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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15. 2019

38. 카페 사장의 휴무일

<카페 사장의 휴무일>


카페를 오픈하고 첫 몇 달간 휴무일은 집에서만 보냈다. 하루 종일 잠을 자도 잠이 왔다. 하도 자서 얼굴이 퉁퉁 붓고 머리가 지끈거리듯 아팠다. 그래 놓고 낮이건, 밤이건 시래기마냥 픽픽 쓰러져 잠들었다. 카페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카페를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서있다 보면 금세 피곤해진다. 마치 신입직원으로 돌아간 것 같다. 점차 카페에도 적응되다 보니, 휴무일을 집에서만 보내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이번 휴무일은 밖에 나가보자고 결심한다. 그래도 내일이 휴무일이니 오늘은 새벽 한 시나 두시쯤 자야지.


아침 열시쯔음 눈을 떴다. 휴무일은 알람 없이 내 얼굴에 뇌리 쬐는 햇빛을 받고 눈을 뜬다. 오늘 무얼 할까 고민해본다. 아, 생각해보니 오늘은 월요일이다. 직장인의 휴무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이었다면, 카페 사장인 나의 휴무일은 월요일이었다. 은행에 갈 수 있겠다. 아, 치과에도 가야지. 그리고 주민센터에서 몇 가지 서류도 떼야겠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려서 책도 빌려볼까? 평일에 쉬니까 이런 점이 참 좋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뒤 옷장 앞으로 간다. 옷장 깊숙이 빨간 티셔츠를 꺼낸다. 밑에는 꽃무늬가 마구마구 박혀있는 스커트를 입고 길을 나선다. 바쁜 출근 시간이 지나 한가해진 길을 걷는다. 아침에 숨어있다 햇볕이 따뜻해지면 나오는 고양이들도 길마다 누워있다.


첫 목적지는 은행이다. 은행에서 밀린 공과금을 납부하고, 카페에 필요한 잔돈을 바꾼다. 보통 카페에 현금을 20만 원 정도 두는데 만 원짜리 4장, 오천 원짜리 20장, 천 원짜리 40장, 오백 원짜리 20개, 백 원짜리 50개 정도 둔다. 요 돈을 '시재금'이라고 부르는 것도 카페를 시작하고 처음 알았다. 묵직한 돈을 받아서 주변을 둘러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가방에 재빨리 넣었다. 그다음 목적지는 치과였다. 거의 2년 만에 오는 치과라서 괜히 긴장된다. 치아점검을 받고 스케일링을 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주민센터로 가서 주민등록등본 5부를 발급받았다.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에서 다 발급받을 수 있지만, 그건 회사에 있을 때나 가능했다. 집에는 프린트가 없고, PC방에서는 공용 프린트라고 복사가 안된다. 지금은 번거롭지만 주민센터에 가서 한 번에 왕창 받아온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가려다가 아주 오래전에 대여증이 만료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것저것 다 처리하고 나니 벌써 오후 5시다.


밥시간은 다가오는데 이대로 집에 들어가긴 아쉽고, 그렇다고 혼자 밖에서 먹기도 그래서 카페를 갔다. 최근에 규모가 큰 카페들이 제법 많이 들어서고 있어서 어딜 가나 다 새로운 카페였다. 시원한 카페라떼를 시키고 주변을 둘러본다. '요새는 예쁜 카페들이 참 많구나.' 음료도 맛있었다. 카페에 혼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최근 카페들의 인테리어 트렌드를 살펴보기도 하고, 새로운 메뉴로 뭐가 괜찮을지 고민도 해본다. 그리고 소상공인 진흥공단에 접속해 영세한 나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찾아본다. 대부분 대상이 안된다. 카페 사장들이 모여있는 카페에도 접속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요새 경기가 어떻고, 카드수수료가 어떻고, 부가가치세 신고는 어떻고. 정말 살기 팍팍 해구나.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뼈도 못 추리겠구나. 에휴. '까똑!' 카카오톡이 꽤 와있다. 밀린 문자에 답장을 하고, 벌써 몇 개월간 잠잠한 이메일도 한 번 접속해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이제 집에 들어가자.


여유롭게 버스에 몸을 싣고 창 밖에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을 본다. 해가 지기 전 집에 들어가는 기분은 뭐랄까, '자유'같았다. 전에 없던 하루가 신기했다. 이 많은걸 하루 만에 다했다니 나 자신이 대견했다. 직장인 시절에는 점심시간만이 나만의, 나의, 나를 위한 업무처리가 가능했다. 그마저도 밥을 부리나케 먹거나 혹은 굶어야 했다. 점심에 팀끼리 회식하는 날이면 내 업무는 뒷전이었다. 그렇게 하루는 은행을 가고, 다음날에는 병원을 갔다. 혹은 아무것도 못해서 '다음번에 시간 나면 해야지' 하고, 정작 나를 위한 업무는 다 미루곤 했다. 대부분 은행, 병원은 토요일 12시가 되기 전까지는 업무가 가능했다. 그마저도 늦잠을 자서 시간대를 놓치거나, 하나만 하고 나면 시간이 다 지나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평일을 보냈다. 진정한 '자유'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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