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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1. 2019

42. 솔직히 나도 사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솔직히 나도 사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지난번 카페에 윗윗기수 선배가 왔다간 후로 회사에 소문이 났다. '어디 팀의 퇴사한 걔, 근처에서 카페 차렸대.'

오늘 퇴사한 직장의 전 팀장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사장님과 함께 방문하려고 하는데, 의전을 위해 주차를 어디에 하면 좋을지 묻는다. 퇴사한 직원이지만 새 출발을 응원해주려는 회사분들이 감사한 마음 반, 부담 반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의 방황 끝에 차린 카페, 누구보여주기에 잘난 수준이 아니라서 부담이었다. 줄 서서 들어오는 카페라면 알음알음 찾아오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자랑하고 다녔을텐데. 휴.


나는 순간적으로 잔꾀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테이블을 모두 치워버리고, 테이크아웃 전문점 인척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앉을자리가 없어서 금방 돌아가겠지? 두 번째는 카페 셔터문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카페 문을 닫아서, 사장님께는 안타깝지만 다음에 오라는 말을 건네본다. 그러다 모두 쓸모없는 전략이었다. 현실적으로 테이블을 모두 치워버릴 수도 없었다. 오늘 카페 문을 닫아서 회사 사람들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다음번에 한 번은 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후 매출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천 원이라도 더 벌어야지! 


오후 6시 20분 즈음 사장님, 팀장님과 과장님 두 분이 카페에 들어온다. 사장님이 먼저 손을 내민다. 난 두 손을 성큼 내밀어 씩씩하게 인사한다. 팀장님과 과장님께는 '잘 지내셨어요? 보고 싶었어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메뉴판을 건네서 주문을 받았다. 음료 네 잔과 와플 두 개, 프레즐 한 개. 퇴근하고 바로 오셨을 터라 배고프실 것 같아서 와플 한 개를 먼저 구워갔다. 다음으로 와플과 프레즐을 가져갔다. 과장님은 갓 구운 따근따근한 와플을 사장님께 건네 드리고, 본인은 먼저 나간 식은 와플을 가져온다. 서먹한 테이블 위로 과장님이 나서서 재밌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들 사장님이 웃는지 안 웃는지 반응을 살피며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음료 네 잔을 들고 테이블로 갔다. 팀장님은 손님도 없으니 옆에 앉으라고 하신다. 나는 멋쩍게 테이블 옆에 의자를 하나 붙여 앉는다.


사장님은 퇴사한 직원이 나가서 차린 카페가 어떤지 궁금하셨다고 한다. 10평도 안 되는 카페라 테이블도 얼마 안되고, 손님도 없어서 괜히 민망해 죽겠다. 오전에 있던 손님들을 모두 초청해 이 자리에 모시고 싶다. 정말. 괜히 오전에는 손님이 참 많았다고 자랑을 해보지만 더 초라해지는 것 같다. 어느새 우리는 사장님이 웃을 만한 이야기, 사장님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두가 사장님께 주목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한다. 가끔은 사장님 앞에서 옆에 앉아 있는 팀장님과 과장님 칭찬을 꺼내본다. 그 다음은 서로를 돌아가면서 칭찬한다. 사장님은 우리들의 이야기에 하하 소리 내서 웃으신다. 아, 다행이다. 


한 시간 반 가량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사장님이 먼저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로 일어난다. 팀장님과 과장님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사장님이 쏘신다고 하셔서, 사장님께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아 들고 계산을 한다. 팀장님은 사장님이 바로 차에 타실 수 있게 먼저 나가서 차에 시동을 걸고, 카페 앞으로 차를 이동시킨다. 그렇게 사장님, 팀장님과 과장님 두 분은 카페를 떠나셨다. 번창하길 바란다는 응원을 남긴 채- 다 가고 아무도 없는 카페를 둘러본다. 하필 회사 사람들이 왔을 때 한산한 카페가 원망스럽다. 회사를 나가서 저들보다 잘되야하는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애매한 나라서 짜증 난다. 여유로운 카페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낼 때의 행복감은 이미 저만치 멀어진 후다. 회사 사람들에게 땅땅거리며 보여줄 '돈', 그리고 '명예'가 간절하다. 애매한 내가 아닌 완벽한 나,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나를 갈구한다.


현재에 만족하자고 했으면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카페를 시작하며 아무것도 바라는게 없었는데, 왜 자꾸 '돈'과 '명예'에 욕심이 날까. 퇴사를 하며 유유자적하며 살자고 마음먹었는데 왜 또 '돈'과 '명예'를 쫒고 있을까. '돈'과 '명예'가 무엇을 가져다준다고 이렇게 힘들게 노력하고 아등바등 애쓰는 것일까. 문득 오늘의 일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간다. 사장님이 이곳으로 오며 가는 길을 의전하는 팀장님, 사장님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과장님, 그리고 모두의 반응을 살피며 광대뼈가 아프게 웃고 있는 나, 그 속에서 여유로움이 넘치는 사장님을 봤다. '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는 관용차나 의전에 대해서 상당히 비관적이다. 이는 불필요한 돈과 감정 소모를 요구하는 관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는 저렇게 되고 싶다고 읊조리고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비위를 맞춰주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나를 의식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 부럽다. 이 모순덩어리에, 가식쟁이에, 애매한 인간아!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비난해본다. 그래도 왜 자꾸만 욕심이 날까? 왜?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 만족하자고 수어 번 다짐했으면서 왜 흔들리는 걸까? 


나는 상당히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답을 얻었다. 답은 나의 '존재' 자체에 있었다. 나는 다양한 관계를 통해 한 사람으로서의 인정, 즉 존경과 사랑을 바랐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목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존재감'을 바랬다. 내가 회사에 있던, 카페에 있던, 어디에 있던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고, 존경해주길 바랬다. 부나 명예를 추구하는 나 자신을 모질게 비난할 필요 없다. 이건 나라는 존재의 본능이다. 존경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나의 본능일 뿐이다. '나'라는 존재를 알아주고, 존경해주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당연한 마음인 거다. 

(feat. 욕심이 과하면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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