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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0. 2019

41. 만남 후엔 이별이 있는 법

<만남 후엔 이별이 있는 법>


회사를 박차며 나올 때 여기 있는 인간들과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잘해주신 분들도 계셔서 가끔 안부를 묻곤 하지만, 먼저 나서서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회사와는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막상 퇴사하고 나서는 나 없는 회사가 어떻게 굴러갈까 너무 궁금했고, 나도 모르게 인사와 조직개편은 어떻게 됐는지 귀를 쫑긋 거리고 있었다. 회사동기들은 각 다른 부서에서의 정보통이라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비록 자발적으로 회사에서 뛰쳐나온 퇴사자이지만, 회사동기들과 회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면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도 나가지 못했다. 몸은 카페에 있지만 회사동기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나를 무엇보다 기쁘게 했다. 


휴무일인 월요일에 회사동기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보다 앞서 퇴사한 동기 두 명도 함께 불렀다. 일하고 있는 회사동기들을 배려해서 회사 앞 식당에서 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사람이 몰려들걸 고려해서, 나를 포함한 퇴사자 세명은 먼저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한다. 음식이 나올 때쯤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온 동기들이 우르르 식당에 들어온다. 짧은 점심시간을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허겁지겁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빠르게 음료를 주문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초에 부서장이 바뀌어서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졌다는 이야기, 곧 워크숍이 있는데 가기 싫다는 이야기, 어느 팀의 누가 청첩장을 돌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직 이야기. 다들 말버릇처럼 하던 '이직'이야기를 이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동기 중 한 명은 다른 회사에 서류를 넣고, 합격해서 시험을 보러 간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1차 면접은 보았는데 떨어져서, 이번 상반기를 노려볼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퇴사한 동기 한 명은 깜짝 소식을 전한다. "나 외국계 기업 합격해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어." 


다들 축하한다며, 퇴사하고 마음고생하더니 정말 잘됐다고 격려해준다. 이직하는 회사의 급여, 복지, 근무환경을 물어본다. 우리는 역시 사기업은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간은 어느새 12시 40분, 동기들이 이제 회사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다. 휴무일이라 시간이 넘쳐나는 나는 뭔가 아쉬웠다. 이대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가야 할 장소가 있다. 아쉬움을 가득 담아 동기들을 보냈다. 혼자서 할 것도 없으니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빨간색, 회색, 파란색 사원증을 목에 걸고, 손에는 커피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들.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첫 회사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아주 많이 힘들었다. 알고 보니 나는 최고의 기피부서로 발령받은 신입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익숙하지도 않은데, 인간관계도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일을 하다 보니 여유가 없어서, 동기들과 커피 한 잔도 못했다. 점심시간도 무조건 팀원들과 먹었다. 나는 표정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저 자동화된 기계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밥 먹고, 퇴근하고를 반복했다.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제일 먼저 퇴사할 것 같은 얘'라고 낙인을 찍었다. 지하 1층의 여자화장실의 제일 끝 칸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숨죽여 울지 않아도 됐다. 화장실 물을 수어 번 내리며 소리 높여 울었다. 그게 회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던 내게 손 내밀어 준 게 동기들이다. 나에게 이런저런 별명을 붙여주며 사심 없이 대해주던 동기들, 퇴근 후에도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들어주던 동기들,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동기들. 그들은 회사생활 3년을 버티게 해 준 버팀목, 그 이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 외로움에 사무쳐있던 나를 구원해주었다. 20대 중후반, 나의 빛나던 시간들에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비록 내가 회사라는 공간을 뛰쳐나갔지만, 카페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행복했다. 그래서 카페도 외롭지 않고,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 순간에 내 마음에 들어와서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우리는 각자의 길을 바라보고 있다. 당장 다음 주에 다른 지역으로 출근을 앞둔 동기를 바라보자 더 실감 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겠구나. 우리가 같은 주제로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겠구나. 이제 각자의 삶을 살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겠구나.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겠구나. 우리는 예전의 추억으로 남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나가겠구나.

우리 동기들 많이 사랑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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