서는 알고 보니 내가 최고령직원이었다. 요새는 학원 앞에 학원교육비, 강사들 프로필(나이, 대학 전공 등)을 게시해야 하는데 그 게시문을 보고 알았다. 아 내가 최연장자구나. 원장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원생들이 5세부터 시작되다 보니 가르치는 강사들도 더 어리다고 해야 하나.


그때부터 더 조심하고 신경 썼다. 다른 직원들에게 말을 놓지 않고 존대어를 쓰도록.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그래도  들어 보이겠지만)  외모를 관리하고 옷도 신경 쓰고. 나이 들어서 일처리가 굼뜨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신문물(?)에 뒤쳐지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세상의 잡다한 것들 - sns활용, 요새 뜨는 드라마, 아이돌, 인터넷뱅킹 사용법, 주식  등- 에 관심을 갖으려고. 라테가 되지 않기 위해 업무 외의 잡담은 가급적 피하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나이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되기 마련이다. 싱글 여성들은 그들끼리, 30대의 , 유초등 자녀를 둔 아기 엄마들은 그들끼리. 나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은 직장에 없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출퇴근을 했다. 어차피 학원은 회식을 하거나 부서 모임이 잦은 직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끼리 모이고 내가 배제되는 것이 보이더라도 그러려니 하며 버티어냈다. 젊은 시절 회사에 다닐 때 경험을 돌이키며 나 또한 그러지 않았는가 하면서. 회식도, 동기 모임도 이미 숱하게 다 해본 것이다. 마음에 두지 말자 하면서.


그런데 두 번째 영어학원에서는 학원에서 내가 최고령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상처가 되는 일들이 있었다. 그때는 나이 앞의 숫자가 5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출근 초기에 나를 불편해하는  팀장의 마음을 바로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원장의 말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학원 본사에서 하는 온라인 교육이 있었다. 바뀌는 학원 시스템 등에 대한 것이었는데 단순히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후 시험을 봐서 정답률이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통과가 되는, 통과가 되지 않으면 다시 시험을 봐야 하는 그런 교육이었다. 직원들의 시험점수와 재시험 여부 모두가  본사 교육팀에서 원장에게 통지가 가는.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교육수당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과 외의 시간을 내서 교육을 받게 하고 결과에 대해 이렇게 직원을 몰아붙이고 쪼아대야만 하나 싶었다.


나이 들어서 총기(?)가 흐려져서 시험에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온라인 강의 들으면서 필기까지 하고 나름 엄청 긴장하며 시험을 봤다. 본사에서 정한  마감기간이 다 끝난 후 교육미이수자, 시험탈락자명단이 왔다. 아이들 돌보느라 바빴던 유치부 교사들은 시험 자체를 안 본 경우가 많았다. 프런트데스크 중에서는 내가 의도치 않게, 최고득점자가 되었다.


원장은 그 명단을 가지고 와서 프런트데스크 직원들 중 재시험을 봐야 하는 직원들에게 말하면서 내가 제일 시험을 잘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원래 늙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어있어."


나의 고득점(?) 앞에서 무안해하는 다른 직원들을 위로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장의 예상치 못한 나이 저격에 나는 당황하며 헛헛하게 웃었다. 나이를 커버하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결국 그것이 나이를 지적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다니. 후회가 된다. 그때 원장에게 정색하고 따지고 들걸. 열심히 했다고 격려는 못해줄 망정 왜 나이는 들먹입니까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누가 시험 잘 본 것  칭찬해 달라고 했나?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는 것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가 어리고 젊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을까.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 나이를 그냥 먹은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안달복달하는 중장년층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중장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지는 마음이 커지지만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최고령자에 속했지만 성당 반모임에 나가면 막내이다. 요새 잘 나간다는 카페에 가면 1층 구석에 처박히는 퇴물신세이지만 노령층이 많은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을 때는 젊은 나이에 내가 왜 여기 앉아있지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다. '나이 먹어서 왜 저러나? ' ' 나는 나이 들면 저러지 말아야지 ' 하면서 나이로 사람들을 걸러내고 판단하던 내가 이제 그 대상이 되는 나이대에 들어섰다. 지금은 중장년이라는 애매한 나이대에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노년이 되겠지.


JTBC 주말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는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낮에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취준생 아가씨가 주인공이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공무원을, 중장년의 몸이 되어서야 비로서 된  이미진(정은지)은 낮에는 임순(이정은)의 몸으로 일을 하고 해가 진 후 밤에서야 비로서 젊은 이미진의 몸을 되찾는다.  우여곡절 끝에 검사실의 사무보조원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경험도 별로 없으면서 나이 많고 말만 많은 ' 사람으로  계검사(최진혁)에게 찍히면서 설움을 겪는다. 사실 그녀는 취준N수생으로 컴퓨터면 컴퓨터, 게임이면 게임,노래면 노래 못 하는 것이 없는 능력자였지만 아줌마라는 외피에 묻혀서 그 능력을 인정받기까지 여러 번의 고비를 겪는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겉표지로 책을 평가하지 말라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영어격언. 아마 성문영문법에서 보고 외웠던 것 같은데. 그 어느 때보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요즘 세상에서 나이는 빠질 수 없는 , 중요한 판단기준일 수밖에 없다.


요새는 나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멋지고 힙하다며 칭송받는 유명인사들이 여럿 있지만 결국 그들도 '나이에 비해 '  멋지고, 세련되고 , 아름답기 때문에 칭송받기 때문이리라.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나이나 겉모습에만 휘둘리지 않고 그 너머 사람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는 그런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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