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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특별편> 아직도 애매하게 중간을 달리는 중

<특별편 : 아직도 애매하게 중간을 달리는 중>


나는 인생을 달리기 경주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경주에서 항상 애매하게 중간만을 해왔다. 눈 앞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초조했다. 하루라도, 아니 한 시라도 빨리 따라잡고 싶어서 불안해했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시간이 지나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는 '안정권에 들어왔으니 조금은 쉬어도 되겠지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을 보니 갈 길이 멀다. 돈을 벌고,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가족을 만들고, 아이들을 키우고, 노후 준비를 하고, 물려줄 재산을 만들고. 왜 이렇게 할게 끊임없이 있을까? 나는 대학원에 들어가고, 이것저것 되지도 않은 시답잖은 공부들을 끌어안았다. 박사학위와 온갖 자격증, 시험 점수들이 이 경주에서 롤러스케이트가 되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더 열심히 달려봐도 난 항상 애매하게 중간이었다.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혹독하게 살아온 나 자신을 뒤돌아보니, 진정한 내가 없었다. 온갖 모순덩어리에 가식적이고 포악해진 나만 남아있었다.


나는 이 경주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냥 '여유로움'이라는 하나의 단어만 믿고 카페를 오픈했다. 그러나 카페는 또 하나의 경주트랙일 뿐이었다. 우후죽순 생기는 카페들에게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인테리어에 더 투자를 하고, 손님 유치를 위한 셀프마케팅을 시작한다. 그러나 더 큰 카페, 더 예쁜 카페가 생길수록 나는 뒤쳐지는 카페가 되어있다. 욕심을 버리고 카페에 얽매이지 말자 다짐해본다. 하지만 어느새 카페에 내 생계가 걸려있다. 나는 또 하나의 경주트랙 위에 서있을 뿐이었다. 이미 나는 경기장에 있었으며, 경기를 시작하는 휘슬은 울렸다. 내 앞에서 저만치 달리고 있는 주자들, 나를 빠르게 치고 나가는 후발주자들 사이에서 죽어라 달린다. 카페라는 여유로운 공간 속에 있지만, 여전히 나는 눈 앞에 달리고 있는 경쟁자들을 보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뒤에서 따라붙는 새로운 경쟁자들에게 밀릴까 봐 두렵기까지 하다.


예전과 같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분명 변한 것은 있다. 열심히 달리며 트랙 사이에 피어난 잡초를 보게 되었다. 달리는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빛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물리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지 않게 되었다. 나 스스로 내면을 되돌아보며,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달리고 있는 이 트랙은 100m 달리기 경주가 아닌 마라톤을 위한 트랙이라고. 아직도 애매하게 중간을 달리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 나 자신이 이미 애매한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아직도 나는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앞, 뒤의 경쟁자를 의식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직도 애매하게 중간을 달리는 중이다. 그것도 즐겁게! 즐겁게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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